약손선생님
일주일에 세 번 만나는 치료선생님.
그 분은 쉰 살이 훨씬 넘은 아저씨랍니다.
엄마는‘약손선생님’이라고 부르지요.
어릴 적 배앓이로 끙끙거릴 때면, 눕혀놓고 배를 쓸어주시며 ‘내손이 약손이다!’했던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늦게 크는 유뽕이 마음을 진심어린 손길로 쓸어주실 선생님의 손도 약손으로 정했지요.
유뽕이가 네 살 때 장애진단을 받고 소개받은 분이 지금의 치료선생님입니다.
서울 낙성대역 앞에서 치료센터를 운영하셨지요.
감히 속초에서 그곳까지 다닐 수 없어 포기하고 내려오던 그 걸음이 기억납니다.
천근만근 돌덩이가 발등에 올라앉은 무게였습니다.
녀석을 업고 강릉과 원주 오가며 부족하나마 기타 조기치료에 전념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며 소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지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약손선생님이 속초로 이사를 오셨지 뭡니까. 그사이 유뽕이는 여섯 살이 되었지요.
유독 장애아의 대한 편견과 시설이 열악한 사실을 아시고 자청하여 영북 지방으로 선택하여 오셨답니다.
마치 어제 일만 같은데 어느새 6년이 되어가네요. 엄마는 팔짝팔짝 뛰며 벅차올랐지요.
선생님과 만난 유뽕이는 퇴행이 아닌 앞걸음으로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글도 산수공부도 선생님이 알려주셨습니다. 덕분에 금세 구구단을 줄줄 외우기까지 했지요.
신종플루 예방주사를 거뜬히 맞게 해주신 것이 감사해서 유뽕이 손에 작은 꾸러미 들려줍니다.
선생님 댁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는 유뽕이에게 말 연습을 시켰지요.
“유뽕아! 선생님, 이거 잡수세요! 해야 돼. 주사 맞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알았지?”
“네!”
알아들었는지 모르는지 대답만 크게 잘도 합니다.
녹차케이크 봉지를 덜렁덜렁 흔들며 선생님 댁 안으로 들어가네요.
어떻게 유뽕이가 주사를 맞을 수 있었을까요?
선생님의 방법이 궁금하여 여쭤보니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우선 단계적으로 주사에 대한 공포증 없애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처음엔 이야기로만 알려주다가 직접 바늘 없는 주사기를 준비하셨다는 군요.
팔을 걷게 하고 살짝 대었다 떼어보는 식의 반복학습 한 것이지요. 그것이 익숙해지자 바늘대신 뭉툭한 클립 같은 금속을 붙여 살갗 찌르는 연습을 하셨고요.
나중엔 바늘까지 끼워 서서히 찌르는 흉내만 냈다고 합니다.
주사 맞으러 가던 차안에서 언뜻 선생님과 유뽕이가 뭔가 약속의 말 주고받는 것을 들었지요.
“유뽕아! 너 주사 열 대 맞을래? 아니면, 한 대 맞을래?”
“한 대요!”
“그래 알았어. 꼭 한 대만 맞는 거다. 안 맞으면 열대 맞는 거야 알았지? 약속!”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철썩 같이 손가락을 걸었던 겁니다.
이미 선생님의 말씀은 어떠한 상황에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뽕이.
내심 굳게 마음을 먹었겠지요? 피할 수 없는 상황이겠구나 하고요.
주사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녀석의 얼굴을 익히 아는지라 몇 사람들이 슬슬 붙잡을 태세로 다가오더랍니다.
선생님은 얼른 그들을 제지 시키며 말씀하셨지요.
“아무도 옆에 오지마세요. 손으로 아이를 잡지도 마시고요! 차라리 손을 주머니에 넣고 멀리 서 계세요 부탁입니다.”
주사기를 들고 오는 간호사에게도 유뽕이 팔을 잡지 말고 그냥 찔러 달라 했답니다.
누군가 잡으러 온다면 공포심이 생길 것이라는 판단 하에.
선생님은 그냥 녀석의 반대편 팔 쪽에 앉아있었고, 왼쪽 팔 내민 유뽕이는 주사를 맞은 것이지요.
단 일초의 순간을 위해 선생님의 몇 날이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유뽕이에게 엄포를 놓았을까, 선생님이 째려봤을까 추측만 무성하게 하던 엄마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부끄러웠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어찌나 감사한지요. 모든 것이 분에 넘치는 축복인 것만 같습니다.
유뽕이는 주사를 맞고 난 뒤 달라졌습니다.
자신감이 넘쳐 지금까지와 다른 색으로 눈이 빛납니다.
무슨 일이든 시키면 짜증부터 내곤 하더니 스스로 해버립니다.
피아노학원에 가서도 자발적으로 드럼연습을 하고 찬송가도 척척 둥당거립니다.
시기를 알았는지 고요한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마구 칩니다.
세수도 치카치카도 뭐든 말하지 않아도 하지요.
그 뿐이 아닙니다. 요구사항도 늘었지요.
“엄마! 받아쓰기 공책 사주세요”
다 큰 녀석이 이제야 받아쓰기를 해보겠다는 군요.
저녁나절 책상에 앉아 어찌나 학구열에 불타게 연필 굴리며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지요. 사실 파랑새반에서는 받아쓰기 순서도 없답니다.
잘난 척만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이지요.
“연필은 펜슬!”
쓰다말고 영어도 구사합니다.
자장면 꼭 먹어야 한다며 광고용 자석스티커를 엄마 코밑에 들이밉니다.
“자장면, 사천 원!”
그까짓 거 엄마가 한턱 쐈답니다.
유뽕이 덕분에 오늘 주사 맞은 선뽕이 누나도 자장면을 얻어먹습니다.
주사 한 대 맞아놓고 유세가 대단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유뽕군의 필요항목이 요구될지 앞이 캄캄합니다.
가계부가 휘청거릴까봐 새가슴이 됩니다.
엄마는 녀석의 기고만장함이 살짝 얄미워지니 어쩌지요?
약손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만 하고 있어도 부족한 것을.
2009년 11월 25일
약손선생님께 마냥 감사한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