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피노키오
유뽕이는 아기 때부터 피노키오만화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열감기로 끙끙 앓다가도 제페토할아버지의 노랫소리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쳐다봤지요.
말 한마디 못했지만 밝게 웃는 표정에선 어쩐지 피노키오 비디오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나치게 한가지에만 집착하는 장애특성이 보이는듯하여, 어느 날 아빠는 모든 비디오테이프를 버렸습니다.
피노키오만 사귀느라 유뽕이가 점점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었으니까요.
이제 열한 살이 되었으니 까맣게 잊어버린 줄 알았습니다.
한 달 전쯤인가.
시내 문화회관에서 피노키오 뮤지컬공연이 있다며 포스터를 곳곳에 붙여놓았네요.
피아노 학원 벽에 붙은 그림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느라 녀석이 눈을 떼지 못합니다.
여러 장 붙어 있기에 엄마는 냉큼 한 장을 뜯어냈어요.
“유뽕아! 이거 갖고 싶니?”
“네에!”
엄마는 누가 볼세라 급하게 포스터를 접어 감추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지요.
유뽕이만 살짝 보여주고 나중에 붙여놓을 겁니다.
피아노학원에 들어 간 유뽕이가 건반은 두드릴 생각도 않고 열심히 그림만 그립니다.
조그만 종합장에 피노키오가 가득합니다.
허연 수염이 더부룩한 제페토할아버지도 있고 주인공 피노키오가 귀엽게 서있습니다.
피노키오의 양심인 지미니크리켓도 있네요.
영화에서 양심이 무엇이냐 묻는 피노키오에게 지미니가 말하지요.
“양심이란,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아주 작은 소리야!”
제페토할아버지네 또 다른 가족이며 피노키오의 친구들인 어항 속 클레오와 고양이 피가로도 잘 그렸습니다.
아직은 엉성한 색칠이지만 엄마의 눈엔 세상 어떤 미술작품보다 근사합니다.
(유뽕이가 피아노 학원에서 그린 피노키오 입니다^^)
점점 유뽕이의 피노키오 사랑은 적극적으로 변해갑니다.
“엄마, 코가 늘어났어요!”
뜬금없이 하는 말에 왜 그러냐고 물으면 자기 코에 손을 뾰족하게 대어보입니다.
강아지 견우를 끌어안고 피노키오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엄마의 빨간 플라스틱 미용도구를 꺼내다가 견우 코에 강제로 붙이려합니다.
견우는 고통스러운지 고개를 좌우로 흔듭니다.
“움직이지 마! 가만히 있지 못해!”
사정없이 주먹으로 견우에게 일격을 가합니다.
피노키오 역할에는 역부족이건만 애꿎은 견우만 혼이 납니다.
유뽕이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어요.
“이거 안돼요! 붙여주세요!”
저런, 견우 코에 플라스틱 원통대롱을 붙이려 하다니요.
뜻대로 되지 않자 떼를 쓰기도 합니다.
“아빠! 피노키오 사주세요!”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봅니다.
결국 아빠는 어릴 적 유뽕이가 끔찍이도 사랑했던 피노키오영화를 구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컴퓨터에 저장해주시고 마음껏 보게 했지요.
밥 먹는 것도 잊고 시도 때도 없이 몰두해서 봅니다.
음악이 나오면 신나게 춤도 추지요.
우리가족들은 유뽕이를 따라 밥 먹다말고 덩달아 어깨를 들썩거려 주었답니다.
그런데...., 새로운 걱정이 생겼습니다.
자꾸만 피노키오를 사달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다 뒤져도 제대로 된 인형이 없네요.
헝겊으로 물렁하게 된 것 말고 코가 딱딱 하게 길어야 하는데 큰 걱정입니다.
갖고 싶은 것도, 떼쓰는 일도 없었던 유뽕이에게 욕심이 생겼다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인데 말이지요.
어제는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을 하지 않기에 피노키오 인형 사준다고 하니,
한 시간 내내 건반을 두드립니다.
소중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 참고 인내하는 법을 익혀갑니다.
어디가면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을까요?
당장 등에 업고라도 오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랍니다.
2009년 11월 7일에
피노키오 사랑에 빠진 유뽕이를 고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