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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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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41 - 무엇이 될까?


BY 박예천 2010-09-09

     

       무엇이 될까?

 



 

열매 가득한 가을만큼 유뽕이도 참 많이 컸다고 엄마는 생각합니다.

말끔히 세수 한 후, 마주보며 뽀뽀할 때 보니 녀석의 입술은 엄마 얼굴 바로 앞에 있답니다.

허리 굽히지 않아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유뽕이 눈 속에 엄마가 있습니다.

눈높이 맞춰 무릎 꿇어야하는 엄마가 힘들까봐 쑥쑥 커버렸나 봅니다.


오늘도 그림그리기를 밤늦도록 했지요.

‘귀여운 꼬마가 닭장에 가서 암탉을 잡으려다 놓쳤다네.’라고 신나게 부르며 커다란 스케치북을 채워갑니다.

맨 앞장엔 암탉 두 마리가 사이좋게 서있고, 뒷장엔 시커먼 돼지 두 마리를 그렸습니다.

아마도 제주도 흑돼지인가 봐요.

울밖에 있던 늑대가 돼지를 물고 가니 꿀꿀꿀 소리쳤다네요.

그림 옆에 빼곡하게 가사를 적어놓았습니다.

읽어보라는 친절한 유뽕씨의 배려인 것만 같아 엄마는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나란히 누워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유뽕이먼저 기도하고 엄마도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들을 기도합니다.

토실토실 가을에 더 커진 녀석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물어봅니다.

“아이구! 정말 많이 컸네. 유뽕인 이담에 커서 뭐가 될 거야?”

“네에, 유뽕이 될 거예요!”

역시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유뽕엄마입니다.

“아니, 이만큼 키가 더 크고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 될 거야?”

“유뽕이 될 거예요!”

아까처럼 똑같은 대답만 내놓습니다.

엄마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잠들기 전에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그럼, 파랑새반 친구들은 커서 뭐가 된다고 했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녀석이 단답형으로 말합니다.

“현성이....., 군인!”

“어머, 현성이는 군인이 되고 싶대? 또 다른 친구는?”

“주호....., 경찰!”

“아하 그렇구나. 주호는 경찰이 좋은가봐 그치?”

엄마 목소리에 팔딱팔딱 힘이 넘쳐납니다.

박자에 맞춰 대답하는 유뽕이가 예뻐서 대답하나 내밀적마다 볼에 뽀뽀를 찍어줍니다.

“다른 친구는 없어? 커서 뭐가 되고 싶을까?”

“희성이도 경찰!”

친구들의 장래희망을 줄줄 외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교실에 붙여놓은 것을 지나치며 읽었던 모양입니다.

시각적인 기억력이 뛰어난 유뽕이지요.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사진 찍는 것처럼 머릿속에 저장된다고 전문가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는 계속 유뽕이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희성이도 경찰이 되고 싶대? 남자니까 씩씩한 경찰이 좋은가봐!”

순간, 일학년 때 유뽕이한테 시집오겠다던 여자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그럼...., 수지는 뭐가 되고 싶대?”

일초도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수지는 선생님!”

“그렇구나. 수지는 선생님이 되고 싶구나!”

이제 정말 유뽕이의 장래희망만 말하면 되는데..., 녀석은 자꾸 엉뚱한 대답만 하니 엄마 속이 탈 지경입니다.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엄마가 물어봅니다.

“유뽕아! 너는? 넌 이담에 커서 어떤 사람 되고 싶니? 말해주라!”

귀찮게 물어보는 엄마가 싫었는지 짧게 대답을 합니다.

“아빠 될 거예요!”

속으로 엄마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겨우 아빠가 되겠다니.

요즘 유독 아빠가 낚시만 좋아해서 엄마의 잔소리가 늘어가는 중이거든요.

“아빠 말고 다른 거 해보자! 어떤 사람 될까? 우리 유뽕이는?”

졸음 쏟아지는데, 끈질기게 물어오는 엄마가 얼마나 싫었을까요.

이번엔 유뽕이도 꽤 오랫동안 생각을 합니다.

그러더니 아주 간단하게 엄마 향해 대답을 쏘아댑니다.

“건강한 아빠!”

 



아! 이럴 수가.

세상적인 욕심만 가득한 엄마보다 오늘도 유뽕이가 한수 위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던 엄마의 마음이 언제 이렇게 때묻어버린 걸까요.

엄마는 말없이 유뽕이의 듬직해진 어깨만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토닥이기만 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훌륭한 말을 배워 이어붙이기 한 것인지.

유뽕이의 마음은, 알아갈수록 매순간 커다란 깨우침으로 다가옵니다.


꿈은 이루어 질 거예요.

유뽕이가 단 한마디라도 말할 수 있기를 소망했던 지난날 꿈들도 이루어졌듯이.

엄마는 번쩍 힘이 납니다.

건강한 아빠 될 유뽕이 덕분에 고물고물 손자들도 생길 것이라는 묘한 웃음과 함께! 


 


 

2009년 10월 14일

유뽕이와 장래희망 얘기하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