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를 하네?
일주일에 세 번 유뽕이는 치료선생님 댁에 갑니다.
학교수업이 제시간에 끝나면 잠시 여유가 생기지요.
그러면 엄마와 유뽕이가 동행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목우재터널 나들이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유뽕이는 터널을 무서워했습니다.
귀를 막거나 눈 꼭 감고 주문외우 듯 중얼대며 울곤 하였지요.
작정하고 틈만 나면 터널을 다녀온 덕분인지 이제 유뽕이는 터널 속에서도 울지 않아요.
콧노래 부르며 엄마 손을 꼭 잡고 갑니다.
조금은 겁이 나는지 긴 터널 끝을 빠져나오면 혼잣말 합니다.
“터널 없다!, 이제 끝났다!, 안녕!”
지난 금요일에도 목우재 터널을 넘었습니다.
수다쟁이 엄마는 한손은 핸들잡고 나머지 손으로 유뽕이 손을 감싸 쥔 채 쉴 새 없이 말합니다.
“유뽕아! 터널 간다. 우리 야호 할까? 시작!”
엄마와 유뽕이가 외치는 ‘야호!’소리는 꼭 터널의 길이만큼 길게 이어집니다.
둘 중 한사람이라도 중간에 끊어지는 법이 없지요.
신나게 목청껏 소리 지르며 터널 속을 달려갑니다.
겁내지 말고 다가서라는 엄마의 속마음이 유뽕이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며 더 힘차게 외칩니다.
가끔 얼굴이 벌겋게 소리치다가 콜록콜록 사레 걸린 기침소리를 내기도 하지요.
(이 사진은 아쉽게도 목우재를 넘기 전에 찍은 봄 풍경이네요..)
시멘트 터널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초록나무 터널이 이어집니다.
봄날에 흩날리는 솜사탕 꽃가루를 뿌려대던 벚나무터널입니다.
여름 내내 둥근 모양으로 초록빛 지붕을 길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엄마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유뽕이에게 속삭였지요.
“우와! 터널이 또 있네. 이건 나무터널이다 그치? 유뽕!”
목우재 터널 속에서 외쳐댔던 유뽕이의 ‘야호!’가 다시 실력발휘를 합니다.
엄마도 덩달아 나무터널이 더 좋다며 어깨까지 들썩입니다.
조수석에 앉아 그때까지 앞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유뽕이 눈이 하늘 쪽으로 향합니다.
양쪽으로 늘어선 나뭇가지가 서로 맞닿아 엉겨 붙어 있었지요.
유뽕이가 조그맣게 엄마 귀에 말합니다.
“와! 나무가 악수를 하네?”
녀석의 말에 속으론 엄청나게 놀랐지만 태연한척 대답했습니다.
“어? 정말 그러네. 나무들이 ‘만나서 반가워!’ 말하는 건가봐!”
곁눈질로 바라보니 유뽕이는 자기 양손을 마주 잡으며 악수하는 흉내를 냅니다.
면봉으로 매일 후벼내도 엄마 귀에는 나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유뽕이는 금방 알아차립니다.
손을 내밀어 친구 삼는 나무들의 마음까지 읽어버렸지요.
저런!
나이만 잔뜩 먹어 늙어가는 엄마가 또 한 가지 유뽕이에게 배우고 말았네요.
저녁부터 가을비가 내립니다.
며칠 바람과 비를 먹은 나무터널이 한 폭 수채화로 변해갈 모습이 기대됩니다.
빨갛게 물든 손들을 내밀어 악수하고 있겠지요.
일주일에 세 번 엄마와 유뽕이는 설악산 나무터널을 달린답니다.
물론 내일도 가지요.
깊어가는 이 가을밤에도 나무들은 악수한 손을 내려놓지 않았겠지요?
2009년 9월 27일
유뽕이의 말 한마디 떠 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