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결핍증
봄비 먹은 찔레 순처럼 유뽕이의 체중이 몽실몽실 불어납니다.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랍니다.
나중에 브래지어를 빌려줘야 할 정도로 가슴살이 봉긋해졌으니까요.
잘 먹어대는 식성에도 문제가 있지만 보통의 친구들보다 움직임이 덜해서 그럴 겁니다.
드디어 아빠는 유뽕이 뱃살빼기 프로젝트를 제안하셨지요.
주말마다 등산을 계획하고 벌써 몇 번이나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백두대간 봉우리 중 한 곳 택하여 산속 강행군을 했지요.
뭔가 짐을 지고 걸어야 운동이 된다며 아빠는 유뽕이 어깨에 가방을 얹어줍니다.
처음으로 등에 배낭을 짊어진 유뽕이는 등산로 초입부터 헉헉 거립니다.
물병 두 개와 점심대신 먹을 찰떡보퉁이도 유뽕이 짐 속에 대롱거리며 달려있습니다.
송천 떡 마을에서 유뽕이가 좋아하는 쑥 개떡도 샀지요.
가파른 산중턱에 다다르자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오던 땀방울이 목에 넘쳐흐릅니다.
산 아래 아파트 숲에서는 옆구리를 찔러도 하지 않던 말들이 술술 터져 나옵니다.
유뽕이는 그렇게 산에 올라 나무나 풀포기 냄새 맡으면 곧잘 말을 한답니다.
자연의 모든 것이 치료약이 되는가봅니다.
“어휴! 힘들다!”
“너무 힘들어. 무겁다!”
“살을 빼야겠다!”
녀석을 앞세우고 뒤따라 걷던 엄마와 아빠는 유뽕이가 쏟아내는 한숨 섞인 말들에 크게 소리 내어 웃습니다.
유뽕이만큼 뱃살이 출렁거리는 엄마도 뒤뚱거리며 안간힘을 씁니다.
워낙에 운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한참을 걷자 뽕뽕 뾰족방귀가 새어나옵니다.
산속 맑은 공기 다 오염시킨다며 아빠는 자꾸 키득거립니다.
몸 안에 나쁜 가스들이 전부 새어나오는 모양입니다.
걸으며 야생화사진 찍고 곰취도 뜯었지요.
계곡안쪽 샘물로 목을 축이고 흙먼지도 말끔히 씻어내니 초록나무 빛깔만큼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오전에 시작된 등산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격한 운동이었는지 유뽕이가 열이 나며 아픕니다.
아홉 살 때 대청봉등반을 거뜬히 해낸 녀석의 체력이 물렁해졌나봅니다.
끙끙거리다가 토하기를 여러 번.
엄마는 물수건 갈아주느라 곁에서 밤을 꼴딱 샙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이틀을 축 늘어져 있는 녀석의 얼굴이 안쓰럽게 다가옵니다.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지요.
퇴근하는 길에 우럭 한 마리 사오라고.
예전에 장염으로 일주일 못 먹고 앓을 적에도 매운 것만 찾았던 유뽕입니다.
“엄마, 아! 매워라밥 해줘!”
고추장에 비빈 밥을 ‘아! 매워라밥’이라고 불렀지요.
저녁에 되자 아빠가 사온 생선으로 엄마는 보글보글 매운탕을 끓입니다.
아빠는 살만 발라내어 유뽕이 입속으로 두 토막이나 먹여주었지요.
얼큰한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었습니다.
첫째 날에 이어 벌겋게 오르기 시작하던 열이 매운탕 기운에 주눅 들었는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병원에서 지어온 약은 두 번 먹다 토해버리고 오로지 매운탕만으로 열 감기를 이겨냈지요.
어른들이 감기몸살 걸릴 때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마시면 거뜬하다더니,
유뽕이에게도 약보다는 매운맛이 특효인가 봅니다.
매운탕 한 그릇에 기운 차린 녀석을 보더니 아빠가 진단을 내립니다.
“유뽕이는 감기가 아니었어! 매운탕결핍증이었던 거야!”
하긴 그 말도 맞네요.
지난 봄 몇 달 동안 아빠의 낚시 대는 바다구경 한번 못했으니까요.
월요일 하루 결석한 유뽕이는 매운탕에너지를 충전하고 학교에 갔지요.
저녁밥을 먹고 나자 아빠는 한마디 합니다.
“밤낚시를 가볼까? 요즘엔 뭐가 나오려나.”
매운탕결핍증 걸린 아들 핑계로 오랜만에 바닷바람이 쐬고 싶은 모양입니다.
유뽕이덕분에 엄마도 덩달아 싱싱한 매운탕을 맛보겠네요.
아빠의 월척을 기원하며!
2009년 5월 12일
유뽕이 열감기가 매운탕치료법(?)으로 효과 보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