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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26 - 소치는 아이


BY 박예천 2010-09-09

    

       소치는 아이

 


 

 

유뽕이는 인터넷동화를 좋아합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지요.

오늘은 이솝우화인 ‘낙타의 소원’을 보고 있네요.


어느 날, 낙타에게 다가온 소가 뽐내며 말합니다.

 

어때? 내 뿔 멋있지?

낙타는 멋진 뿔을 가진 소가 부러워 신에게 달려갑니다.

저에게도 뿔을 주십시오!

신은 거절하며 말합니다.

너는 소보다 크고 훌륭한 몸집이 있지 않느냐?

낙타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신에게 또 말하지요.

그렇지만 뿔은 없습니다.

무슨 소리! 소는 사막을 오래 걷지 못한다. 너는 사막을 얼마든지 걸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 않니?

낙타는 계속 불평하며 신에게 같은 말을 하지요.

그렇지만 뿔은 없습니다.

화가 난 신은 낙타에게 뿔을 주지 않았고 귀마저 아주 작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야기가 끝나는 화면에 낙타가 눈물을 흘리고 있네요.

휴지 한 장 뽑아든 유뽕이가 모니터 위를 벅벅 문지릅니다.

“낙타, 눈물 닦아라!”

어쩐지 며칠 전부터 컴퓨터 옆에 구겨진 휴지조각이 많이 있더군요.


유뽕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동물은 바로 소랍니다.

어디선가 소울음소리가 들리면 두 눈 꼭 감고 손으로 귀를 감싸 쥔 채 마구 울지요.

엄마, 아빠랑 나들이 가다가도 소 키우는 목장 앞을 지나갈 수가 없답니다.

멀찌감치 소똥냄새만 느껴져도 벌써 몸이 움츠러듭니다.

차안에 숨어 꼼짝하지 않고 큰 소리로 악을 씁니다.  


세 살 무렵이었을까요.

외할머니 댁에 놀러갔다가 외양간에 묶여있는 소를 보게 되었습니다.

방긋 웃으며 손가락질하기에 엄마는 유뽕이를 안고 소 곁에 갔지요.

커다란 눈 껌뻑거리는 누렁이소를 보자 유뽕이는 손으로 만지고 싶어 합니다.

오른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순간, 새끼 송아지 살피려는 엄마소의 큰 음매소리에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지요.  

충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날부터 소는 유뽕이에게 가장 큰 공포의 동물이 되고 말았답니다.

기억력 유난히 뛰어난 녀석인지라 소를 향한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소와 친해지는 법을 익히게 하기 위해 엄마는 일부러 소 곁으로 녀석을 떠밀었지요.

민속마을에 가면 풀을 잔뜩 뜯어들고 유뽕이에게 먹이게 했습니다.

뒷걸음치면서도 긴 풀만 골라 슬쩍 소의 입으로 넣어줍니다.

속마음은 덜덜거리면서도 호기심을 지녔던 모양이지요.

아주 조금씩이지만 충격을 덜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소울음소리만 들리면 여전히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같은 말만 반복합니다.

“소 안녕! 끝! 그만!”


어느 날 부터인가 녀석은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지 혼잣말 합니다.

“소 좋아! 나는 소 좋아해!”

그림그리기 좋아하는 유뽕이의 스케치북에도 간혹 근육 좋은 소가 등장하기 시작했네요.

기분이 밝은 날에는 젖이 퉁퉁 불은 젖소를 그려놓기도 합니다.

곧 우유를 짜주어야 할 정도로 덩치보다 젖이 큽니다.

서비스로 먹이통까지 소의 머리 밑에 그려주기도 하지요.

유뽕이의 변화에 엄마는 신이 났습니다.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소 그림을 가위로 오려 거실 벽에 잔뜩 붙여놓습니다.

“우와! 대단해. 유뽕이 그림 잘 그리네! 소가 웃고 있네?”

칭찬이 좋은가봅니다.

저녁 배불리 먹은 유뽕이는 저 혼자 밥 먹은 게 미안했던지 소를 그립니다.

부엌창문틀아래 매달아 놓은 보드칠판위에 쓱쓱 멋진 소를 그렸네요.

먹이로는 꼴짐 하나 내려놓았습니다.

 


 

소잔등에 조심스럽게 올라앉은 사람 모습도 보입니다.

넓은 밀짚모자를 눌러쓴 목동인가 봐요.

혹시 저 소치는 아이가 유뽕이는 아닐까 한참을 들여다보며 웃습니다.

지우개로 지워버릴까 얼른 사진 속에 담아둡니다.


내일아침 동창이 밝아오면 소치는 아이 유뽕군은 아마도 밭 갈러 나갈지도 모릅니다.

다시 봐도 행복한 그림입니다.

소의 웃는 얼굴도,

올라선 소치는 아이의 편안한 표정과 자세도.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2009년 4월 23일 밤에 유뽕이가 그린 소 그림 보다가.

0개
솔바람소리 2009.04.24 17.43 신고
유뽕이를 대하는 예천님의 마음이 존경스럽습니다.
내 아이들에게 옹졸하게 대하고 있는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하구요.
유뽕이 그림실력, 특히 웃는 소의 모습이 압권입니다.
소 등의 목동, 제가 보기에도 유뽕이 같은데 모두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행복해보여요. 모두 사랑 넘치는 예천님이 유뽕이
곁에 계시기에 그러겠지요.  
  박예천 2009.04.24 21.02 수정 삭제 신고
솔님!
그런말씀 마시어요. 어찌 저만 대단한 어미이겠습니까.
세상 모든 자식가진 어미의 마음이 다 같지 않겠어요?
오늘 아침....유뽕이는 갑자기 지우개를 들더니 소의 눈을 지웁니다.
그러더니 스마일표 눈을 동그랗게 놀란 눈으로 바꿔 그리더군요.
밤새 무슨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덕분에 목동태우고 서있는 소는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답니다^^

오늘...장애인의날 기념 사생대회 나갔는데 보기좋게 낙방했지요.
언제부터인가..스피커 통해 나오는 동요에 새로운 공포를 느끼는데,
행사시간 내내 그 음악이 나왔답니다.
불안에 덜덜 떨며 혼잣말만 중얼거리느라 제 실력 발휘 못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었지요.
그래도 잘 다녀 온 것 만으로 만족합니다.
솔님도....모성애 넘치게 끈적이는 어미인 걸 잘 압니다.
우리.......힘내자구요!!!  
시선 2009.04.24 01.20 신고
따가운 눈을 비비며 인터넷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막 나가려던 찰나 님의 글이 올라와 있네요.ㅎㅎ 오늘 울 막내녀석 다짜고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타학원으로 옮긴데요. 이유를 물었더니 막무가내로 싫다네요. 요즘 중간고사를 앞두고 학원에서 빡세게(?) 시키니 나름 힘든가봐요.
살살 달래긴 했는데....말을 들을지....ㅎㅎ
그러더니 생뚱맞게 하는말.....자기는 거미가 세상에서 젤 무섭대나 뭐래나... 학원에서 친구가 거미를 훅 불어서 자기 어깨에 떨어졌는데 거의 울뻔 했다는 거에요. 중학교 일학년이나 되는녀석이...하이고~ㅎㅎ
웃고 있는 소를 보니 유뽕이가 소와 많이 친해지려나 봅니다.
유뽕이와 예천님 행복해보여요. 저도 덩달아 웃고 있는 소처럼 흐뭇해지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편한 밤 되셔요~^^  
  박예천 2009.04.24 01.24 수정 삭제 신고
어느새 오셔서 댓글 달아놓으신 시선님!
님의 댓글 읽다가 한밤중에 소리지를 뻔 했답니다.
왜냐구요? 실은 중학교 일학년 울 딸아이도 얼마전 학원을 옮긴다고 투덜투덜. 결국 시간대를 바꾸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지요.
그리고..ㅎㅎㅎ 더 놀란것은 우리 딸도 거미를 젤 무서워해요. 뱀은 마구 만지면서도 왜 그리 작은 것이 무서운지요.ㅎㅎ 정말 놀랄정도로 같은 처지의 아이를 둔 님이 오늘밤은 바로 곁에 계신듯 가깝게 느껴집니다.
몸은 비록 힘드셔도....님은 에너지 충만한 분이니...아시죠? 힘내세요!! 빠샤!!  
선물 2009.04.24 01.03 신고
가끔 늦은 시간에 들어 오면 예천님 글을 만나게 됩니다. 이토록 야심한 때 글바람 나신 분. *^^* 요즘 한참은 그 바람이 부러웠지요. 유뽕이 그림에 잠시 놀랐습니다. 세밀한 표현력이 눈에 띕니다. 웃는 눈, 웃는 입, 귀, 꼬리...제 눈엔 예술입니다. 소 위에 올라탄 아이는 유뽕이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역시 방실 웃는군요, 낙타의 눈물을 닦아주는 유뽕이...그 따뜻함이 오늘은 참 사랑스러워요.  
  박예천 2009.04.24 01.12 수정 삭제 신고
일부러 늦은 시간까지 있는 것은 아니구요. 녀석이 잠든 후에만 간신히 얻어지는 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지요. 잠이 부족해 늘 졸면서도 왜 이짓인지 원...ㅎㅎㅎ
오늘 있어진 일을 내일로 미루다 보면 순간의 감상도 떨어지고 해서,
좀 피곤해도 곧바로 올리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대단한 글쟁이 흉내를 내고 말았네요. 속빈 강정이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