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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11

유뽕이 시리즈 21 - 파랑새반 아이들 (1)


BY 박예천 2010-09-09

파랑새반 아이들(1)- 친구야 안녕!


유뽕이의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백여 명이 될까 말까한 작은 곳입니다. 시내에서 떨어진 설악산 쪽에 있지요.

누나가 다니던 집 앞 학교엔 특수반이 없답니다. 엄마는 매일 유뽕이를 태우고 십분 정도 자동차로 학교에 갑니다.

유뽕이는 사학년 파랑새반입니다. 반 친구 전부가 열 네 명이랍니다.

 


           (사진속에 유뽕이와 몇몇 친구가 없어요^^ 설악산 소풍사진입니다)


토요일인 오늘은 요리실습 있다고 알림장에 선생님이 적어주셨습니다. 모둠별로 음식을 만든다는 군요. 비빔밥을 한다며 유뽕이는 콩나물을 무쳐오랍니다.

아이들이 먹기 좋게 고소한 참기름 넣고 작은 통에 넣어 보냈습니다.

밥 한 그릇, 숟가락, 마실 물도 담았지요.

종이가방에 커다랗게 이름도 적었습니다.

전.유.뽕 꺼.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엄마는 차를 몰고 유뽕이네 학교 교문 앞으로 갑니다.

심심한지 꼬리 흔들며 따라나선 흰둥이 견우도 차안에 있었지요.

봄이 점점 깊고 따뜻해져갑니다.

학교마당 가득히 봄바람이 흙먼지를 풀풀대며 돌아다닙니다.


점심때가 되자 드디어 교무실 현관쯤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서너 명씩 무리지어 양손엔 가져갔던 빈 그릇이 담긴 가방을 들었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엄마는 깜짝 놀랐답니다. 제각기 크게 울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입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기명이는 특히나 눈물범벅입니다.

양옆에서 다독이는 종호와 기락이도 벌써 많이 울었는지 눈가가 부어있고요.

뒤따라 나오는 여자아이들도 얼굴모양새가 엉망입니다.

수지와 효진이는 콧소리로 맹맹해졌습니다.


황급히 아이들 곁으로 다가선 엄마가 물었지요.

“얘들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니? 선생님께 단체로 혼났어?”

곧이어 기명이가 울음 섞여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유리하고 유희가 파주로 전학간대요! 엉엉엉!”

아하, 쌍둥이 유리, 유희가 전학을 간답니다.

우리 유뽕이를 특히 잘 도와주고 가끔 보는 견우녀석도 귀여워하던 친구들이었는데.

엄마도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친구들이 반 이상 교문 앞으로 나왔는데 유뽕이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느림보라서 챙길 것도 많겠지요.

현성이와 주호가 견우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슬쩍 물어보았지요.

“주호야! 친구들이 왜 울었던 거야?”

“유리, 유희한테 선물대신 편지 써서 책으로 만들어 줬거든요. 그거 읽다가 유리가 눈물 흘리니까 친구들이 전부 울어버리는 거예요!”


세상 각박한 줄로만 알았던 엄마였는데,

이렇게 가슴이 따뜻한 아이들이 있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비빔밥을 아이들과 만들어 먹었던 겁니다.

서로 뒤섞이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잘 간직하라고.

온정초등학교.

이름처럼 곱고 순수한 아이들이 머무는 곳.

정말 유뽕이가 온정어린 파랑새반 아이로 있게 되어 감사하답니다.

 

저만치 꼴찌로 유뽕이가 느릿느릿 걸어옵니다.

엄마를 발견하고도 부르거나 반기지 않지요.

녀석의 얼굴을 보니 눈물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벙글거리며 엄마 곁으로 다가옵니다.

비록 친구의 전학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슬픔의 무게도 갖지 못하는 유뽕이지만 그저 파랑새반 아이들과 뒹구는 매순간이 행복일거라 엄마는 믿습니다.

 

집에 와서 챙겨온 빈 그릇 종이가방을 열어보았지요.

고추장에 콩나물 섞어 비벼진 빨간 비빔밥 몇 숟가락 남아있습니다.

말도 없는 유뽕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넵니다.

“우와! 엄마 먹으라고 남겨왔네. 이거 유뽕이가 비빈거야? 진짜 맛있다.”

엄마 입안에 들어간 유뽕이표 비빔밥에는 파랑새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웃음과 온정어린 맘이 잔뜩 섞여 있는 듯 했답니다.

 

꿀맛이었지요!




2009년 4월 4일 파랑새반 고운친구 유리와 유희가 전학 가던 날에. 


0개
비먼지... 2009.04.09 23.39 신고
어찌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때 상황을 상상해 보니.... 맘이 찡하고 아프네여...
또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모습도 보여서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박예천 2009.04.10 01.15 수정 삭제 신고
처음 뵙는 분이네요? 누구실까.....
정말 순수가 살아있는 현장을 매일 지켜보고 산답니다.
파랑새반 아이들....사랑스럽지요.  
오월 2009.04.05 16.01 신고
오늘은 글씨체도 달라졌군요 ㅎㅎㅎ
아!!오늘은 다들 왜 날 배고프게 만드는
글들을 쓸까 집에 들어가면 콩나물 팍팍묻혀
유뽕이표는 아니여도 비빔밥 꼭 해먹어야지
군침 넘어가네요.
파랑새반 아이들 모두 파란 하늘같은
마음에 저도 설핏 눈가에 이슬 맺혔답니다.  
  박예천 2009.04.05 23.55 수정 삭제 신고
아! 오월님.
한글 프로그램을 뒤적이다가....이 글을 쓸 때만큼의 어린아이의 정서와
걸맞는 글씨체가 있기에 선택해 봤네요.
아이들의 고운 마음에 하루종일 푸근했답니다.
그런 아이들속에 있는 유뽕이가....참으로 행복한 녀석이라고 생각했구요.
작은 시간들이 모두 소중하네요...저에게는.
감사할 이야기들만 가득하구요.
읽어주셔서 또한 감사하지요^^  
라리 2009.04.05 09.08 신고
아...저도 가슴 지릿하며 눈물이 나오려하네요...
아직 자고 있는 저의 딸아이의 천사같은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저... 감사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박예천 2009.04.05 23.52 수정 삭제 신고
라리님!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게해준 님의 꽁쥬나 저의 유뽕이가 참 고마운
녀석들이죠.
감사한 마음은 넘치게 갖더라도,
미안한 마음은 뒤로 감추고 사세요.
그만큼......사랑해주고 계시잖습니까.
행복한 한 주일 맞으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