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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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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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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모녀.


BY 솔바람소리 2015-08-20

지이이잉...지이이잉...’

오늘, <엄마>라는 발신자 표시가 찍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넋을 놓고 잠시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목에 힘을 주고서 헛기침 몇 번한 뒤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하고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 ~~!!!”

계좌번호 빨리 불러봐!”

?”

빨리!!! 엄마 시간 없어~!”

...잠시만 통장 좀 찾고...”

찾았어?”

“...!”

잠깐만, 불러봐!”

번호를 부르려는데 잠시만요, 우리 딸이 불러 줄거에요...”하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굵직한 목소리의 남자가 번호를 불러주면 된다고 했다.

1244분을 지나고 있는 시간이라면 작년에 환갑을 넘긴 엄마가 8년을 넘게 다니시는 공장의 점심시간임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안부 전화라고 생각하며 받았는데 번갯불에 콩을 볶는 상황이었고 정신이 없는 채로 내 입에서 계좌번호를 읊고 있었다. “알겠습니다.”라는 남자의 말이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몇 초쯤 지났을까...엄마의 성함이 찍힌 백만원 타행입금이라는 알람문자가 왔다.

창밖에 비처럼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45살 딸이 용돈을 보내드려도 시원찮은 마당에 아직까지 심려를 끼쳐드리며 살고 있는 내 자신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조차 드릴 면목이 없었다.

어렵게 이혼하고 5년이 넘도록 양육비 없이 혼자서 남매를 키우기 위해서 정신없이 지나왔던 시간들이었다. 결혼 처음부터 지금껏 23년 동안 친정 부모님께서 해마다 쌀과 김치를 비롯한 1년치 양식을 보내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데, 부모님 살아생전 그 은혜 1000분의 1이라도 갚을 수나 있으려나...이를 물고 더욱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쳤었다. 이제 겨우 부모님께서 안도를 하실 만큼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저축을 할 정도의 여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도 아이의 학비와 학원비를 충당 할 수 있을만큼 수입도 괜찮은 나날을 보내며 자신감 찾아 가던 차였다. 몸은 약하고 나이도 적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던 내게 텔레마케터는 천직이었다.

자만하지 말라는 듯 살면서 의도치 않은 변수와 힘겨운 고비를 맞이할 때도 있었지만 곧잘 이겨내고 버텨왔었다. 하지만 지난 6, 다니던 직장이 갑작스레 영업정지를 받았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을 매우기 위해서라도 결코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 생각나서 연락을 취했고 바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같은 텔레마케터 영업직이었지만 업종이 다른 그 일은 내 성격과는 전혀 맞지를 않았다. 겨우겨우 2달을 채우고 그만두게 되었다. 알바몬, 알바천국, 벼룩시장...그만 둔 날부터 채용 공고 란을 살폈다. 며칠을 눈이 피곤할 정도로 확인했는지 모른다. 짧게 생각했다면 들어갈 곳이야 많았다. 하지만 언제 문을 닫을지 걱정되거나 급여가 제대로 나올지 확신이 서지 않는 곳들이어서 취업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상시모집으로 나와 있는 곳들은 잠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들뿐이었다. 마음이 조급했던 8월의 며칠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억울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 나만 이렇게 전전긍긍해야 하지? 내 삶이지만...비빌 언덕 하나 없이 홀로 떠있는 섬처럼 왜?...’

차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으로 두문불출하며 지냈던 것 같다.

지난 731, 방학 중인 고2 딸과 함께 친정으로 내려갔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1년에 두어 번 찾아뵙는 것이 전부인 딸이 말했던 것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것에 반색했던 부모님이셨다.

내일 온다며 어떻게 오늘 왔어? 반찬 아무 것도 해놓은 것이 없는데...”

아빠, 엄마 보고 싶어서 직장 때려 치고 내려왔지! 난 엄마가 해준 밥은 김치에 물만 말아 먹어도 좋아~! 알면서!”

때려 쳐? 뭐여...진짜여, 장난이여?”

휴가라며 아빠 밭일까지 돕고 들어오신, 땀으로 흠뻑 젖은 엄마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진짜야, 엄마! 그 동안 딸 열심히 일한거 알지? 좀 쉬어줄 때가 됐어!”

그때만 해도 배짱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정말 쿨하게 말했던 철딱서니 없는 무식하게 용감한 목소리의 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잘했다! 그럼! 그럴 땐 쉬는 거야! 우리 딸 정말 잘했다.”
딸 못지않게 시원한 목소리로 대꾸해주던 엄마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땀으로 젖은 옷만 갈아입고서 주방으로 향하셨다. 휴가 받은 큰 남동생 내외도 내려왔던 23일 동안 잘 먹고 잘 쉬었건만 화장실 다니실 때마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딸이 맘에 걸리셨는지 올라오던 날, 일찍 기침하신 엄마 곁으로 쪼르르 다가가 앉으니 코흘리개 어린애를 대하듯 불혹을 넘긴 딸의 얼굴을 고생으로 굳은살이 밴 두 손으로 쓸어주시며,

그렇게 잠 못 자서 어쩌냐? 고민하면 몸만 상하지 달라지는 건 없어! 우리 딸이 얼마나 장한데! 지금처럼 앞으로도 더 잘 할 수 있을 건데! 마음만 잘 다스리면 다시 좋은 날 온다.” 하신다.

열길 물속도 알고 한 뼘 딸 맘속까지 내다보는, 모르는게 없는 엄마가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아빠는 벌써 밭을 둘러보러 나가신 뒤였다.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몸을 일으켰던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방 한쪽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시면서 넌 왜 벌써 일어났어?” 화들짝 놀라면서 누군가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급히 내게 다가오더니 손아귀에 뭔가를 꼬옥 쥐어주셨다. 갑작스런 행동에 뭐냐고 여쭈려는데 큰올케가 잘 주무셨냐는 인사를 하며 거실로 나온 바람에 돈이라고 짐작되는 그것이 얼만지 확인도 하지 못한채 얼른 가방 속에 넣어뒀었다. 차도 없는 딸이 손녀와 함께 지하철로 움직이는 걸 걱정하면서도 이것저것 싸주는 통에 올라오는 길에 짐 하나는 포기하고 싶을 만큼 버거웠었다. 농사지은 수박이며, 참외, 복숭아, 옥수수, 단호박, 마늘쫑장아찌, 꼴뚜기무침...인내를 머금고 가져온 물건들을 바닥 가득 풀어놓고 보니 모두가 부모님의 피와 땀들뿐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보따리 하나는 버리고 올까? 잠시 지녔던 생각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뒤늦게 생각난 엄마가 쥐어줬던 돈을 확인하니 5만원권 10장이다.

잘 올라왔다는 인사를 드리며 염치도 없이 엄마께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씀만 드렸다.

아빠 모르는 돈이 그것 밖에 없어서...많이 못줘서 미안해. 엄마 딸은 강하니까 잘할거야. 믿어. 근데...이제 자식들 그만 생각하고 너부터 챙기고 살아라. 자식들 소용없어. 그래봐야 헛거야.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고 너도 좀 즐기면서 살아라!” 하신다.

자식 키워봐야 헛거라고 말씀하시는 당신은 키워놓은 자식도 놓지 못하시면서 여전히 팔이 안으로 굽는 말씀만하셨다.

의도치 않은 백수생활 20일째... 1주일 전쯤 연락 없는 무심한 딸에게 왕복 3시간 거리의 직장을 가기 위해서 나서고 계실 이른 아침시간에 전화를 주셨다.

, 엄마 출근 중! 밥 먹었어? 자는데 깨운 거 아니지? 요즘 어떻게 지내?”

차마 직장은 구했냐고 직설적으로 묻지는 못하신다.

잘 먹고 잘 자면서 푹 쉬고 있지! 엄마 딸, 애기 아니지? 걱정 말고 울엄마 돈 많이많이 벌어 오세요~ 파이팅하구~!!!”

그려! 그런 마음이면 곧 좋은 날 온다. 밥 굶지 말구!”

겉으로만 씩씩한 모녀, 그 엄마의 그 딸같은 대화를 짧게 마쳤다. 눈물이 또 핑 돌았다. 어쩌면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눈물을 훔치며 길을 거닐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난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늘 굳건히 존재만으로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셨던 부모님이 계셨던 것까지 잠시 망각을 했었던 거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다짐하며 다시금 채용정보란을 뒤적여봤다. 8월 휴가철, 9월은 추석 명절이 껴있는 탓에 나와 있는 일들이 여전히 마땅치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단기 알바식으로 할 수 있는, 그나마 눈에 뛰는 한 곳이 보였다. 그 동안의 수입보다 턱없이 부족한 급여였지만 노는 것보다는 났겠지 싶어서 오늘 면접을 3시로 잡아 놓은 터였다. 그런 중에 엄마의 갑작스런 연락과 함께 보내진 돈을 받게 되었다. 울면 안돼는데...면접 보려면 눈이 부우면 안돼는데...하지만 자꾸만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겨우 진정하고 엄마께 문자를 보냈다.

-엄마 감사해요. 아프지 말고 딸이 꼭 효도 할거니까 오래만 살아줘요.-

냉동실에 숟가락 두 개를 넣었다가 눈에 대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붓기가 살짝 내려앉았다.

약속한 시간에 씩씩하게 면접을 보고 돌아왔다. 결과는 내일쯤 통보해준단다. 결과와 상관없이 난 이미 다시금 용기 게이지가 풀로 차있는 상황이다. 딸의 문자에 아직까지 답장 없는 엄마는 오늘도 야근으로 12시가 가까워서 귀가 하시려나보다. 당신들을 위해서 제대로 쉬어 본적 없고 호사를 누린 적도 없는 부모님의 기력이 전과 달리 나날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걷던 모습에서, 앉아있던 표정에서, 누워있던 자세에서 말이다. ...자식이라면 불구덩이까지 뛰어들고도 남을 부모님의 사랑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그 되물림을 고스란히 이어받아서라도 내 자식들에게 꿋꿋한 엄마로 남아줘야 하고...머리카락을 잘라서 짚신을 짜드려도 부족할 부모님께 안겨드린 응어리를 풀어드리기 위해서도 잘 살아야 한다. 잠시 웅크리고 있었으니 다시 폴짝 뛰어봐야지. I cam do it!!!

엄마...! 말로 표현 못할 만큼 감사하고 사랑해요...더 힘내서 열심히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