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가량의 무소식이 이어지도록 골이 났던 감정이 어느새 걱정으로 변해버렸지만 녀석이 지니고 있을 핸드폰번호를 누르지 않았다. 자식의 훈육을 이유로 냉정함을 유지하기란 어미에게도 자해와 같은 고통이 수반됐다. 무슨 일이 있다면 벌써 연락이 왔으리라, 자위하며 나날을 보낼쯤 일과를 마치고 퇴근해서 쉬고 있을 때 ‘아들’이 찍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여보세요.”
이 첫마디가 절대 긴장으로 떨리지 않길, 걱정이 묻어 있지도 않길, 어미는 최대한 노력했다.
“저에요.”
녀석은 어느 심정으로 그리도 차분하게 입을 열고 있을까? 궁금했다.
“......”
하지만 어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저, 잘 있어요.”
“......”
정말 잘 있는지, 밥은 굶고 있지 않은지, 학점은행제를 대비해서 등록한 학원비로 수중에 있던 모든 돈을 지출하고 갖고 있는 것이 없을 것을 짐작하는 어미는 묻고 싶은 것이 더 있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엄마?”
“응.”
어미의 무반응에 녀석이 핸드폰 너머를 확인하듯 불렀다. ‘엄마’ 그 한없는 책임감을 지녀야 할 대상이며 따뜻함으로 인자해야할 존재이며 자식에 대한 것이라면 지리멸렬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인내를 져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일깨워주는 듯, 녀석의 부름이 그러했다. 울컥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뭔가가 뱃속 어딘가에서부터 올라오더니 목울대에 걸린 듯 뻐근한 통증이 일었다. 그 감정 또한 어미는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듣고 계세요?”
“응.”
“식사 하셨어요?”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는 독종의 어미를 녀석이 또 다시 부끄럽게 했다.
“응.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을 거 아냐, 해봐.”
자립심. 어미가 곁에 없어도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어미는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때론 녀석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고 살아남아서 제 힘으로 당당히 올라서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남매가 그런 어미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어미가 세상에 온전하게 남아있을 수 있을까? 녀석들은 때때로 독불장군처럼 고집스럽고 냉혹한 어미를 이유로 완전하게 자립하는 날이 온다면 세상에서 채 스러지지 않은 어미를 외면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특별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 드린 건 아니에요. 걱정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제게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 시간이 좀 더 필요해서 당분간 또 연락을 드리지 못 할거에요. 엄마가 전화를 주셔도 바로 받지 못할 수가 있으니 전화보다는 문자를 주시면 감사해요. 확인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저, 이상한 곳에서 있지 않아요. 컴퓨터프로그램 관련된 직장을 구했어요. 숙소도 제공되는 곳이구요...”
차분한 녀석의 장황한 설명이 한동안 이어졌다. 중학교 1년 선배와의 교제를 허락한지 1년 남짓 됐을 즈음이기도 했다. 어미는 서로에게 신뢰와 책임을 질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조언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서로의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어른이 봤을 때도 믿음이 가도록 예쁜 만남을 유지하길 당부했었다. 이런 어미의 바람을 깨버리는 상황이 온다면 그거 역시 서로의 몫이고 어미는 일체 관여치 않겠다고 장담한 바도 있었다. 녀석의 긴 무소식이 어쩌면 이성교제의 이유가 만의 하나... 속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다.
“혹여 그 애랑 같이 지낸 거라면 난 널 놓는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절 그렇게 못 믿으세요? 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제가 집을 나올 쯤, 누나에게도 연락을 끊었어요. 헤어진건 아니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구요. 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아직 답장을 한 적이 없어요.”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안도가 밀려왔다. 다행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수입이 많은 일은 아니지만 관심분야인 컴퓨터와 관련된 프로그램에 대해서 배울 것이 많은 곳이라 입사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녀석은 반은 자립한 상태로 밖에서 생활하며 어쩌다 몇 시간씩 잠깐 집에 들르는 생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녀석은 군 입대를 이유로 받아야 했던 신체검사 이전에 디스크치료를 위해서 병원에 입원해서 시술을 받았다. 그동안 MRI를 두 번 받아야 했고 몇 달 전에는 고환 쪽에 혹이 있다며 암을 걱정해서 다시 한 번 입원을 했고 물혹으로 짐작돼는 혹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었다. 다행히 조직검사에서 짐작대로 물혹으로 진단을 받았다. 때마다 어미는 직장과 병원을 어떻게 오가며 두 일을 처리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피를 말리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친정에서는 이런 어미를 안쓰러워하며 그놈의 피를 이어받아 애태우는 것까지 닮았다는 손주 녀석의 모든 것을 탐탁치 않아했고 녀석 역시 외갓집으로의 발길을 멀리했다. 어미는 점점 친정식구들의 넘치는 사랑이 감사하기보다는 쇳덩어리처럼 묵직한 부담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