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며 이 거리는 가을이 우수수 떨어진 황금빛 카펫이 깔리고 샹들리에에 뒤지지 않는 채 떨어지지 않은 은행잎을 메달은 은행나무 가로수들로 고풍스럽기까지 한다. 이쯤의 분위기라면 고약한 냄새쯤은 감내하리라. 이틀, 갑작스런 추위가 이어지더니 찾아온 출근길의 따스한 햇살이 직장이 아닌 일탈을 유혹케한다. 나는 은행잎 위를 육중히 즈려밟으며 도저히 떨칠 수 없는 도시락이 든 가방을 들쳐 메고서 직장으로 향했다. 집 밖을 나선지 5분. 하품 몇 번에 눈물을 찔끔한 시야로 횡단보도 건너편의 직장이 속한 빌딩이 들어온다. 습관처럼 두 손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역시나... 한쪽 얼굴에 이불자국이 깊게 느껴진다.
‘젠장... 또 자국이 나고 말았어.’
점점 게으름의 극치를 달리고 있음을 직감하지만 고칠 마음... 아직, 없다.
문득 거울을 보지 않고 왔음을 인지하고 핸드폰의 거울 어플로 눈매를 보니 아일나인이 눈 밑으로 진하게 묻어있었다. 역시나 본능에 충실한 나는 쓱쓱 손가락에 힘을 실어 문질러 댔다. 나름 정성들여 얼굴을 도색한 팩트까지 지워진 눈 밑이 누리끼리 떠보인다. 하지만 검은 것이 진하게 묻어 있는 것 보다는 났다고 판단한다. 다음, 파마기 있는 짧은 커트머리의 뒤통수가 눌렸나 열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머리 모양도 만들어 보지만 동료들이 반쯤 포기하고 쏟아 낼 관심들을 짐작한다.
“언니! 여름 내내 얼굴에 돗자리자국 내고 다닌 것 보다는 났지만 언제까지 얼굴에 자국 내고 다닐 거야?”
“암튼 XX씨는 늘 프리한 스타일이야...”
“그게 매력이잖아~!”
그리 떠드는 그들도 충분히 알 것이다. 나란 사람 그리 살다가 떠날 것을... 누가 뭐란다고 기죽지 않을 나란 것을...
5시30분 기상해서 딸의 식사를 챙겨 등교시키고 나면 7시쯤. 대충 화장을 하고 난 다음 9시 25분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밤에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을 자곤 했다. 이제 알람이 울리면 미리 준비한 옷에 몸을 끼워놓고 본능적으로 싸놓은 도시락을 챙겨서 집밖을 나서는 것으로 내 하루가 시작됐다.
운 좋게 8개월 전에 옮긴 직장이 집과의 거리상으로 500m.
10시 30분에 업무시작해서 5시30분이면 칼 퇴근이다. 점심시간 1시간 10분, 중간에 쉬는 시간 30분. 냉장고엔 계절마다 과일이 풍부하고 다양한 마실 차들이며 군것질거리 과자들까지, 보여지는 조건은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다. 실적이 중요한 영업직, 텔레마케터의 스트레스를 감안할 수 있다면, 그 쪼임을 인내 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직장이건만...요즘 슬슬 또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내 허파에 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언니, 나 오늘 3시쯤 조퇴하는 거 알지? 3시가 언제 오려나?”
점심식사를 마치고 2번째 타임이 시작되기까지는 40여분이 남은 시간. 언제나처럼 숙명이 곁으로 다가와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사실 전날 들었던 얘기건만 잊고 있던 부분이다.
“으~응! 그랬었지? 눈칫밥 먹으면서도 굳건히 조퇴를 감행하며 딸래미 고등학교진학 상담하러가는 자랑스러운 엄마!...마의 2번째 타임이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 3시, 오기는 올거야. 근데 너, 갈 때 나 좀 주머니에 넣어갖고 가면 안될까? 나도 탈출하고 싶다!”
“언니...그게 가능 할라나?”
“야~이, 지지배야! 이 사이즈면 충분히 주머니에 넣고도 남지!”
우람한 내 몸을 훑는 숙명의 시선을 의식하며 술로 튼실이 찌운 배를 쓸며 화답했다.
“어쩜 좋아!!! 여긴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물이 안 좋아.”
“요즘 고객들 지랄 맞아서 독 좀 오르는데 어떻게 몇 대 맞아 볼테야?”
“뒷감당 가능하면 살짝 터치 좀 해보지?”
주변에서 함께 모인 동료들이 한마디씩 우리들의 대화를 거든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내겐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