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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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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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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뿌린 씨앗이라고?(10) - 합방은 어려웠다.


BY 솔바람소리 2011-01-12

“아빈엄마야, 나 어쩌면 좋겠냐?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지 모르겠다.”

내게 듣고 싶은 대답이 무엇이었을까, 공허한 눈빛에 살짝 물기를 머금고 그녀가 내게 물었다.

자주 집에 들를 때면 일주일에 한 번, 길게는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왔다는 남편을 그녀는 의심한 적이 없다고 했다. 광주로 이사 내려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같은 성당을 다녔던 지인으로부터 이상한 소식을 전해 듣기 전까지는. 한창 바쁘게 현장을 돌며 일하고 있을 줄 알았던 낮 시간에 이사 내려가기 전 동네에서 보험설계사를 하는, 친구도 잘 안다는 언니라는 사람과 그녀의 남편이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서 다정한 모습으로 거리를 거니는 것을 목격했다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처음엔 잘못 보고 전해진 말일 거라고 여겼단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발달된 불신의 씨앗이었던 거다. 노동이 주된 업무인 사람이 옷 타령이 잦아졌고 작업복보다 양복을 더 잘 챙겨 다니는 남편에게 떠보듯 건넨 말에 발끈 화를 냈던 그에게서 그녀는 쏴한 냉기가 느껴졌단다. 그날 이후 남편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친구는 의부증 환자로 치부됐고 때론 정신병원에 집어넣겠다는 남편의 협박을 듣기도 했단다. 결국 몇 년이 흘러서야 친구의 명의로 남편과 보험설계사인 연상의 내연녀가 3억이라는 돈을 받아 챙겨서 반씩 나눠가졌다는 사실까지 확인하게 되었단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1억5천으로 뭐에 다 썼는지 알어? 막내 고모네 이사하는데 돈 천, 카드 값으로 몇 천... 집에는 늘 일정한 돈 밖에 주지 않았다고. 나랑 둘이 있으면 둘 관계를 시인한다? 하지만 더러운 짓은 하지 않았데.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어쩜 자기보다 더 나이 많은 여자랑... 차라리 뭐라도 나보다 더 난 여자라면 이해를 하겠어...”

그녀는 내가 뭐라고 할 대답도 찾기 전에 다음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녹음기처럼 반복했던 지난 말들을 고스란히.

“나... 더는 못 살 것 같아. 고모네 이사 할 때 보태준 돈, 내가 분명 얼마인지 알고 있는데 그 빤한 것을 거짓말 시키는 거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겠어. 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빈엄마?”

그 순간 그녀가 원한 것은 누군가의 답변보다는 팽창된 심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해 보였다.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었으니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락 끝자락에 선 환경에서 희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손톱만큼 보이지 않을 때 혼자라는 외로움, 고독함... 주변을 의식하며 하루를 살아가야 했던 순간... 어느 땐 모르는 낯선 곳을 찾아가서 길가는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내 말 좀 들어 보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매순간의 거지같은 내 인생을. 그녀 역시 그런 심정이겠거니, 전화 통화를 했던 순간마다 그래서 몇 시간이고 내가 먼저 전화를 끊자고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다혜 엄마는?”

“난... 그만 살고 싶어.”

“그러면 그만 살면 되잖아. 신랑이 맨 몸으로 나가라고 했다며. 애들도 아빠랑 살겠다고 했고. 그럼 됐네. 성당 다니는 사람이 절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고 옛날부터 노래를 불렀잖아. 이제라도 들어가서 살면 되잖아.”

“ㅎㅎㅎ... 말은 쉽다. 애들은 어떡하고... 큰 애 이제 대학교 2학년 올라가고 작은 애 대학교 입학하는데... 아직은 엄마 손 필요할 때잖아.”

애들... 자식이 희망이었던 우린 그런 엄마였다. 그 희망마저 신기루였음을 절감했던 순간의 절망감은 남편의 배신보다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내칠 수 없는 그 애물단지들... 우린 그런 엄마였다. 고 3인 그녀의 아들이 아버지와 한마음으로 엄마를 몰아세웠다고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심정을 잡아 준 것은 또 다른 자식, 큰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버릇처럼 벌써부터 가족들 곁을 떠날 준비를 했다고 했었다. 1년 전부터 부쩍.

“내가 그래서 뭐라고 했었어. 다혜엄마는 떠날 수 없다고 했잖아. 그냥 남편은 신경 쓰지 말고 살어. 처음부터 떨어져 살았고 그럼에도 생활하는데 어렵지 않게 생활비 보내주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물론 믿음이 깨졌으니 그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애들 아무나 버리고 가니? 우린 그런 모진사람도 못되잖아.”

“내가 큰며느리로써 감수한 일들이 얼만데... 당장 같이는 못 살겠대. 그것이 싫으면 나보고 나가라는 거야. 그런데 웃긴 건 이혼을 해준다고 하면서 자꾸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거 있지? 이런 상황에서도 집에 내려오면 잠자리를 요구한다? 나보고 그냥 살라는 거지... 지금처럼 하던 대로 시댁식구들 챙기면서 말이야... 그런데 난 그렇게 못하겠어. 이제는...”

불결한 남편을 운운하던 그녀는 남편이 다녀갔다며, 싫다는데도 억지로 잠자리를 요구해서 줘버렸다는 부부생활도 허심탄회 털어놓곤 했었다. 그녀가 남편의 말과 다른 행동을 웃긴다고 표현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녀의 가늠할 수 없는 언행이 웃길 뿐이었다. 갑작스레 서울에 올라온 이유가 남편의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아서 미리 미역국을 끓여 주기 위해서라고 했었다. 남편이 불결해서 싫고 더는 이용당하면서 살지 않겠다며 떠날 계획을 세운다는 그녀가 말이다.

“신랑은 다혜엄마가 소식 없이 갑자기 서울 올라와서 미역국 끓여 주고 케잌에 촛불 켜주니까 좋아하디?”

자신의 앞뒤 틀린 행동을 느껴보라고 되짚어주며 물어 본 말이었다.

“좋아하지... 크리스마스이브에 함께 내려가자고 하더라구. 그렇게 하려고. 자기가 하자는 대로 안하면 삐치거든.”

“남편이 삐치면 꼬집는 바람에 잠자리도 해주고?”

“ㅎㅎㅎ... 응, 아빈 엄마는 모를 거야. 자기 비위맞추지 않으면 꼬집고 툭툭 때리고... 남자라는 동물은 정말 웃기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잠자리를 요구하니?”

“난 다혜엄마가 더 웃긴다. 요구한다고 들어 줄 수 있는 배려심이면 그냥 그대로 지금처럼 살면 돼는 거야. 내가 봤을 땐 다혜엄마가 다혜아빠한테 미련이 더 많거든요?”

“나 미련 없어. 정말이야.”

부부끼리의 잠자리... 난 언제하고 안했었지? 몇 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하단칸방에 살았던 4년 이후론 쭉 합방을 해본 적 없는 우리부부. 1년에 몇 번 숙제하는 심정으로, 더는 핑계를 댈 수 없어서 가졌던 잠자리... 때마다 절정은커녕 남편에게 메마른 정만큼이나 나의 여성은 건조하기만 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통증까지 동반됐다. 깨진 믿음, 닫혀 진 마음. 그는 단지 내게 있어 남자가 아닌 가족일 뿐이었다. 어느 개그 프로에서 개그맨이 ‘부부는 가족이다. 가족끼리는 성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공감된 그 말처럼. 남편은 밤이면 안방을 나가서 딸과 함께 누워있는 내게 욕구불만으로 궁시렁거리곤 했었다.

“니 껀 금테 둘렀냐? 내가 나가서 바람 펴도 너는 할 말 없어!!!”

술 취해서 들어오지 않더라도 새벽 2~3시가 다 되도록 TV를 사수하던 남편은 누가 자거나 말거나 볼륨을 높였고 야식을 먹기 위해서 불을 환하게 밝히곤 했다. 술 취해서 들어오면 기본 2시간은 술주정을 했고 밤새도록 가래침을 뱉어놓곤 했다. 예민한 내가 그런 사람과 한방을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롱을 열고, 혹은 침대를 흥건히 적시도록 소변을 본다고 하더라도 더는 그를 지켜보며 밤을 샐 수 없었다.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조차 거부하고 싶은 내가 잠자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불륜보다 더 불결한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