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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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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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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뿌린 씨앗이라고?(2) - 부재중


BY 솔바람소리 2010-12-05

“너란 인간 정말 싫어. 진절, 넌더리가 난다고. 제발, 날 좀 놔줘. 양심이 있다면 차라리 그냥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말아달라고!!! 어떤 년이랑 바람을 피우든, 살림을 차리든 상관하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더는 우리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란 말이야!”

어느새 목소리는 울부짖음이 되어버렸다.

“알았어!”

‘알았어.’참으로 익숙한 그의 대답이었다. 수긍, 혹은 긍정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그 답변.

“뭘 알았다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내가 원하는 게 뭔데?!”

“뭐든 다 해준다고...”

뭐든 다 해준다니 드디어 떨어져 나가 준다는 건가? 그럼 해방감에 늴리리 맘보, 행복할 수 있다는 건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바라는 대로 뭐든 해주겠다는 사람에게 더 이상 뭔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렇게 그 순간 심정만큼이나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차가운 밤길을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몇 십 분이나 흘렀을까. 집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냉소적인 남편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좋냐?”

“......”

“개망신 주고 가니까 좋냐고!”

아내 뒤통수치기가 취미인양 했던 사람이었기에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생각이 바로 맞아 떨어지니 잠깐 할 말을 잃었던 것 같다. 비열한 목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찢길 때로 찢긴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왔건만, 그런 내게 아량이라도 베풀듯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겠다던 사람이 격양된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당장 죽일 듯이 집근처 길거리 어딘가로 나오라는 그의 말대로 군말 없이 나갔다.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이 다행이다 싶었던 마음엔 두려움 따윈 없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목청 높여 자신의 행동엔 어떤 추악함도, 꿀릴 것도 없는 결백함뿐이라며 쓰레기 같은 소리를 목청 높여 뱉어내고 있었다. 좀 전에 직원 앞에서 실추한 자신의 자존심에 대하여 앙갚음이라도 해주겠다는 듯이. 하지만 난 결코 누구처럼 당장 그 순간만 모면할 생각으로 ‘알았어’를 남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쉽게 물러설 거라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싸움이었다. 동네사람 누군가가 알아보는 것 따위 겁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잘났다고?! 당당하다고?! 그게 새벽이슬 밟아가며 술 마셔 된 인간이 할 소리냐?! 변변한 생활비는커녕 아이들 학비도 못 되 주는 인간이, 자식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일삼는 인간이 할말이냐구? 허구한 날 아이들에게 상처나 주는 인간이, 아비 없이 자란 설움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인간이 버젓이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그 외로움을 안겨주는 인간이 할 소리냐구?! 날 죽이고 싶냐?! 차라리 그냥 저 차도로 뛰어 들어가 줄까?! 내가 더 이상 뭐가 두려울 것 같으냐! 두려운 것이 있다면 아이들 굶기는 거, 못 가르쳐 누구처럼 무식한 인간이 되는 거, 그거 딱 두 가지다. 이 순간 세상 떠나게 된다면 남을 한 가지 한이 애들한테 잘난 애비 만들어 준 거, 그거뿐이야!!!”

홈쇼핑 텔레마케터를 하며 세상엔 미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객은 왕이라며 상담원 따위 인간취급도하지 않는 적지 않은 그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상냥함을 잃어선 안됐다. 어떠한 순간에도 이성을 잃지 말아야 했고 젊은 동료들에게 뒤지지 않는 콜 수를 올려야 했으며 다달이 보는 교육시험에 만점을 받기 위해 늘 두툼한 교재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고질적인 변비는 약을 먹어도 듣지 않았기에 하루 2끼, 그것도 죽지 않을 정도의 적은 양으로만 버텨내야만 했던 남모를 고통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런 매순간에도 늘 집안일까지 더해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걸 남편이란 작자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면 그도 뭔가 깨닫지 않겠나, 아이들이 더 열심히 자라주지 않을까... 욕심이라면 그것뿐이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도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숨이 막힐 정도로 목을 조이는 사건사고들만 터져 넘쳤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외로움... 인내심이 부족한 탓일까. 지쳐서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게거품을 물며 더한 발악 질을 떨어대는 나를 대하던 그가 움찔했다. 빈말을 못하는 고지식한 아내란 사실만큼은 망각하지 않은 듯 했다. 쌩쌩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차들이 지나치는 바로 옆 차도 당장 그곳으로 뛰어들고도 남을 여편네의 기세에 놀란 것일까. 아니면 저를 뛰어 넘는 더러운 똥을 대한 탓일까. 움찔하며 그가 꼬리를 내리듯 목소리를 낮췄다.

“미안하다. 알았다. 나도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속상해 그렇지. 나도 사람이다. 미안한 거 모르겠냐? 노력할게.”

“미안하면 이혼해. 혼자 자유롭게 살라고!”

오랫동안 이혼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망 말이나 일삼는 아비라도 엄마가 헤어지지 않고 살아주길 바란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는, 더는 그를 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와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서로의 체취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절실히...

“제발 좀 그만해라. 알았다고... 추운데 어서 집에 들어가. 나도 갈비뼈가 아파서 그만 들어가서 누워야겠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남편이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아내의 추위를 걱정해주며 남편이 사라져간 그 어둠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시 우리의 관계는 원위치였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지만 질긴 고무처럼 다시 원상복구 되고 마는 부부. 그 질긴 우리의 인연... 이 갈리게 싫은 현실, 그 막막함으로 발바닥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착각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듯 그날 이후로 우리가정에 변화가 있었다. 남편이 가정에서의 장기부재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