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프지 않는 것이 효도야. 엄마 말 잘 듣는 것도 효도구. 엄마는 어차피 오늘 이 점퍼를 빨려고 했으니까 젖어도 괜찮아. 모자도 달렸으니 네가 입은 우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고 출발하자.”
미안함 가득 묻은 딸의 말에 나름 최선을 다한 인자한 대꾸의 말이 고작 그뿐이었다. 알겠다는 듯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이는 딸에게, 긴 비옷이 걸려서 불편하면 쉬었다가 갈 테니 뒤에서 따라 오다가 부르라는 당부를 하고나서 흠뻑 젖은 자전거 안장에 올라탔다. 진작부터 슬픔으로 젖어버린 마음이었다. 손등을 맞고서야 그만 둔 딸이 제 엄마가 앉아야 할 물 고인 안장을 손바닥으로 쓸어줬지만 끄떡없이 젖은 채였다. 하지만 엉덩이를 적시는 젖은 안장 따윈 좌절 가득한 근래의 마음이 슬픔으로 젖고 절망을 뚝뚝 흘리고 있는 시점에서 감히 어미의 촉감을 유발할 상대가 되진 못했다.
페달을 밟는 발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빗길을 달리게 했다. 손잡이에 얹어진 손으로 닿는 차가운 빗물이 바늘 되어 박히는 듯 시린 통증을 만들었지만 찢어지고 뜯긴 심정과 견줄 바는 못 됐다. 머리를 완전히 감싸지 못한 모자 밖의 앞머리가 빗물에 흠뻑 젖어 얼굴로 타고 내렸지만 남편을 향한 타고 넘치는 원망에는 미치지 못했다. 빗물이 잔뜩 달라붙은 안경이 제 구실을 못하고 빗물을 받아들였다. 얼굴에 바른 선크림이 빗물에 씻겨 눈 안으로 흘러들어갔는지 눈을 뜨고 있기가 힘겨웠지만 터질 것 같은 분노로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통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힘겹게 뜬 눈으로 바라 본, 한껏 젖은 거리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배정 받은 듯 서 있거나 지나치고 있었다. 앙상해진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로 올 때만 해도 밟히며 ‘바사삭’ 마른기침을 해댔던 커다란 이파리들이 흠뻑 젖은 채로 잠들었는지 자전거 바퀴에 깔리고서도 침묵으로 고요했다. 슬픔으로 물든 마음이 슬픔 짙은 선그라스 눈동자를 만들었는가보다. 바닥으로 떨어져 부딪히며 물줄기가 되어 사라지는 빗방울이,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가로수들이, 바닥 곳곳에 생긴 작은 웅덩이들이, 그 위를, 그 곁을,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우리 모녀가 그것들과 어우러진 것이, 슬픔의 봇물 되어 터지려 했다. 그리고 무인도에 버려진 듯 한 외로움이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의 공허함을 만들어줬다. 사막에서 물 없이 하루를 버틴 것 같은 갈증이 입안으로 잦아들었다. 마음에도 한가득 잦아들었다. 위로하듯 빗물이 입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한 방울도 뱉어내지 않았다. 황사 비라도 마다치 않으리라...
30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집이었다. 오후 2시가 가까운 시간에 마주하게 된 아들이 던진 첫마디가 재밌었냐는 거였고 두 번째 마디가 뭐 드시고 왔냐는 거였다. 세 번째 마디는 배고프다, 였다. 집안 정리를 하지 않고 나섰던 집은 어수선했던 그대로. 그 곳에 딸이 벗어놓은 점퍼와 장갑, 양말, 들고 갔던 작은 쇼핑백이 더해져서 시야를 어지럽혔다. 순간 형용할 수 없는 짜증이 밀려들었지만 영화를 봤다는, 아들이 누리지 못한 한 번의 문화적 혜택(?)이 염치없어서 겨우 눌러 참고서 하나하나 대꾸를 했던 것 같다.
“네 말대로 재미있더구나. 긴장과 감동과 교훈이 적절히 담겨있는 것이 네가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야. 한번 다녀와.”
“네가 알고 있는 엄마가 그동안 자식 홀로 남겨두고 맛난 것을 찾아 먹는 매정한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들리는구나. 아쉽게도 먹은 것이 있다면 강냉이와 가다가 대형마트에서 준비해간 500ml 사이다가 전부였고 그 마저도 내 몫은 남겨왔다.”
“변변찮은 반찬뿐이라지만 챙겨먹을 밥이 있었는데 그 나이 먹도록 고픈 배로 엄마를 기다렸다는 것 말이 돼?... 참은 김에 조금만 기다려봐. 어수선한 집안부터 치우고 나서 밥 먹자.”
말하는 내내 우중충한 바깥 날씨보다 흐린 분위기의 어미를 아들이 감지했는지 묻지 않은 말들을 주절 거렸다.
“비가 오길래 걱정되어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셨어요... TV 조금 밖에 안 봤고 공부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컴퓨터 강의만 보고 껐어요... 엄마, 제가 김치 넣고 맛있게 밥을 비벼드릴까요?”
“아니, 엄마가 해. 보던 TV나 마저 봐.”
짜증을 숨긴 차분한 목소리에 안심이 됐는지 아들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씻고 나온 딸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서로다시 스파크를 튀기며 신경전을 벌였다. 익숙한 자식들의 모습이었지만 익숙한 채로 묵고할 수 없는 어미의 심정은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식들이 서로를 향한 양보와 배려를 실천하지 못했다. 이미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렇기에 쉽게 끝나지 않을 성질머리를 터트릴 수 없었다.
“...... 너 같은 동생이 왜 있는 건지, 정말 짜증나!”
어미의 시한폭탄 같은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이 분에 못 이기고 동생에게 던지 말의 끝자락이 귀가로 날아와 못 박혔다.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나면 어미도 막말을 던지곤 했다.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그것을 보고 들은 것으로 상황들을 접했던 자식들에겐 자연스레 학습이 됐을 게다. 내 탓이다. 벌써 용납 없는 인성이 짱박힌 성질들을 향해서 아무리 ‘그러면 안 돼.’ 목 놓아 부르짖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게 처한 모든 상황이 내 탓 되어 가슴에 족쇄를 채웠다. 걸레를 쥔 손이 떨렸다. 서슬퍼런 오빠의 말에도 지지 않고 한마디 던지고 나온 딸내미가 걸레질에 힘을 쏟는 듯 뵐 어미에게 다가와서 억울하다는 듯 볼멘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난 정말 오빠가 싫어요. 우린 아주 오래 전부터 원수였을지도 몰라요.”
치명적이었다. 어미에겐 딸의 그 말이. 전생을 운운하며 제 아빠를 씹어대던 어미의 말투를 그대로 닮아버린 딸이 보란 듯이 결정타를 날렸다. 어쩜 이미 포화상태였기에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이겨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겨우 지탱하고 있던 지렛대가 그 순간 쓰러짐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기계적으로 저녁까지 해먹이고 난 후, 아직 귀가 하지 않은 남편이 집에 있을 때마다 TV를 끼고 있던 것처럼 따라했던 것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마음이 이르렀다. 그 순간 내 모습은 좀비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의지박약의 모습이. TV앞에서 언제 싸웠냐는 듯이 함께 앉아서 낄낄거리는 자식들 곁에서 떨어져 나와 어둠을 찾아 누웠다. 겨우 누르고 있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아이들처럼 핸드폰에 내장되어 있는 불록 쌓기 게임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얼마나 됐을까, 딸이 다가왔다.
“엄마 왜 이렇게 오랫동안 게임을 하세요? 중독이세요?”
뼈있는 딸의 말이었다. 부쩍 생소해진 어미의 행동들이 걸렸는지 TV 앞에 앉아있기만 했을 때도 자식들은 어미에게 ‘중독’을 언급했었다. ‘뭔가에 중독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미쳐서 위로가 된다면 그도 괜찮겠어.’ 딸의 말에 솔직한 심정으로 그리 대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비겁한 무기력까지 닮게 할까봐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엄마가 조금 마음이 힘들어서 그래. 조금만 할게. 중독은 아니니 걱정마.”
“뭐가 힘든데요?”
“글쎄... 이것저것...”
“게임하면 힘든 것이 사라져요?”
“아니, 뭔가 하지 않으면 울어버릴 것만 같은데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없네...”
“그럼, 우세요. 조금만.”
조금만...
딸이 그 말을 끝으로 엎드려서 게임에 열중하는 어미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그래... 조금만 울어 볼까? 자식들도 이미 제 어미가 울보라는 사실을 파악했을 테니 더 이상 감출 것도 없는데. 조금만 울고 나면 심장이 튀어나올 듯 방망이질 치는 것이 잦아들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만 울고 나면 백두산을 언은 듯이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만 울고 나면 어리석은 나를 조금은 용서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만 울고 나면...
그래서 울었다. 쉬웠다. 폭포수 같은 눈물을 금방 흘려 내린다는 것이. 곁에서 잠든 딸이 깰까봐서 그리고 저만치 TV 앞에서 낄낄거리는 아들의 기분을 잡치게 할까봐서 조용히 울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눈물만 흘리던 것이 이내 흐느낌이 되었고 서서히 통곡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말았다.
“흐흐흐윽...”
“엄마, 왜 그러는데요...네?”
귀곡성 닮은 어미의 울음소리에 드디어 아들이 다가오고 말았다. 정말 더는 감출 것이 없게 되었다. 꺼이꺼이, 슬피 우는 어미에게 묻는 아들의 목소리엔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 그 와중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쩜 짜증이 아니라 제법 겪은 것이 많은 아들의 지친 심정이 묻어난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미는 그 순간 그런 아들이 남편만치나 야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