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35

개만도 못하단 말인가?


BY 솔바람소리 2009-07-08

“사과가 떨어졌네?”

 

쫄랑쫄랑 뒤를 쫓아다니는 해피에게 남편이 미안한 듯

말했다. 그리고 내일 꼭 사 오마, 하는 약속을 빠트리지

않았다.

 

저녁에 귀가한 남편이 역사적인 사명감이라도

지닌 양 어떤 상태와 시간에도 굴하거나

빼놓는 법 없이 감수하는 것이 있었으니,

해피의 간식으로 사과 한 조각을 잘게 썰어 영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인지 꼭 사료 몇 알까지 함께 섞어

골고루 비벼(?)주는 귀찮을 법한 일을 마다치 않고 챙겨주는

것이 그것이다.

어둠 속에서 먹다가 체한다며 일부러 환하게 불을

밝혀놓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한때는 사료가 너무 딱딱한 것이 아니냐, 이가 부러질수도

있겠다, 으깨서 줘야하나? 믹서로 갈아서 줘야 하나? 나름

심오한 표정까지 지으며 ‘으드득으드득’ 소리를 내며 제 밥을 잘도

씹어 먹는 해피 곁에서 걱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동안

17년 함께 살아 온 마누라와 제 씨받아 태어난 자식들이

항의하며 아우성쳐대던 목소리들도 무시해대던 무심한 사람이

며칠 전에는 미용한지 몇 달 된 털이 복슬복슬한 모습의

해피를 곁에 두고서 한다는 말이 녀석이 덥다고 말했다며

미용을 시키라는 거다.

 

“요즘 밥상 위 풍경이 얼마나 처참한지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해피 미용시킬 돈 있으면 반찬을 사서 애들 먹이겠다.“

 

개와의 교감을 자연스레 말하는 남편,

평소에도 이해되지 않는 그의 맘가짐을 대할 때마다

사고가 제대로 박혀있기는 한 것인지 때때로 의문을

달고 살았던 차지만 17년을 하루같이 변함없는

그에게 웬만하면 신경 끄고 마음과 입을 닫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불쾌지수가 높아진 탓일까,

참지 못하고 발끈해서 한마디하고 말았는데

“애가 숨이 막혀 보여서 그런다.”하며 여전히 잘난 입을 열었다.

 

말 못하는 개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그의 뜻밖의 언행들이 놀라울 때가 근간에 좀 있는 듯

싶다. 그것이 해피와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에 앞서 그동안 그런 배려와 심안을 가족에게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섭섭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며칠 전 해피와 둘만 있는 시간에 녀석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니가 나보다 낫다. 정녕...

개새끼를 운운하며 때려죽이겠다는 엄포를 듣고 살았던 네가

그 고충을 잘도 견뎌내더니 고약 떨던 주인어른이 한겨울에도

그 비싼 사과를 먹이겠다는 일념 하에 밤길을 한걸음에 나가게 했던

네놈의 실력(?) 앞에 내가 무릎을 꿇는다. 그 비법이 뭔지 좀

알려주면 안되겠니...]

 

2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상대로

작은 개 한마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세로 보인 태도들을

되짚어보았다.

 

1. 평소에 결코 나대지 않는 녀석이 언젠가부터 남편의 귀가를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기가 무섭게 달려들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하곤 했다.

 

2. 욕실에 들어갔다 나온 남편이 저녁을 먹을 때까지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이 시야를 벗어나지 않은 근처에서

바짝 바닥에 엎드린 채로 있으며 시선조차 흔들림이 없었다.

 

3. 마지막 한술을 뜨고 내려놓은 수저를 보기가

무섭게 남편의 꽁무니를 10cm쯤의 간격을 두고 따라

다니면서 간간히 코로 콕콕 찔러대며 ‘뭐 잊은 것 없수?’하는

간절한 눈망울로 시선을 맞추었다.

 

4. 녀석은 결코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30분도 좋고

3시간도 상관없다는 듯, 행동에 일관성이 있었다.

그때 녀석의 행동은 ‘내게 주인님은 오직 그대뿐입니다.’

딱 그 자세다.

 

5. 녀석의 고집에 못이기는 척 사과를 깎아서 먹여주면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게로 오곤 했다.

‘난 당신 모르는데... 나 알아요?’ 매정하리만치 냉정한 모습으로

배신을 때리고 돌아선 녀석은 남편이 괘씸하다고 떠드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치미를 떼고 있기 일쑤다.

남편은 그런 배신을 녀석에게 수없이 당하면서도 사과를

챙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뭘까?

뭘 잘못한 것일까?

 

다음 날을 모르는 계획성 없는 사람이 강아지 사과를

줌에 있어 며칠 양을 정확히 계산했다.

구멍 난 가계부를 채워줄 것이 없다며 ‘나보고 어쩌라고?’

오히려 항의하는 사람이 비싼 사과를 사오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옆에서 아빠에게 제 말을 들어달라며 몇 번을 되풀이해서

말해도 tv속에 빠져서 귀에 담지 못하는 사람이 해피의

‘멍!’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달려와서

“왜? 누가 그랬어?” 걱정스레 묻는 말에는 정이 흘러 넘쳤다.

나와 아이들이 개만도 못하단 말인가?

 

견원지간처럼 지내던 것이 걱정스럽던 둘이 때론 실과 바늘처럼

친분을 쌓고 살아가는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으니

도를 더 닦아야 하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