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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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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갈된 잔고가 내 탓만 같아서(3) - 엔딩.


BY 솔바람소리 2009-06-25

며칠을 고민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며 기본적으로

챙겨야 하는 공과금조차 내지 못하는 납세자로 있기에

곳곳에서 집으로 압류에 대한 협박문이 날아 들어와도

돈 한 푼 가져다주지 못했기에 주변에서 돈을 끌어다가

기본을 밑도는 생활을 해가며 아이들 학비 의주로 써야했지만

친정에 내색하진 않았다. 뵐 낮이 없어서 더는 내색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 더 명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던 중 남편이 가뭄의 단 비같은 수금의 일부가 들어왔다며 건넸던

금액이 구멍 났던 생활비 충당과 꾼 돈을 겨우 갚고 나면 여유분이

얼마 남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일을 저지르듯 그동안 없다고 여기며 쓰지 않고

쥐고 있던 돈 중에 백만원을 엄마의 비자금 통장으로 명목상은

두 번째로 입금 시켜드렸다. 그리고 언젠가처럼 문자로 소식을

전해드렸다.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거라고 짐작하면서. 아무리 내가 입 닫으며 내색

않고 살려고 애를 써도 거짓말 탐지기라도 장착해 놓은 사람처럼

족집게도사가 되어 상황을 그려내고 계신 엄마였기에 지금의 내 상황을

손바닥 보듯 빤히 꾀고 계셨을 게다.

 

아이들을 키우며 당장 들어가야 할 돈으로 애가 타는 나보다 엄마의

형편이 여러모로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긴 했으나 수중에 어쩌든지

얼마간의 금전을 비축해놓고 살아왔던 엄마는 지금 상실감이 어느

때보다 클 것만 같은 걱정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지르듯 행한

일이었다.

난... 어느 순간 수중의 가계잔고가 부족한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

되어버린 듯하다. 매순간 힘겨움에 헐떡이며 당장에라도

죽을 듯 발광해대지만 어떻게든 살아가게 된 다는 것을 터득했기에

지금의 마음이 가능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큰돈이 생겼어도 관리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금전적인 그릇크기를 파악한

탓일까 욕심을 조금은 더 버릴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내 연락에 엄마가 먼저처럼 점심 때 짬을 내서 전화를 걸어오셨다.

 

“웬 돈을 백만원씩이나 또 보내, 사위가 돈 많이 벌어왔어?”

“응~ 그러니까 붙였지. 엄마 찜질방 티켓도 끊고 맛난 것

사드셔.“

“그래~ 딸, 다음에 엄마 돈 또 줘~”

 

드라마를 찍듯 행복한 모녀의 연기가 잠시 이어졌었다.

그 상황이 슬프고 씁쓸한 내 마음과 엄마도 별반 다르지가

않았으리라, 잠시 그런 생각을 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출근길에 전화를 다시 걸어오신 엄마였다.

 

“웬일이니, 벼룩의 간을 내먹지 뭔 돈을 그렇게 많이 보내?”

“으응...”

 

아침 먹다말고 받은 전화에 대뜸 던져진 엄마의 말에 얼버무리듯

대꾸하니 눈치 빠른 엄마 왈,

 

“아빈아빠 있냐?” 신다.

“으응... 오늘 좀 출근이 늦는다네?”

“으응...... 애들은 학교 잘 다니고? 사위는 일 많어?”

 

부연설명 없이도 엄마는 내가 남편 몰래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계셨는지 얼른 경황한 목소리가 되어 두서없는 말들을

늘어놓으셨다. 그 마음이 어떨 런지... 당신이 보태줬던

그간의 금액들은 어쩌고 사위의 돈을 몰래 삥 뜯다 들킨 장모된 사람처럼

염치가 없으신 듯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극본 없는 신파 같은 몇 분의 시간 앞에서 여러모로 엄마와 함께

군색함을 맛 봤다.

그리고 또 며칠이 흘렀다. 작년에 사 보냈다가 잔소리를

수태 들었던 건과류가 얼마 남지 않을 것이 생각나서 홈쇼핑을

우연찮게 보고 난후 기회가 좋은 것 같아서 주문한 것을 8대 2로

나눠서 큰 몫을 챙겨서 친정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박스에

그래도 언젠가부터 일 년에 한 두 번씩은, 해마다 엄마의 옷을

챙겨 보냈던 것을 2년 전부터 손 끊다시피 한 것이 걸려서 윗옷

두 개를 장만해서 함께 넣어 보내드렸다.

 

건과류를 보낸 사실을 전화로 말씀드리니 엄마가 긴 한숨을 섞어

말씀하시길,

 

“엄마 신경 쓰지 말고 부디 너나 잘 살어.” 하시며 역시나 걱정 담긴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내가 얼마나 더 잘 살아야해, 엄마?”

“ㅎㅎ...잘 사는 것 아는데 더 많이 잘 살기 바라는 거지. 너 설마

홈쇼핑 중독이냐?“

 

그간 건과류 두 번과 마사지크림 한 번 구입해서 보내드리고

듣기엔 좀 넘치는 걱정에 살짝 당혹스러웠지만 아니라고 발뺌하기도

우스울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엄마? 딸래미 홈쇼핑 중독인 걸. 하여튼

울 엄만 모르는 게 없다니까. 집에 구입해서 쌓아놓은 물건이

하나 가득이니 어떻게든 처리해야 해. 그것들 빨랑 처리해야하니까

아끼지 말고 하루에 5개씩은 챙겨 드셔. 엄마아빠가 건강해야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사실, 잊지 말고. 제발!“

“그 말은 내가 할 소리다, 이년아.”

 

간만에 듣는 정감어린 욕에 까르르 넘어갔던 순간이었다.

작은 이벤트처럼 챙겨 보낸 옷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틀 후 출근 전인 엄마가 아버지께서 농사일로 나가시고

자리를 비운 틈에 전화를 하셔서 아빈 아빠 출타 여부를 조심스레

물은 후 물건 잘 받았으니 다음부터 절대로 그런 짓하지 말라는

당부를 재차 하셨다.

아버지가 하셨다는,

 

“그건 왜 이렇게 철딱서니가 없어. 누가 그런 것을 먹는다고 그렇게

많이 보내? 그러니까 지금까지 집장만도 못하고 살지.“

 

가슴에 대못 질을 해대는 말씀까지 리얼, 그대로 전하시면서 말이다.

말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 입이 가만있지 않고 변명도

아닌 말들을 주절거렸다.

 

“때론 철딱서니 없는 이런 애물단지도 있어야지. 아빠한테

딸에 대한 마음을 좀 더 비우라고 하셔. 여튼지당간에

엄마 아빠, 치매 걸려서 벽에 똥칠해대는 불상사가 생기면

책임질 자신 없는 딸래미니까 자식들 생각하려면 부디 좋다는 것들

챙겨 드시고 몸들 좀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시며 살아가셔요.

근데 옷은 맘에 들어, 엄마?“

“ㅎㅎㅎ... 이뻐. 덕분에 나도 함께 욕먹었다. 철없기는

나도 마찬가지라더라. 옷 입고 자랑했더니 그 지랄이니 그것이

그런 것을 챙겨 보내지, 라나? 오늘 입었는데 회사 가서 자랑해야지.

그것들이 내가 옷만 입고 가면, ‘언니는 어디서 매일 그렇게 이쁜

옷을 구입해? 우리 눈엔 그런 것들 뵈지 않던대.‘ 라고 난린데...

(말하고서 아차 싶었는지 금새 시침 떼고 말투를 바꾸시며) 이제 옷

많으니까 절대로 사서 보내지 말어. 알았어? 엄마 사줄 돈 있으면

너나 입고 다녀!“

하는 말로 일달락지으셨다.

 

아버지 말씀 중에 강조를 거듭하시는 것이 옷 사지 말라는

거였다. 죽을 때까지 입어도 못 다 입을 옷이 수북하다면서.

아버진 메이커만 장만해주는 아내가 있고 외출할 일이 많이

줄으셨으니 과히 틀린 말씀이 아니겠지만 엄만 달랐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얼마 후 내게 돈을 붙이시곤 조심스레

부탁하신 말씀이 시골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시다며 회사에

입고 다닐 수 있는 옷 좀 장만해서 보내 달라는 거였다.

그때가 아마도 엄마가 갱년기로 접어 든 쯤 이었을 게다.

 

(그 후로 아버지의 잔소리에도 나는 꿋꿋이 엄마의 곧추 세우고픈

자존심을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에 옷을 장만해서 보내드리곤 했었다.)

 

뜻밖의 엄마에 부탁을 이행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옷을 장만할 때

생각해보니 변변한 외출복하나 장만하지 못하고 그간 살아오신

엄마의 인생이 새삼스레 마음 아프게 다가왔었다.

우리들 어릴 때는 자식들 챙기느라고, 장성해서는 그것들을 여의어야

했기에 때마다 늘어나기만 했지 줄지 않는 이유들로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허리띠 졸라 매기 삶을 걸어 온 엄마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형편없이 맛이 간 관절들뿐.

여자로써 한때라도 젊음을 만끽하고 즐기며 외모를 가꿀 시간과 여건

따윈 없던 분이셨다.

그 모든 것에 내가 드린 고초더미 비중이 한 몫 할 거라고 이 연사(?)

자신(?) 있게 외칠 수도 있다.

 

그간 내가 엄마에게 빼내어 쓴 돈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런 철판 같은 낮 짝으로 불효로 물 말아먹듯 살아 온 내가 지금껏

형편없는 몰골로 살아가면서 지금이 아니면 그 빚을 갚을 길이 점점 더

희박해질 것만 같아서 하나뿐인 딸이 하루빨리 알뜰하게 모아서 제 집

지니고 사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일 두 분의 걱정들을

알면서도 철딱서니 없는 짓거리로 비칠 일들을 골라하는 딸 노릇을 때로

자처할 수밖에 없다.

 

언제쯤 웬만큼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님께 봬드릴 수 있으려는지,

언제쯤 금전의 고갈됨을 맛봐 가는 부모님의 주머니를 만천하에

고하면서 전해드릴 수 있으려는지,

언제쯤 나도 속이 꽉 찬 여문 여자로 살아 갈 수 있으려는지,

언제쯤 이 모든 걱정들을 털어내 버릴 수 있으려는지... 그게

언제쯤일까...

 

엄마의 은행 잔고가 다시 백만원을 밑돌고 있다.

더 이상 내게 있어서 화수분이 아닌 엄마가 갑자기 왜 씀씀이가

전과 달리 많아졌을까. 무슨 일이 딱히 없이 심경의 작은 변화를

느끼고 조금씩 즐기며 사시기로 했나? 아님 부업으로 돈놀이를 하시나...

고갈되어 가는 엄마의 통장을 확인 한 후, 점점 그곳을 채워

놔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든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통장... 어쨌든 모두 내 탓만 같다.

모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