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달력이 3월 중순을 훌쩍 뛰어 넘어있었다.
계절은 봄이라고 했던가?
그동안,
내 맘이 싱숭생숭했던걸 보면 달력을 보지 않고 어림
잡아도 봄이 확실하건만... 도통 계절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봄옷을 입고 영화관으로 나섰던 날의 영하권에 날씨...
그날 겪었던 시련으로 알게 된 시샘 많은 추위의 위력을
되새기고 있을 쯤,
뭔 맘을 잡쉈는지 제법 운치 있는 곳을 예약해 뒀다며
운전기사를 자처한 신랑의 말에 따라나선 날, 입고 나섰던
두툼한 자켓...
그날 난, 몇 주일 못 간 찜질방이 간절했던 맘을 날려버릴 수
수 있었다. (감솨, 돈 굳었슴돠...)
역시나 생각이 덜을 훌쩍 벗어나서 많이 까지 떨어진 난,
그 이후가 돼서야 자켓 안에 얇은 것을 껴입는 센스를
챙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을씨년스런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이름 모를 앙상한 나무는
여전히 알몸.
어느 지방은 벌써 벚꽃 축제도 한다드만... 이놈의 봄은
어느 곳에 와 있단 거야? 궁시렁 거릴 쯤, 바지런히 조잘대는
턱에 함께 있으면 유난히 자유를 그립게 만들어주는 딸이,
“엄마, 우리 학교에 꽃이 피었어요...”
학원으로 향하며 던졌던 희소식이 귓가에 메아리치던 날.
근무시간이 늘어난 해를 반기며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해피와 함께 초등학교로 향했다.
교정 앞쪽으로 놓인 작은 길 양쪽으로 제법
울창하게 심겨진 나무들의 행렬이... 환상 그 자체였다.
매화가지들 마다 꽃이 만개해 있었다. 아기 볼 살처럼 연한 핑크빛 꽃잎과
도시적인 빨간 홍매화까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잠시 그 옛날 보았던 만화책 <유리가면>속에 주인공
‘마야’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사발로 벌컥벌컥 들이켤 수 있었다.
(누구 말마따나 나이를 헛먹었나... 여적, 난 만화 속을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안소니, 테리우스...그들도 그립다.)
아직은 자태를 뽐낼 때가 아니라며 완강히 자신을 감추고
있던 목련나뭇가지들도 봉우리 몇 개는 기지개 켤 준비를
하는 듯도 했다. 눈치 하나는 9단이기에 목련들이 축제할
준비로 여념 없음을 침묵에도 알아 챌 수 있었다.
곧 터져 나올 예쁜이들...(난, 니들을 무쟈게 기다리고 있단다.
얼렁얼렁 티나와~)
명패를 달고 있지 않은 이름 모를 나무들도 각자 제가 나올
순서들을 기다리며 준비 하는 듯, 회색빛나무가지들 틈으로
연두 빛 새로운 가지들을 열심히 키워내고 있었다. 겨울
벗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한 치를 훌쩍 벗어난 새 가지들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들의 성실함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부지런한 것들...
그리고 보면 어리석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닌 나.
천지에 나무를 비롯한 식물을 두고도 그것들을
그리워했다.
매연과 먼지에 찌들고 척박한 콘크리트 사이에서 피어난
나무와 풀이 아닌 싱그러운 그것들이 마냥 그립기만 했다.
난 늘 그랬던 것만 같다.
내 곁에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질 수 없는 다른 것을
꿈꾸며, 불만을 품고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살아 온 것 같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 할 일 꾀부리지 않고 도리를 다하는
그것들을 보며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것들의 향기를 맡으며 우습게도
난 늘 도심을 탁하다고만 탓했었다.
분명 별이 쏟아져 내릴 듯 환하게 잘 보이는, 자연의 파괴가 덜된 곳에서
자라난 나무, 꽃, 풀...들의 진한 빛깔과 향기와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내 곁에 존재하는 그것들이 분명 있었다. 계절에 따라서 연두 빛이던
것들이 초록으로 물들었었고 때맞춰 제색을 찾기도 했다. 또 의식하진
못했지만 싱싱함을 품어대고 있었을 텐데도 어릴 때 보고 자랐던 숲가만
그리워했다. 은은하게 다가오는 매화 향이 취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눈
앞에서 존재하며 메말라가던 정서를 일깨워주려 애쓰는 듯 했다.
왜 그동안 그들을 의식하지 않았을까, 무시하고 말았을까...
순간 어리석었던 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담부터 그러지 않으리, 니들 결코 다른 곳에서 찾지 않으마, 약속하듯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매화꽃들을...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안다.
오늘의 마음이 영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살아감에 있어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것으로 단정 지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난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숲을 교정의 작은
화단에서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으며, 그래서 체한 듯
막혔던 숨통을 조금 틔울 수 있었다.
한편으론 우습다. 이런 내가...
맘만 먹으면 간단하게 해결 될 수도 있던 것을 여태 그러고
있었단 것이...
숲을 해결한 맘으로 내 가정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늘, 이 부분에서 벽에 부딪히고 마는 심정. 뿔싸뿔싸, 아뿔싸다...)
남편... 참 편한 사람이다.
굳이 숨길 것과 감출 것이 없는 사람이니 참 편하다.
부시시한 차림으로 맞을 수 있고,
때때로 쌍바위골의 가족피리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울려대도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는 사이니 얼마나 편한 사인가 말이지...
또, 내가 맘만 먹으면 긴긴 까만 밤을 대바늘로 허벅다리 쑤셔댈
필요없이 아이들에게 조심하며 따끈한 밤을 보낼 수도 있고 말여...
그려, 웬수 낭군!!! 댁이 세상에서 젤로 편합니다.
부디, 댁과 내 사이를 이런 몇 줄이 아닌 몇 장으로 열거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