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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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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22)- 쪽팔림.


BY 솔바람소리 2009-01-05

모르겠다. 나도 나를, 내 마음을.

사돈 앞에서 쿵쾅대며 발광하는 심장을 크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만 보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던 것도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다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한 마음을 느낀 적도 없었다.

단지, 그가 가여웠다.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형제들과 알콩달콩까지는

아니라도 함께 어울리며 자연히 미치는 영향들로 웬만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마냥 연민으로 젖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비 없는 호로 자식소리를 뱉어냈던

누군가의 말을 들은 날이면 어김없이 그 누군가의 장독대의 장독을 모조리 돌멩이로

박살을 내곤 했다던 자신의 어린 날을 씁쓸히 얘기했던 그가 아니라면

난 평소의 나로 조금은 싸가지가 없는 상태로 그를 대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쉽게도 모두 들어 버렸고 그 탓에 연민이란 저주에 빠지고 말았던 나였다.

 

내 눈에 비췬 사돈은

늘 굶은 듯 보였고 추운 듯 보였다. 그리고 슬픈 듯 보였고 외로워 보였다. 늘...

키스를 저돌적으로 내게 해댄 그의 행동에 쉽게 녹아내렸던 것도 그런 ‘늘’과

무관치 않은 연민의 힘이었다.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처럼 보였던 남자를 난

모질게 내칠 수가 없었다. 안된다고 부정하면서도, 그의 집착이 두려우면서도

그와 나의 인연을 완강하게 부정하질 못했다.

그러면서 늘 그와의 관계 때문에 갈등했다. 그가 숙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는 마음과 그 이유로 상처받을 내 가족들 걱정사이에서 헤매곤 했다.

길 잃은 아이처럼 방향을 잡지 못했다.

 

숲가의 차 안에서 키스를 나누고(?) 돌아오던 날, 겁탈하던 날처럼 나를 범하지

않던 것이 감사했다. 그에게 벌써 길들여진 것처럼, 나는 작은 것에 감사했고

감동했다.

그 날 이후, 사돈은 내가 학원에서 내려오는 시간에 맞춰 일이 일찍 끝난 시간이면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그런 사돈을 위해 티와 남방, 바지 몇 벌과 운동화를 사서 건넸다.

어린애처럼 기분 좋아진 그가 내가 보는데서 웃통을 벗고 티를 걸쳤다.

그리곤 귀에 걸린 입으로 고맙다고 했다. 난 카세트를 받은 답례일 뿐이라고

변명처럼 말했다.

받기만 했던 내가 그 날 주는 기쁨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받는 것 이상

마음을 가득 채우는, 받은 사람의 행복한 얼굴 그것만으로도 기쁠 수 있다는

것을...

들어 내놓고 만날 수 있는 만남이 아니었고 기약할 수 있는 우리 사이가

아니었지만 딱히 데이트라고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엄마에게 태어나서 제일 많은 거짓말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곧 깨질

우리 가정의 평화를 직감하며 불안하기도 했던 때였다.

그와의 만남을 두근대며 기다리진 않았지만 몸을 섞는 것만 빼면 그의

어떤 제안에도 나는 거절하지도 않았다. 복잡하기 싫어서 생각 자체를 갖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우리가 함께 또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역시나 분식점에 차를 세우려는 그에게 나는 레스토랑에 가자고 했다.

레스토랑이 뭐냐고 태연하게 묻길래 서양음식을 파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찾아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보던 사람이 살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낯선 메뉴 때문인지 아니면 분식과 비교해서 턱없이 비싼 가격 때문인지

알 순 없었지만 어쩐 일로 그가 내게 알아서 시키라고 메뉴판을 건네며

선택권까지 부여했다.

낯선 레스토랑에서 늘 먹던 정식을 주문하며 밥 말고 빵을 달라고 했다.

곧 스프와 빵이 나왔다.

 

“참말로 환장하겠네. 아니 이 희멀건 물이 그리 비싸요? 성격 희한하네.

한국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이깟 물과 빵 쪼가리로 어째 배를

채운다요?“

“-_-;;;... 이 국물 먹고 있어 봐요, 또 나오니까...”

 

- 그 순간 언젠가 언니가 내게 형부라고 불렸던 인간과 데이트를

즐길 때의 에피소드를 알려주던 것이 생각났다. (핏줄을 증명하듯 비슷한

부분이 많은 사촌 형제였다.) 언니가 그 웬수놈을 남편으로 맞기전,

데이트 할 당시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곳이 한 레스토랑이었단다.

그곳에서 멋스럽게 돈까스를 주문한 그 인간이 뒷주머니에 넣고 있던 커다란 도끼

빗을 꺼내어 파마머리를 빗으며 한다는 말이,

 

“아따 참말로 내가 해남서 처음 서울로 상경했을 적에, 배가 고파서 눈에

보인 식당에 들어갔는디, 그게 레스토랑인지 뭐시깽인지도 몰랐당께. 가격은 워째

그리 비싸든지, 제일 싼게 돈까스드만. 그걸 시켰지? 금방 희멀건 국물이 나오는데

환장했당께. 건더기도 없고 멀건 물이 죽보다도 못했어. 참말로, 서울 사는 인간들은

식성도 희안하구만, 그 물이 뭐 대단하다고 비싼 돈을 주고 먹는 다냐? 하면서

후루루 들고 마시고 돈을 내고 나왔당께. 내가 다신 돈까스를 먹나 봐라,

씩씩대면서 말여. 정작 돈까스는 보지도 못하고...“

 

정작 메인인 돈까스는 먹지도 못하고 스프만 먹고 나온 일화를 너스레를

떨며 주절대던 인간이 순수하게 느껴져서 빠졌다던 언니였단다.(순수함이 좋았고

박력있어서 좋았고... 언니는 그 인간이 마냥 좋다고 했었는데...)언니에게

그 말을 들은 날 난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형부는 뭐 그런 촌티를 입고 있었냐며

박장대소를 했더랬다. 그에 버금가는 그의 사촌동생을 만나게 될 줄을 꿈에도 모른,

그때...-

 

사돈의 말에 순간 언니의 그 말이 생각났고 그래서 웃음이 틔어 나올 뻔

했지만 참았다. 그리고 다행이지, 싶었다.

그 역시 스프가 돈까스인줄 착각한 것이 틀림없었지만 내가 있기에

접시를 통째로 들고 스프만 후루루 마시고 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난 그가 무안하지 않도록 먼저 수저를 들고 살짝 후추를 뿌린 스프를

떠먹었다. 그도 더 이상 투덜대지 않고 내 행동을 따라서 행했다.

스프 하나를 먹기 위해 몇 개 나왔던 단무지를 몽땅 씹어 먹는 그의

식성에도 대수롭지 않은 척 바라보아야 했다.

좀은 어색한 듯 불편해하는 사돈 덕에 나 역시 불편한 심기로

있을 쯤 정식이 나왔다. 지금도 잊지 못할 그날의 정식이 담긴 접시에는

김밥 두 토막, 돈까스, 생선까스, 작은 스테이크, 새우튀김 등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선 깍두기도 함께 단무지와 반찬으로 나왔다. 

 

그와의 식사가 진행될 쯤, 나는 구석진 우리들의 자리를 선택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야 했다. 아니, 차라리 분식점에서 돌솥비빔밥을

먹을 것을, 하는 후회마저 들고 말았다.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던 그가

대뜸 접시 안에 빵을 찢어서 넣더니 뭉툭하게 썰어놓은 고기조각들

위에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와 리필된 단무지를 쏟아 붓고 케찹까지 넣어

쓱싹쓱싹 돌솥비빔밥을 비벼댔던 것처럼 버무리는 거였다. 그 모습에

놀란 것이 나 뿐만은 아닌 듯, 스쳐지나가던 웨이터도 당혹감을 옅은

웃음으로 무마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먹을만 하구만...”

 

그의 되찾은 식성에 이번엔 내 쪽이 입맛을 잃고 말았다. 개도 마다할

모양새의 그 해괴한 사돈의 정식 탓에...

 

- 우습게도 17년째 접어들고 있는 우리들의 결혼 생활 속에

그와 내가 뒤바뀐 것이 있다. 나와 만나며 돈까스를 알게 되었고

그것의 맛에 빠져들게 된 남편은 지금도 여전히 기사식당을 찾아가서

싼 돈까스를 시켜먹길 좋아했고 여전히 김치와 케찹을 사정없이 넣고

비벼먹곤 한다.

난... 양식은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격식 제대로 갖춰서 나오는 레스토랑은

그가 처음 나와 만날 때 그랬던 것처럼 가격이 두려워서 찾지 못하게 됐다.

아이들과 외식을 해야 할 상황이면 유명한 피자점을 찾기보다 값싼

분식점을 즐겨 찾아다닌다.

그리고 침대 아니면 결코 배겨서 잠들지 못하던 나는 침대 없어도

잘 수 있는 몸이 된 반면, 침대가 불편하고 허리까지 아프다던

남편은 침대 아니면 불편한 잠자리라고 투덜 되는 신체를 갖게 되었다.

이마저도 나는 시트콤만 같다.-

 

사돈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했다. 간간히 학원으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강사나 원장, 남자 수강생들이 전화를 받으면 그 남자가

누구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내가 다니는 학원이 여성전용 학원이어야

되는 것처럼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게 불평을 늘어놓는 그에게 나 역시 용남과 어울리지 말 것을 제안했다.

걱정하는 내게 자신을 도울 사람이 필요했고 성격이 잘 맞아서 함께

다닐 뿐이라는 핑계를 대곤했다.

 

어느 밤, 장사를 마치고 귀가한 엄마가 내게 갑자기 민혁 얘기를 꺼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웬만하면 그 착한 것 용서하면 안돼겠냐며

민혁을 두둔하며 말씀하셨다. 난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갑작스런 민혁의 주제를 들어 거론하는 엄마의 말이 당혹스러웠다.

그런 내게 엄마는 민혁이 벌써 엄마가 장사하는 곳에 두번이나

들렀었다는, 미처 몰랐던 가슴까지 쓸어내릴 놀랄 사실을 꺼내놓으셨다.

 

민혁은 엄마가 장사하는 것을 몰랐다. 어떻게 알고 두 번이나 갔을까 의아해

하는 내 속을 꿰뚫듯 엄마가 저녁을 차리며 계속 내게 말씀하셨다.

 

“첫 번째 들른 날은 내가 장사하는 줄도 모르고 왔던 거더라.

포장 밖에서 뭣 좀하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가 잔뜩 쳐져서 지나가는데

낯이 익어서 보니까 민혁이야. 그래서 들어오라고 해서 뭣 좀 먹였더니 굳이

고집껏 돈을 내고 갔어. 갈때 다음에 들른다고 말하더니 정말 오늘 친구들이랑

함께 왔네? 너 좀 화가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고 풀죽어 말했어. 도대체 뭘 잘못해서

우리 딸래미를 화나게 했냐고 물어도 커다란 잘못을 했다면서 그 이유는 말씀

드리지 못하겠다고만 하는데... 녀석이 코가 댓자는 빠졌더만. 도대체

민혁이가 뭘 잘못한 거야?“

 

엄마의 질문에 나 역시 대답할 수 없었고 회피하듯 자리를 떠서 내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미안함에 눈물이 쏙 빠질 것도 같았다. 혹시라도 제가 내게 당한 버림에

앙심을 품고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어쩔까, 철저히 이기적이던 나였기에

잠시 그 걱정만으로 의심했던 것이 죄스럽고 미안했다. 하지만 난 다신 ‘민혁’이란

이름조차 잊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그렇게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날 전화해서 또 옴팡지게 닦달한 뒤, 내 말만 끝으로 전화를 끊었었다.

 

- 남편을 따라서 가족을 등친 채 서울로 올라와서 가진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했던 몇 개월 후 엄마의 목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었다.

전화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나로 인해 엄마가 더한 곤혹을 치르게 될 것이 걱정스러워 차마

수화기를 집어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외롭고 힘겨운 생활 속에 떠오른 것이 내게 늘 따뜻했던 민혁이었다.

갑자기 떠올랐던 생각을 실행에 옮기며 민혁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곧 받은 민혁의 익숙하고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나야...”

“... 그래...**구나... 잘 지내지...”

 

민혁의 목소리가 낯선 사람처럼 덤덤했다. 기쁨에 반기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리감마저 느껴지는 덤덤함을 예상치 못했던 나였기에 살짝 당황까지 하고 말았다.

그리고 추하게 전락한 내 꼴, 제법 불러 온 내 배와 초라한 옷차림을

새삼스레 느끼며 끝을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전화 건 것이 후회됐지만 대뜸 끊을 수도 없었다.

 

“그럼, 난 잘 지내지...형도 잘 지내?”

“응... 무슨 일로 전화 했니?”

“... 그냥, 갑자기 형 목소리가 듣고 싶더라구. 잘 지낸다니 다행이야

알았어 끊어.“

 

끊고 한없이 절망했던 나였다. 그리고 절락해버린 처지를 다시금 깨닫게 됐던

순간이었다.

그날 그 통화가 마지막 통화였다. 민혁이 나를 잊은 듯, 안중에도 없다는 듯

덤덤하던 목소리가 시간이 흐르며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