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욱이는 나보다 나이가 2살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느 날부턴가
내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집으로
하루에 한통씩 편지를 보내왔다.
내 답장 없음에도 굴하지 않고 편지가 계속되었다.
처음 몇 달은 하루에 한통씩 도착하던 편지가
어느 날부턴가 이틀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으로
주기성은 없어졌지만 편지는 계속해서 내 손으로 전달되었다.
편지 내용의 대부분은 자작시로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거리를 누비던 나를 지켜봤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나도 모르던 내 얘기를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자신은 가고자 했던 대학의 재수에서도
떨어졌다며 지금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묻지 않은 제 소개 글들로 열거하기도 했다.
무슨 남자가 여자 앞에 나설 용기도 못 내고
편지만 보내나... 게다가 글조차도 세상 잡다한
것들을 창작시라며 ‘시’답지 않은 유치한 글들로 열거한
것까지도 내 마음에 드는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었다.
직장인도 학생도 아닌 상태에서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백수를 치장한 것 같은 표현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도 나이가 너무 어렸다.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시절 어느 한 때를 교과서가 아닌‘하이틴로맨스’
시리즈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고 간간히 수업시간에
겁을 상실하고 책상 위 교과서 밑에 감춰두고 읽다가
선생님께 뺏겨서 사랑(?)을 확인해야 할 때가 있을 만큼
로맨스에 빠져 살았다. 그래서 일찍이 깨친 나의 남자상...
남자라 하면 무릇, 떡 벌이진 어깨로 여자 2명쯤은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어야 하는 체력쯤은 기본으로 갖춰야하고...
자가용 비행기를 적어도 3대 정도 소유하는 재력가여야만 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스치는 여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제 여자가 아니면 눈길 하나
주지 않는 자제력을 수투처럼 입고 있어야했다.
그와 나와의 나이차는 7살이 적당했다.
철딱서니 없는 나의 어떠한 행동에도 굽힘 없는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으려면 딱 그 정도는 먼저 세상 밖으로 태어나서 인생
경험을 쌓고 있어야만 한다는 기준이었다.
그런 개념들을 갖고 있던 내게 고등학교 시절 또래와의
미팅 따윈 소꿉놀이처럼 유치할 뿐이었다. 결혼은 아니어도
멋진 로맨스만은 꿈꿨던 내게 언젠가는 그리 목숨 걸고
봐야 했던 책들 속에 한부분이 펼쳐질 날이 올 거라는
기대 속에 살았다.
간간히 만났던 남자들은 보통 4살 위였고 사회인들이었다.
그들과의 만남도 학원수업시간 빼먹고 몰려다닌 친구들과
의리란 명목아래 함께 맛난 것을 얻어먹었고 영화관을
돌아 다니게 햇다. 내가 지닌 장애는 얼마든지 옷으로도 커버가
되었고 나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굳이 그것을 감추려고
들지도 않았다.
발랄함을 넘어선 활달함 때문이었는지 내 주변에는
적지 않은 남자들이 있었다. 그런 나를 걱정해서
엄마는 남자는 모두 늑대다, 며 몸조심을 강조하셨다.
그 당시에 내 주변에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몸으로 임신한 선배들이 몇 있었고 친척 집안
내에도 중학교 때부터 남자에게 몸을 내어준 언니에
대해서 간간히 걱정스런 말들이 오가는 것을 접하기도
했었다. 그런 탓에 늑대라는 그 ‘놈’들을 만날 때마다
개인적인 만남을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대범하기도 했던 나는 이상스레 남자들의
손길만은 불결하게 느껴졌고 거부반응까지 갖고
있었다. 혹시나 내 이상형을 만났을 때도
소름 돋는 그 증상이 나타나면 어쩌나 앞선 걱정을
하기도 했다. -
민욱과의 만남은 편지를 받기 시작한 날로부터
1년이 넘어서 였던 것 같다. 91년도 늦은 가을쯤이
아니었을까...
수술을 하고 퇴원해서 보조기를 착용하고 걸어야
했던 어느 날이었으니까...
무료함에 헐떡이던 때에 심심풀이 상대를 원했던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나를 만나기 위해서
민욱이는 우리 동네를 자주 찾아 왔다.
내게 보냈던 편지를 엄마가 읽은 탓에 그의 섬세하고
자상한 면을 느끼셨고 사람됨이 괜찮다며 은근히
마음에 두셨던 탓인지 그의 방문을 허락 하셨다.
우리들의 만남은 보통 바다가 보이는 우리 집
옥상에서 이뤄졌다.
180cm에 가까운 키에 어깨가 좁고 살이 없는 몸과
평균을 밑도는 얼굴에는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참으로 실망스런 외모였다.
편지로 간간히 자신의 못난 외모를 고백처럼
썼던 이유가 뭐였는지 첫 만남순간 알 수 있었다.
민욱은 한 달에 한번 병원에 가야 할 때면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내 보호자를 자처하여 나서기도 했다.
우리는 많이 가까워졌지만 내게 그는 어떤 매력도
풍기지 못했고 그래서 도무지 이성으로 느낄 수도 없었다.
남녀 간에 우정이 존재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름은 때가 묻지 않았을 시절이었기에 친구라는
명분으로 만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을 넘게
내게 보인 민욱의 관심도 그런지 자신할 수 없어서
헛물켜지 말라는 경고와 더 이상 가까워 질 수 없는
우리들의 관계를 각인 시키며 다른 여자들을
만나보길 권하기도 했다.
민욱은 ‘응...’ 하며 늘 내 말에 수긍했다.
‘형’이라 부르는 내 호칭에 제발 한번 ‘오빠’라고
불러달라는 부탁을 꺼냈다가도 ‘그딴 말 할 거면 다신 나
만날 생각 하지마!!!‘ 하는 말로 언제나처럼 협박을
일삼으며 내 고집대로 ’형‘이라 불렀다.
자존심이 뭔지도 모르는듯 민욱은
역시나 ‘알았어, 미안...’ 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리곤 했다.
되지도 않을 공부에 매달리지 말고 취직을 하라는
내 충고에 곧바로 생활전선으로 뛰어 들기도 해서
민욱의 어머니가 어느 날 내게 고맙다는 전화를
주기도 했다.
집안에 막내로 귀염만 받고 자랐던 아들이 나를
만나고부터 많이 어른스러워졌다는 말씀을 전해주신
다음 날 민욱과의 전화통화에서 내 전화번호를 왜
엄마에게 알려 줬느냐며 호된 화를 쏟아 냈지만
민욱은 바보처럼 여전히 전화기 넘어서 웃었고
‘미안해, 알았어, 화 풀어...’라는 말을 했다.
만나지 못하는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민욱이
내게 전화를 했고 받지 않은 날이면
‘언니네 있었니?’ , ‘친구가 다녀갔었니?’
라며 내 일상을 꿰뚫기도 했다.
만나면 늘 언성 높이는 나와
바보처럼 헤헤 거리는 민욱과의 만남을
가족들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난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변명조차 귀찮을 정도로 그는 내게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