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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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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2)-이종 사촌조카 선영이


BY 솔바람소리 2008-12-02

1992년도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두 차례의 커다란 수술을 받고 퇴원해서 요양하고 있던 그 당시,

골반과 척추 뼈에 끔찍한 고통을 주던 보조기를 풀어 낸지 몇 개월쯤

지난 후이기도 했다.

 

한 달에 한번씩

척추를 따라 30cm 자모양의 쇠를 덧대어 고정한 곳을 따라서

철사같은 가는 줄로 리본이 일정하게 묶여있는 것을 나는 백병원에

들려서 엑스레이를 찍어 확인하며 의사에게 몸의 상태를 체크 받고

약을 타 와야 했던 귀찮은 일도 끝마쳤을 때이기도 할 거라고, 가물거리는

내 머리가 알려주고 있다.

 

엑스레이를 통해 내 속을 봐야 할 때마다 나는 ‘소머즈’가 된 것 같은

공상과학적인 착각 속에 빠지곤 했다. 인조인간화 되어가고 있다는

비참함에 날개를 달아 훨훨 날아 다니며 참 기막힌 상상의

나래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던 참 한심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가 최소한 3년은 몸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당부 덕에

꼼짝없이 집에 붙들려 있어야 했지만 어떻게든 나가고만

싶어서 안달복달, 부들부들, 오들오들 떨던 때이기도 했다.

 

간간히 친구들도 만나고 2년 선배의 이성 친구(?)도 만났지만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으로 온몸이 근질거릴 때, 유일하게

위안 받을 수 있던 것이 근처에 살고 있던 둘째 이모의 큰 딸의 딸,

나의 이종사촌 조카 선영이의 옹알거림을

접할 때뿐이었다.

 

이모의 큰 딸인 이종사촌 언니와 나는 6살 나이차가 있었다.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우리는 단짝같은 친구처럼

낮 동안을 꼭 붙어서 지냈다.

설비 일을 하는 형부를 남편으로 둔 언니는

날이 포근할 때는 낚시로, 추운 겨울이면 사냥에

미쳐서 밖에서 지낼 때가 많은 남편 때문에 늘 안달복달

속을 가스 불 위에 찌개 끓이듯 지글지글 보글보글

끓여가며 살았다. 나는 그런 언니한테 ‘병신’같다는

말로 남편만 바라보지 말고 ‘언니’도 즐기고 살라고

막강한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다.(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어쩜 언니에게 그 당시 지랄했던 자만을 벌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언니는 나와 얘기하면 속이 후련하다고 했지만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나면 내 엄마를 비롯해서 이모들과

언니까지 어째 사는 것들이 그 모양인지 저주받은 집구석이

아닌가 속이 상해서 미치고 팔딱팔딱 뛰고만 싶었다.

 

사촌 형부는 우리 부모님이 제일 싫어하는 ‘전라도’사람이었다.

1년에 한번은 동네를 벗어난 멀리 전라도 군산까지 내려가서

고기잡이로 한 계절을 나곤 했던 부모님은 그곳에서 겪었던

설움과 어려움이 컸던 탓인지 '라도‘의 ’라‘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는 지역감정을 갖고 계셨다. 그런 탓에 은연중에

나 역시도 살짝 거부반응을 갖고 있기도 했다.

언니는 펑퍼짐한데 비해서 형부는 멸치대가리마냥 삐쩍 말라있었다.

눈도 짝 찢어진 것이 입도 거칠어서 제 말에 마누라와 달리

당당하게 맞서는 때 묻지(?) 않은 내 기를 꺾고 싶은지

밀린다 싶으면 노골적인 음담패설들을 꺼내서 내 얼굴을

붉히게 만들곤 했다.

 

“처제, 드라마 ‘~ ~’ 잘 보지?”

“아니요. 안 봐요.”

보지, 왜 안 보지...?”

(지금도 역시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나'이기에 참 많은 얘기 속에서도

제일 건전한 작은 한 토막을 꺼내놓았는데,  이 정도를 음담패설이라고

꺼내 놓고도 '순수'를 입고 사는 것을 너무 자랑스레 꺼내보이지 않았나, 써놓고

걱정되는 이 희한한 심보를 어째야 할지... )

 

처음에 뭣도 모르고 대꾸했다가 서서히 말려들어가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나를 즐거이 바라보던 형부 곁에서 언니도 낄낄거리고

있어서 나가던 내가 수없이 째려보기도 했다.

사촌 형부와 나는 성이 같은 동성동본인 탓에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를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하면 나 역시도

받아 주려고 애썼던 것이 흔치 않은 우리들의 같은 ‘성’씨의 만남,

그 인연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무료함에 깔딱되던 나는 다신 안 갈 것처럼 굴다가도 돌이 갓 지난 조카

선영이의 이쁜 짓이 그리워서 또다시 쪼르륵 자존심 버리고 갔던 어느 날

언니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다.

 

22살에 벌써 꿰뚫은 삶의 일부들 중에 익히 알아버린

한 부분을 떠올리며 언니가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뭐야? 낚시에서 돌아 온 형부 호주머니에서 또 여자

팬티 나온 거야?  내가 그랬지, 언니도 형부 앞에서

외간 남자 빤스 좀 흘리면서 살라고... 병신처럼 또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로 있고 지랄이야... 나 콱 가버린다.“

 

내 말에 다시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언니가 나가려는

제스처를 취한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기집애야, 하여튼 성질도 급해. 그게 아니고

앞으로 내가 좀 힘들 것 같아서 그래. 형부가

자기 동생을 불렀거든... 일 좀 도와달라고... 내가 밥해서

먹이려면 아무래도 더 힘들지 않겠어? 시동생 건사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잖아...반찬도 그렇고...“

 

“난 또 뭐라고, 왜 밥을 해 먹여. 전국 바다로 낚시 다닐 돈을

아껴서 저보고 사 먹이라고 하면 되지. 아이씨... 뭐야,

나 이제 여기도 못 오는 거야?“

 

형부 동생이 일을 돕기 위해서 온다니 사돈의 컴백은

내가 그나마 놀았던 공간의 침략을 뜻하기도 했다.

언니의 몸 고생의 걱정보다도 이기적인 마음이 내가 있을

터에 방해꾼이 등장한다니 사돈의 방문이 내게는 침략자처럼

느껴져서 언니와 함께 인상이 자연적으로 구겨져버렸다.

 

“뭐 어때. 잠은 민박에서 잘게 될거고 난 식사만 챙겨주면 돼.

네가 불편하면 밥 때만 지나서 오면 되잖아. 네가 선영이랑 놀

아주지 않으면 우리 선영이 이모 보고파서

떼쓴단 말이야. 그런데 너 요즘도 민욱이랑 잘 만나고 있는 거지?“

 

주객이 전도된 듯 오히려 나를 위로하던 언니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언니를 비롯한 식구들은 1년 넘도록 나를 따라다니는

나보다 두 살 많은 ‘민욱이 형’에 대한 관심들이 많았다.

난 아무리 친구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꾸했지만

모두들 의미심장한 웃음들을 떠올리는 통에 나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