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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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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보이지 않은 이유.


BY 솔바람소리 2008-11-25

밤 9시가 가까운 시간에 딸과 함께 시장엘 들렀다.

낮 동안에 붐볐던 북새통은 어디가고 오가는 사람 몇 없는

거리는 한적했다.

꽈배기와 고로케 맛이 일품인 분식점 앞에 ‘오뎅 300원’ 이란

A4용지에 매직으로 쓰인 재미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육수 통에서 반신욕(?)을 즐기는

오뎅들이 내 눈에도 맛깔스러워 보이길래 곁에 있는 딸은 오죽할까싶었다.

 

“아영아, 우리 오뎅 하나씩 먹고 갈까? 날도 쌀쌀한데...”

 

내 물음에 딸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팔리지 않은 꽈배기와 도넛을 떨이하듯 일회용접시에 몇 개씩 담아놓고

랩으로 싸놓은 것이 2,000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럼, 이것 사갈까?”

 

다시 던진 질문에 아영이가 역시나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어째 주객이 전도된 듯하다. 사달라고 떼쓰는 어린 자식 앞에 매정한

엄마의 모습이 아닌 사준다는 엄마의 성의를 딸이 마다하고 있으니...

많이 컸다. 가벼운 엄마의 주머니 사정도 고려할 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양말이나 속옷 따위를 파는 좌파상들도 파장한 하루를 마무리하듯 가지런히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신발가게, 화장품가게, 두부가게, 의류점, 이불점...폐점하지 않은

점포에서 흘러나온 불빛들로 대낮처럼 환한 좁은 거리를 딸과 함께

걸어내려 갔다.

시들하니 흥을 잃은 시장엔 구경거리며 볼 것이 없었다. 아직도

길게 남은 시장 통에서 딸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오는 길에 갈치 떨이로 3마리에 만원 한다는 몇 마리 남지 않은

생선들과 서있는 리어카상 아주머니에게 갈치를 샀다.

아줌마들의 상징인 정감을 나누고픈 마음에 갈치를 손질하며 소금

뿌리는 아줌마에게,

 

“이 시간에 사람이 없네요? 전에는 이렇지는 않았는데...

늦은 시간에 나와서 장사하시는 분들도 있더니 안보이고...“

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게, 요즘 사람들이 많이 줄었어요. 다들 일찍

정리하고 들어가는 편이에요... 이래서 어디 먹고 살 수

있으려나 몰라...“

 

하소연을 털어내는 아주머니와 어려운 경기에 대해서

말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 오는 길에 한과 조금과 요즘 공부한다고

부쩍 야윈 아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사들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물가는 오르고 수입은 줄었으니 부쩍 가뿐해져버린

장 가방을 딸과 사이좋게 한쪽씩 나눠들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을

맞서듯 지키고 선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거닐었다.

 

“엄마, 별이 보여요. 달도 있고...”

 

가로등이 불 밝힌 골목위로 반짝이는 큰 별 두 개가 떠있었다.

문득 얼마 전 친정에 내려가서 보았던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생각났다.

같은 땅덩어리, 같은 하늘을 이고 있으면서도 밤풍경은 사뭇 다르다. 하늘마저

삭막하기만한 도심 속에 내가 존재함을 알려주고 있는 듯 했다.

 

“아영아, 시골에는 별이 많은데 서울에는 왜 별이 조금밖에 없을까?”

 

나는 별을 보며 언젠가 깨달았던 사실을 아영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몰라요... 엄마는 아세요?”

 

“음... 엄마 생각에는 시골은 가로등이 많지 않아서

밤이 뭔지 확실하게 알려주듯 깜깜하잖아.

어둠 속에서는 작은 불빛도 환하게 보이거든.

그래서 밤 하늘에 떠서 빛을 발산하는 별들이 아주 잘 보이는 걸 거야.

도시는 가로등도 많고 건물마다 사람들이 늦게까지 자지 않고 불을

켜놓고 지내지? 그리고 상점들도 화려한 불빛들을 밤새도록 켜놓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환하거든. 그 빛을 이기지 못하는

작은 별들은 하늘에 떠있으면서도 지구의 환한 빛에 눌려서

보이지 않는 걸 거고...“

 

“아... 정말 그렇겠다...”

 

환하고 화려한 불빛 속에 살고 있는 우리였기 때문에

하늘의 작고 희미한 별빛 따윈 보려고도 하지 않아서

볼 수 없던 이기심으로 그동안을 살아가고 있던 것 같다.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오지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끔 매스컴을 통해 접할 때마다 전기도 들지 않는

곳에서 심심하고 불편해서 어떻게 사나 안쓰러운 처음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어떤 불편도 느끼지 않고 해맑고 근심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에서 오히려 그런 속에 한번 빠져

살고 싶다는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가는 50m쯤 떨어진 곳에 시장이 있고

3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지하철역이 있다.

집 주변에 커다란 마켓이 몇 곳이 있고 백화점도 가깝다

지하철만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놀이동산을 비롯한 여가를

즐길 곳도 많다. 아이들의 학교며 도서관도 100m 전방에

있으니 참 편리한 곳에 살고 있다.

이 속에서도 삶의 무료함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 나는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욕심과 이기심으로 늘 불만을 달고 살아간다.

 

별을 보며 욕심을 깨쳤던 지난날이

새삼스레 다가오니... 이래서 작심 3일 이란 말이 있나보다.

딸 덕분에 다시 본 하늘이었다.

그리고 다시 잡은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