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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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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여행(3)


BY 솔바람소리 2008-11-21

‘왜 태어났어요?’... 모르겠어요.

‘왜 아이들을 낳았습니까?’... 낳은 것이 후회 되요.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한 적 있나요?’... 불쌍하다는 생각이 컸어요.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목숨까지 바쳐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버리고 나왔으니 그것도 아니네요.


큰스님의 말씀에 오랫동안 생각했고 간략하게 대답했다. 나의 대답을 들어주신 큰 스님은 혜정스님에게 나무랄때의 근엄한 표정은 없으셨다. 인자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표정이셨다. 어리석은 중생이기에 가엾기만 하셨겠지...


큰스님의 두 번째 말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만물, 하다못해 굴러다니는 돌멩이, 풀 한포기 조차도 자기 할 일이 있어서 태어난 것이란다. 내 맘대로 태어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죽는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란다. 부모에게 가장 큰 죄는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거란다. 아파서 죽는 것도 죄라는데 하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더 큰 죄란다. 이 험한 세상, 아이들을 낳았으면 부모에게 받았던 사랑을 자식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란다. 내가 힘들다고 자식들은 나 몰라라, 버린다는 것은 어떠한 변명도 필요 없는 비겁한 사람이란다. 부부의 인연은 전생에 몇 천 번의 인연이 있었기에 만난 거란다. 좋은 인연보다 나쁜 인연이 더 많아서 만난 거란다. 현세에서 다시 만나 부부로 맺어져 그 모진 업보를 풀라고 만난 거란다.]


이러한 큰스님의 말씀이 이어졌지만, 너무나도 천부당만부당, 천만부당 옳으신 말씀이셨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굳은살이 딱딱하게 박혀버린 나의 마음으로 들어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의 무덤덤한 표정 또한 읽으셨을 것이다. 혜정스님도 큰 스님께서도...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이기적인 면이 여지없이 들어났고 그러기에 더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얘기가 죽음과 연관될 뿐이었다.


“보살님은 남편을 바라보는 눈의 잣대가 너무도 큰 것입니다.”


“...?”


“남편을 향한 기준치를 지금보다 반으로 줄여보시지요. 내가 바라는 것이 크면 그것에 따라주지 못하는 남편이 얼마나 더 밉겠습니까.”


“저는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되던 안되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요. 아무리 가족애를 모르고 자란 사람이라지만... 자신이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받았던 설움이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자기 자식들이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 것도 보살님이십니다. 남의 탓은 끝도 없습니다. 내 탓을 하세요. 내 잘못이다... 나의 업보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나올 때도 혼자였고 갈 때조차 혼자 갑니다. 함께 사는 가족 역시 인연의 끈으로 잠시 만난 것 뿐...남편분이 몰라서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님이 지혜롭게 깨우쳐 주도록 노력을 하셨어야지요.”


큰 스님 말씀 중에 보글보글 소리까지 맛있는 된장찌개가 들어 왔다. 식사가 앞에 놓이자 스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으셨다. 그저 ‘드시지요.’ 식사를 권하셨다. 난 큰스님의 말씀대로 수저를 들었다.


세상사는 이치야 나 또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인연 앞에 열을 다하여 말씀해주신 큰 스님의 성의는 감사했지만 내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죽겠다고 집을 나선 것이 그 순간 또다시 밥술을 떠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먹었다. 그 와중에도 한 그릇을 다 비웠던 것 같다. (난 속이 없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다 먹은 그릇들이 치워지고 커피가 들어왔던 것 같다.(스님의 말씀들은 기억에 이렇듯 오래도록 남는데 그 외에 것은 너무나도 흐릿하다.)


“관상이 참 좋습니다.”


커피를 드시던 큰스님께서 뜬금없이 하신 말씀은 익히 들었던 바다.


“아깝습니다.”


두 번째 말씀조차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터였다.


몸이 불구인 나에게 다들 하는 말들이라곤,


“어머, 세상에 얼굴에 복이 덕지덕지 붙었다.” 라든지,

“인물 좋지, 다리 예쁘지, 팔다리 길쭉길쭉하지... 아까워.” 또는,

“다치지 않았으면 그 성격에 큰 자리 해 먹고도 남지.”...


수많은 수식어들 속에 꼭 한번은 들어갔던 그 말들에 익숙하다 못해 지루할 지경인 나였다. 큰 스님 역시 나를 보고 그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하며 역시나 무덤덤했던 나다.


“관상은 얼굴에 살 좀 붙으면 모두 복스러워 보이겠죠. 아깝다는 말씀...참으로 많이들은 얘기구요.”


“껄껄껄... 살 붙어서 관상이 좋아지면 다들 살찌우면 되겠구먼. 내가 아깝다고 말한 것은 몸 때문이 아닙니다. 몸이야 포장일 뿐, 죽으면 똑같이 썩어 흙이 되면 그만...”

“......?”

“내가 이래뵈도 사람 보는 눈은 있지. 남다른 재주가 있는데 왜 그걸 썩히려고 합니까. 잘 하는 손재주가 있나요? 머리도 비상하겠고...”


큰스님은 이제 돗자리 펴고 관상 보는 점쟁이 역할까지 하려 드셨다. 평소 같았으면 두 귀가 쫑긋할 그 얘기들이 왜 그리 시답지 않던지...오히려 큰스님과 혜정스님께 죄송할 따름이었다. 큰 스님의 말씀에 대꾸 없는 나를 대신해서 그동안 말없이 옆에만 앉아 계시던 혜정 스님이 답을 하셨다.


“보살님은 글을 쓰세요. 그래서 TV에도 몇 번 나오고 라디오에서도 글이 많이 당선 되셨어요.”

“그 능력으로 지금껏 흔적으로 남긴 것은 무엇이 있나요? 세상에 태어나서 도대체 아이들 둘 낳은 것 외에 보살님이 이룬 것은 무엇이던가요?”


“....!...”


보살님께서 이룬 것이 무엇이던가요... 무엇이던가요....무엇이던가요...


큰스님의 그 말씀이 내 머릿속에서 메아리가 되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 많은 말씀들 중에서 제일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서 하다못해 돌멩이들도 제 할 일 다 하고 마지막 가는 날이 있다는데, 길거리에 풀한 포기조차 제 몸을 썩혀서 거름이 되고 흙을 비옥하게 한다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 태어나서 난 정말로 아이들 둘 낳은 것 외에 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붉어졌다.


“다이야몬드도 처음엔 하나에 쓸모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빛을 내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제 몸이 깎이고 갈리는 아픔을 겪어내야만 합니다. 이제 겨우 세상 얼마 살지도 않고 힘들어 죽겠다고 못살겠다고 모든 것 팽개치고 죽어 버린다면 그게 끝이겠습니까?”


“저도 제가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해요.”


“부처님을 믿는 불자께서 분명 전생도, 윤회도 알 것인데 어찌 죽으면 끝이라는 모자란 말씀을 하십니까.”


“......”


“지금의 그 아픔들을 글로 남기세요. 행복한 것도 슬픈 것도, 속상한 것도, 아픈 것도, 반성도... 그런 것들을 글로 남겨 봐요. 좋은 능력을 얻으셨는데 그것을 세상에 한 번도 펼쳐 보이지 못하고 그렇게 이승을 떠난 다면 귀신이 되도 저세상에 못가고 잡귀가 되어 구천을 떠돌겠지요. 그건 자손들에게도 좋지 않아요. 자식을 낳아서 보살펴 주지도 못할망정, 업보만을 짊어지게 해서 되겠습니까.”


결코 큰스님과 오래 있지 않았다. 2시간도 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동안 해주신 말들이 모두 내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떠나시기 전에 해주셨던 몇 분의 그 말씀들이 그렇게 가슴 아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