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님의 목숨은 더 이상 보살님의 것이 아니에요. 내 말을 듣고 내려왔으니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모두 내 맘이지요. 그러니, 생각의 끈을 놓고 누워서 자도록 노력해 봐요.”
눈감고 하신 스님의 말씀이,
‘너, 살고 싶어서 여기로 내려 온 거잖아. 마음에도 없는 짓 그만하고 뒤집어져 자라.’ 하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려 온 것일까? 그마저도 의문이 되었다.
“불 끌까요?”
내가 스님의 잠마저 방해하는 것 같아서 여쭈었다. 하지만 스님은 그냥 두라고 하셨다.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바스락, 바스락... 찍찍...찍찍...
적막을 깨는 그 소리가 방 어느 곳에서선가 들리기 시작했다.
헉... 그 소리는 언젠가 시댁에 내려갔을 때 들었던, 쥐가 천장을 긁었을 때 나는 소리였다.
자살하겠다던 것이, ‘쥐에 물려 병에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나 더 생겼으니 코메디가 아닐 수 없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어처구니없게 밀려드는 공포... 하지만 입 꾹 다물고 누워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음을 다잡고서...
‘그래~ 까짓것 쥐에 물리면 서교증이란 무서운 병에 걸린다고 했지? 그럼 죽을 수도 있다고 했어. 깨끗하게 죽고 싶었는데...’
그런데 걱정이 태산 같은 나의 생각을 끊기라도 하듯... 내 발 아래로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털의 감촉...
“끼야악~~~!!!”
“어머, 왜요? 무슨 일이에요?”
“쥐... 쥐가...제 발 아래 있어요.”
새벽을 뚫는 나의 비명소리에 스님마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쥐 소리를 운운하며 이불 밖으로 나온 나를 보고 스님이 웃으셨다. 그리고,
“괜찮아요. 쥐 아니에요.”
하시더니 이불을 들추셨다. 쥐는 분명한 쥐였다. 아주 작은 생쥐 같은 그것은, 햄스터 비슷한 생김새에 하얀 몸에 커다란 검은 점박이 무늬를 갖고 있었다. 그때까지 햄스터조차 만져 본 적 없는 나였다. 그러니 꼬리마저 쥐의 꼬리와 똑같이 생긴 그것이 공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 쥐에 물릴까봐 놀란 나를 뒤로 하고 쥐새끼(이름도, 종류도 모르기에...) 2마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놀랐지? 아줌마가 방정을 떨어서... 괜찮아. 추워서 들어왔나...”
손바닥 위에 그것들을 향해서 말씀하셨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처럼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다른 한 손으로 쓰다듬어 주기까지 하셨다.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소름이 돋았다.
단 둘만 있는 줄 알았던 그곳에서 나와 스님, 그것들... 동물 4마리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엽기적인 스님... 진정 스님은 여자가 맞는지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스님과 난 1시간도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날이 밝자 팔자도 편하게 음식물을 배속으로 집어넣는 여유까지 부렸다.
스님이 주신 책은 단 한 줄도 읽지 못한 나는 그 것을 곁에 두고서 몇 숟가락 되지 않는 밥이었지만 입으로 씹어서 분명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스님께서 어딘가로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가시더니 따라 오라셨다. 무지몽매한 나는 스님의 말 한마디에 쫄래쫄래 따라 나갔다. 어디를 가시느냐고 묻지도 않고 차에 올라탔다.
“이 고물차가 생긴 것은 이래도 잘 달려요.”
“........”
“창밖을 봐요. 서울에서는 보지 못한 경관이잖아요.”
스님의 말씀에 대꾸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내 눈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 가서 뵙는 분은 내게 법명을 지어주신 큰 스님이세요. 참으로 박식하고 유명하신 괴짜스님이시죠. 보살님께 꼭 뵙게 해주고 싶은 분이에요. 절에 잘 계시지 않는 분인데 어떻게 연이 닿는지 쉬이 오시겠다니 감사하죠.”
“네...”
“그 분은 결혼도 하셨 었고 크게 사업도 하셨었고 크게 망하기도 하셨었고... 안 해본 것 없이 모든 것을 겪어 보신 분이세요.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계시다가 절로 내려 오신지 얼마 되지 않으세요.”
‘하셨었고...’하는 과거형 접미사가 붙는 것으로 소개된 그분을 만나러 가는 거라고 조용한 나를 대신해서 스님께선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는 말에 자세히 설명까지 덧붙이셨다. (난 지금도 스님께서 날 데리고 간 곳이 어디였는지 이름이 기억에 없다. 그만큼 다른 뭣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시간만 끌지 말고 죽어야지...’ 이 생각이 가득했다.
왜관에서 3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대관령 고개 비슷한 운치가 있는 국도 휴게소였다. 허름한 휴게소와 달리 그곳에서 본 경치는 아름다웠다. 숲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주변이 나무들로 빼곡했다.
20여분 쯤 지났을까? 차 안에 앉아 있는 내게 입이 심심하다며 뻥튀기를 사와서 먹자고 하시던 스님이 검은 짚 차를 보더니 황급히 내리셨다.
따라 내린 나의 눈에 키가 18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덩치 좋은 남자 스님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두 분이 서로에게 합장을 하셨다. 어색하게 나도 합장에 합류했다. (합장이란 두 손을 가슴으로 모아 붙여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을 말 한다.)
휴게소에서 10m쯤 떨어진 곳에 주막이란 곳이 있었다. 우린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혜정 스님은 큰스님께 여자답지 않게 승복을 함부로 입었다고 꾸중을 들으셨다.
나와 6살의 나이차가 무색할 정도로 위엄 있으신 그 분이 큰 스님 앞에서는 아버지 앞에 어린 딸처럼 혼나고도 좋아서 또 혼날 얘기들을 늘어 놓으셨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생긴 모습 그대로 하는 짓마저도...
우린 작지만 포근한 주막의 방 하나로 들어가서 앉았다. 큰 스님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 것인지, 아침에 갑자기 전화를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연이 닿아서 두말없이 4시간가량을 달려서 오셔주신 것인지... 그때는 그마저도 생각하기 싫었다.
종업원 아줌마가 물통을 상 위에 내려놓더니 차림표를 내밀었다. 큰스님께서 보시더니 독단적으로 만장일치 [된장찌개]를 주문하셨다.
“맛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종업원의 말이었다.
“시간이 좀 먹나, 천천히 해도 됩니다. 입으로 들어가면 모두 ‘똥’되는 것은 마찬가지, 맛없게 해도 상관없지. 배만 채우면 되요. 사는 동안 잘 먹고 잘 싸면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지요. 그것이 인생 아니겠어요.”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종업원은 스님의 그 말씀이 재미있다고 웃어댔다. 스님의 괴짜스런 말투는 내가 절망적인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 또한 박장대소 할만 했다. 하지만 그 순간도 나의 표정은 초지일관, 비관적이었을 것이다.
큰 스님께서 상 한쪽에 업어져 있는 컵을 바로 하더니 내 앞에 놓았다. 그리고 물을 하나 가득 따르셨다.
“보살님, 이 컵에 쥬스를 담을 수 있나요?” 하고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다.
“네?...”
“ 이 컵에 쥬스나 술이나 다이야몬드, 진주, 금, 은... 그런 것들을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환갑이 가깝다는 노스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가수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거기다 정정하심은 40대를 방불케 했다.
정정해 보이시는 그 분이 치매일리는 없었다. 뭔가 뜻이 있는 질문, 그 깊은 속내가 무엇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 물이 가득 담겼는데 어떻게 다른 것을 담겠어요... ”
나는 스님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 그렇지. 정답이지. 가득 담긴 물을 버리기 전에는 어느 것도 담을 수가 없지. ”
큰스님은 벌써 나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큰스님의 연설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말씀인즉슨,
[사람의 욕심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두 손에 가득 물건을 집고도 눈앞에 잇속을 보고도 놓친다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면 한 손에 있는 것을 놓던지 아니면 두 손을 다 놓고 잡던지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아등바등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괴로워들 한단다.]
“보살님, 왜 태어났습니까? 왜 아이들을 낳았습니까,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한적 있나요?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질문들이 점점 가관이었다.
내게 왜 태어 났냐니... 엄마가 났으니까 태어 난 것을, 내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을, 내 맘대로 태어날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버거운 삶도 꿰뚫고 곧 바로 엄마 뱃속으로 기어 들어가 버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