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친구 하나 만나서 방도 만들었네요. 지난 날 썼던 글 중에서 다시 한번 되새길겸
첫 글로 띄워보내요. 어쩜 읽어주신 분들 계실듯도 하구요... 보신 분들은 그래도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울리지도 않는 전화기를 드는 적이 좀처럼 없는 나다. 그런 내가 수화기를 집어 들고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 !@#$#$%$%%@$$$....... ”
신호음도 아니요, 신나는 링투유도 아닌 경소리가 들렸다. 불교신자라고 부르짖는 내가 아는 경이라고는 천수경이 전부. 그래서 이 돌팔이 신자는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경소리가 무슨 경인지 조차 모른다.
“여보세요.”
전화기 넘어 인자하신 스님(비구니)의 강원도 사투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스님...”
“어!!! 보살님. 잘 있었어요?”
일 년이면 두어번이나 전화를 드릴까 말까하는 나의 목소리를 스님은 신통하게도 잘 알아채신다. 반기는 목소리엔 가식이 없으시다.
“잘 못 있으니까 전화 드리죠. 잘 있으면 전화 드리는 저던가요...”
“왜....”
다음 말을 기다리는 스님의 간단한 대답은 어떠한 소리도 다 받아 주실 의양이시다. 언제나처럼... 도저히 마음을 가눌 수 없을 때면 전화 드리는 나를 너무도 잘 꿰뚜신다. 세상에 나를 향한 천리안을 갖고 계신 두 번째 분이시다.
“그냥...상황이 더 나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그냥 붕~ 떠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봄바람이 또 살랑살랑 불잖아요. 그래도 잘 참았어요. 내, 그렇지 않아도 나뭇가지에 새싹이 막 돋아 나길래, 보살님이 또 얼마나 힘들어 할까 걱정했는데. 잘 견디더만. 이제 싹도 다 돋았고... 곧 여름이니 조금만 참아 봐요.”
스님의 말씀대로 난 봄을 많이 탄다. 아니 가을도 많이 탄다. 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좋은 계절만 되면 우울하고도 슬퍼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옛날...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힘겨워할 때, 유독 그 계절이면 자살 충동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봄바람 살랑살랑, 따뜻한 햇볕 아래 피어오르는 새싹들을 보면,
‘모든 만물들이 잠에서 깨어나 이렇듯 기지개를 켜는데, 난 이렇게 마음이 한 겨울을 혹한처럼 을씨년스러울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을에 서늘한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바라보자면,
‘이제 다시 겨울이구나... 삭막하다...막막하다...’ 하는 마음들이 울컥울컥 치솟곤 했다.
성질 더럽고 능력 없는 남자와 그 보다 더 못된 여자가 만나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쉬는 날이 많았고 일이랍시고 나가면 돈을 벌자고 나가는 것인지 술값을 벌자고 하는 일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남자를 더 이상 감당하고 살 수가 없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한 만남의 끝이 고작 이것일까?’ 하는 의문들이 끝임 없이 나의 목을 졸라댔다.
남편은 점점 내게 있어 일생일대의 과오로 다가왔고 암 덩어리 같은 존재였다. 아이들 역시 짐스러웠다.
지옥 못지않게 힘겨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는, 남편이 들어오지 않은 늦은 밤, 아이들만 남겨놓고 집을 나섰다.
며칠 먹을 반찬들을 냉장고에 챙겨 뒀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계절 따라 옷들을 구분해 놓았으니 알아서들 찾아 입겠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독한 마음으로 이끌고 한발, 한발... 내딛어 택시를 탔다. 서울역으로 가자고 했다.
어느 소설책 제목 같은, [죽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난 기차를 탔다.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분명히 따끈따끈한 화제감이 되어 아침 뉴스에 등장할 것이 싫었다.
대꼬챙이 같은 내 자존심이 절대로 그런 식으로 매스컴 타는 것을 용납할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멀리 떠나고자 했다.(죽을 것이 별 걱정을 다했지...)
‘ 서울의 한 30대 주부가 자신의 삶을 비관해서...중간 생략... 그녀에게는 아직 코흘리개 아이들이 2명이나 있다니 무책임하다고 아니할 수 가 없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멘트들이 쏟아질 그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나가야 했다.
택시를 타기 전, 나는 남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혀가 잔뜩 말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너란 인간이랑 살 수가 없어서 떠나. 지금껏 나 혼자 새끼들 챙기면서 살았는데, 이제 니가 애들 키워. 나를 못된 년이라고 욕해도 상관없지만, 너, 그 말하고 편히 살지는 못할 거다. 너를 만난 건 내게 있어서 최악이었어. 내 새끼들... 아니... 니 새끼들 잘 키워. 그렇지 않으면 귀신이 돼서라도 널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아빈엄마.......”
숨도 쉬지 않고 쏟아 낸 나의 말들은 울분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더 많았지만 며칠 밤낮으로 해도 끝이 안 날 그 얘기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줄여서 한 말이다.
내 할 말 다한 나는 남편의 목소리조차 듣기 싫어서 핸드폰을 끊어 버렸다.
늦은 밤,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맨 정신의 나는 너무도 외로웠다. 지나다니는 차들의 소음, 속도 붙은 오토바이의 요란한 경적소리...그마저도 외로웠다.
남편에게 계속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배터리를 빼버렸다.
서울역에 도착한 나는 목적지를 어디로 정해야할지 막막했다.
‘내가 죽을 곳을 어디로 정해야만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질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숙제였다.
‘이 인간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나 찾는다고 돌아다닐 때 아이들이 깨서 울면 어쩌지?’
갈수록 태산이었다. 집 나선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마음이 약해지려 하다니...
핸드폰을 켜고 1년 전에 동해에서 만나 알게 된 스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몇 번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전화 통화는 간간히 했기에 친분이 두터운 사이가 된 분이었다.
“스님...”
“네, 무슨 일 있어요?”
내 목소리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님의 목소리에 근심이 가득했다.
“집 나왔어요.”
“왜요... 애들은 어떡하고...?”
“애들이 걱정되지만... 내가 있다고 애들이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매일 싸워대는 부모를 보느니 어느 한쪽이 없더라도 조용하게 살게 해주는 것이 났지 않겠어요?”
“그럼, 보살님은 어쩌시려구요. 친정 가려구요?”
“아뇨, 죽으려구요. 애들과 떨어져서 살 자신이 없어요. 애들 데리고 살 자신도 없구요. 내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처음에는 모두가 가슴 아파하겠지만... 그건 잠시겠죠... 삶에 더 이상 미련도 없어요. 비겁하지만 그 수밖에 없어요.”
“그럼, 죽어야지요.”
“네. 죽어야지요. 그런데 어디서 죽어야할지...참 우습게도 이 순간 그게 걱정이네요. 걱정도 팔자라더니...”
“아빈엄마... 죽기 전에 나 한번만 보고 죽어요. 내게로 내려와요.”
“싫어요. 스님 뵈면 다시 마음이 약해질텐데요. 스님께 왜 전화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삶에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았나 봐요. 이러는 거 보면...”
“마음 약하게 안 만들어요. 그냥 죽기 전에 얼굴 한번만 보여줘요. 그리고 죽어요. 절대로 안 말려. 죽겠다는 사람을 내가 무슨 수로 막겠나.”
“.....................”
“죽는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죽기 전에 산 사람 소원하나 못 들어줘요?”
“.....................”
“나, 여기 왜관이란 곳에 내려와 있어요. 꼭 와요. 지금 출발하면 내일 아침에는 분명히 죽을 수 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 스님의 그 말씀들이 얼마나 지혜로우셨는지, 우습기까지 하다. 내가 죽지 않겠다면 당신이 나를 손수 죽여주시겠다니...그것이 머리까지 깎고 법명까지 받으신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스님은 불쌍한 중생 때문에 입에 담지 못할 말씀까지 마다하지 않으셨다.
스님의 소원(?)대로 난 왜관이란 곳에 도착했다.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지쳐 버린 나는 잠시 동안만 모든 생각들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왜관역에 도착한건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꺼놓았던 핸드폰을 다시 켰다. 문자와 음성메세지가 많이 와 있었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역 밖으로 나가니 3월의 꽃샘추위에 콧등이 시릴 정도였다.
“보살님!!!”
누군가 반갑게 나를 불렀다. 돌아 본 곳에 스님이 계셨다. 1년 만에 뵙는 스님은 여전히 동자승을 연상케 했다. 그 해맑은 웃음까지도...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시릴터인데도 맨머리셨다. 둘은 서로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웠다.
“스님, 춥지 않으세요? 모자라도 쓰시지.”
“제 새끼 버리고 죽을 사람이 별 걱정을 다해. 승복이 두터워서 괜찮아요.”
나의 시답지 않은 걱정에 정겹지만 뼈있는 말로 답해주신 스님께서 나를 데리고 16년 됐다는 프라이드에 태우고 작은 포교원으로 가셨다.
난방조차 들지 않는 절,
법당 옆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스님께서 먼저 전기장판 위에 두꺼운 이불을 펼쳐 놓은 곳으로 쏙 들어가셨다. 그리고 나보고 얼른 들어오란다.
심난한 마음 때문인지, 추워도 추운지 몰랐지만 스님의 성의를 생각해서 곁으로 가서 앉았다.
잠시 앉아 계시던 스님은 중요한 것이 생각 난듯 책장 쪽으로 가셨다. 그리고 책 한권을 빼서 내게 내밀었다.
일타스님의[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이었다. 책장을 넘겼지만 글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죽음을 직전에 둔 사람에게 책을 읽으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굴 한번만 보여주고 죽으라고, 죽지 않으면 죽여주기까지 하겠다던 스님께서 더 이상 말없이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고... 불도 끄지 않은 채로...
한숨이 나왔다. 죽겠다고 나온 것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새끼들 생각에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울 자격도 없는 나였다. 그래서 참았다.
‘여기서 뭐하니... 곧 죽는다고 하더니 낯선 곳에 내려와서 책 받아 들고 뭐하고 있니... 애들이 괜찮을까... 놀라지는 않았을까... 내가 죽으면 비겁해서 지옥에 갈 자격도 주워지지 않고 이승을 맴돌겠지... 난 그래도 싼 인간이지....... ’
잠시 접어두려 했던 생각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옆에 누워서 자요. 뭐하는데 그렇게 한숨만 쉬나... 버리고 왔으면 다 놔야지. 머릿속에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지. ”
나직한 스님의 말씀이라 놀라지는 않았다. 스님 역시 나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계셨던 거다.
‘버리고 왔으면 모든 것을 다 놓고 버려야지...’ 머릿속과 마음에 하나 가득한 나의 미련들이 스님의 눈에는 모두 보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