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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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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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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 까지만


BY 휘림 2007-10-21

 

 

 

 열세살 초등학교 6년인 딸아이를 둔 두 여인이 마주 앉아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큰딸아이 학교 (제주 한천초등학교 6학년)어머니모임의 일원인 솔지 엄마가 우리집에 온 것은 지난 11월 초 였지요.

 시댁에 가서 따온 극조생(빨리 익는 품종의 귤) 귤을 아는 이와함께 나눠 먹기 위해 전화버튼을 눌렀습니다. 문득 월초 어머니회모임에 나와 친정도, 시댁도 과수원이 없어서 귤이 없다고 말하던 솔지 엄마가 생각이 나서 .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니 마침 밖에 볼일이 있어서 나왔었다며 금방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달랑 귤만 들고 가기가 그랬는지 집안으로 들어와 끓여주는 차를 받아들고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딸아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솔향기가 폴폴 향기롭게 날것만 같은 딸아이 하나를  둔 엄마아빠의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런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그 말이 어찌나 재미있고 공감이 가던지 한 달 보름이 흐른 지금도 그때 솔지 엄마와 주고받던 이야기만 떠오르면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신혼 초엔 누구나 다 그렇듯 부모에게 기대지 않은 이상 힘들고 어렵게 지내기 마련인 그 과정을 아마도 솔지 엄마아빠도 겪은 모양입니다. 허긴 듣고 보니 남들보다 좀 더 힘들게 지낸 것 같았지요.

 그래서 아들이든 딸이든 딱 하나만 낳고 키우자며 솔지 하나로 단산을 했던 것이라더군요.

 아이 키우며 남편과 가게 일을 하느라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렇게 아이 욕심이 없었는데, 이제 삶의 여유가 생겨 돌아보니 너무 가족이 단촐 하고 어딘가 허전함을 느낀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솔지 아빠가 어디서 약주를 한잔 하셨는지 어느 날 저녁엔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불러다 앉혀놓고 그렇게 말하더라는 군요.

 "솔지야 너무 삐리리 해도 네가 함께 살려면 피곤하고 속 터질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빠릿 한 놈 고르면 너만 날름 데리고 가버려서 엄마 아빠가 억울해 미칠 것이니 우리 삐리리 까지 가지 않고 삐리~까지만 간 듬직한 남편감 골라다가 너랑 우리랑 함께 행복하게 살자 응?" 라며.

 그 말을 들은 저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지요. "근데 솔지 엄마 어떻게 삐리리와 삐리~를 구분하지?"

 "에이- 언니 그거야 몇 번 만나보면서 착하고 성실하게 자기일 열심히 하나 안하나 보고 난 다음, 여자 말을 잘 듣고 따라와 주면 그건 삐리~ 인거고 자기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여자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며 아부하면 그건 삐리리~까지 간 인물이겠지 뭐." 라는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아들두신 분들은 조심 하세요. 왜냐 구요? 실은 저도 딸만 셋을 둔 엄마라서 그 구분 방법까지 물어본 것입니다. 다 키운 아들을 며느리에게 완전히 건네주지 않으시려면 "삐리리" 혹은 "빠릿"한 아들로 키우셔야 하겠기에.

 각설하고. 어쨌든 저는 그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상대로 낮에 있었던 그 이야기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전했지요. 그랬더니 우리 신랑 감실거리던 눈까풀을 활짤 열더니 "그거 정답이다!" 라며 손뼉치고 난리를 피우더군요.

 이제 우리 집도 딸 셋 불러다 앉혀 놓고 "삐리리"와 "삐리~" 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하려 합니다. 그 시기를 언제로 잡을까 하는 고민만 남았거든요. 왜냐하면 너무 일찍 가르쳐 줘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이고, 너무 늦으면 사후의 약방문이 되어 골치 아플 것 같아서 입니다.

 하여간 그 말이 상당히 위안이 되었는지 우리 집 유일 남 요즘, 목욕탕갈 때 동행해서 등 밀어줄 아들이 없어 서운타는 말은 일체 없습니다. 아마도 그 "삐리리"와 "삐리~"의 감별 방법을 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느라 아들타령은 접어 둔 것 같아요.

 딸만 둔 전국의 부모님들 절대 아들 없음에 서러워 말고 "삐리리"와 "삐리~"한 사윗감 구분 방법만 잘 터득해 두시기 바랍니다.

  전 지금도 동네 사람들에게 딸딸이 엄마로 불리고 잇습니다만 그 닉네임이 그렇게 정겹게 들릴 수가 없습니다.

  한때 시댁 쪽 친인척과 심지어 친정어머니한테서조차 아들하나 더 낳으라는 충고 아닌 충고에 스트레스를 무척이나 받았습니다. 게다가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꼭 우리딸아이들 셋 앞에서 "어이- 우리 집 아들_"하고 이름을 생략한 채 자기아이를 부르는 동네 사람을 대할 때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그런 마음이 싹 지워졌지요. 그 집 아들은 "빠릿"도 아니고 "삐리~"도 아닌 삐리리 에다 산만함이 보태진, 한마디로 전혀 우리가족의 관심을 갖게 하지 못하는 남자아이로 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 남편조차 그런 아들이라면 열을 낳아도 외면하겠다며 웃곤 하지요.

 여러분 잘 낳은 딸이 열 아들 안 부러운 세상 곧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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