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약속
겨울들판을 훑고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소리가 가슴속에 아쉬움이란 미련을 만들고 있다. 가을에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야속한 겨울의 입구에 들어섰다. 떠밀려 가는 가을의 끝을 부여잡고 속이 상해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다.
서른의 겨울. 이상하게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서른이 간다는 건 어른이 되는 길목에 들어섰다는 뜻일 것이다. 엄마를 같은 여자로 보게 되고, 나 역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의 정을 가슴으로 느껴 가며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은 여유로워지는 때가 아마도 서른의 시작이 아닐까 말해본다.
내 나이 서른의 겨울에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 하나를 추억이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 짐으로 실어 보냈다. 너무도 소중한 약속이었는데.
겨울로 달려가는 기차의 뒷모습에 안타까운 손짓만을 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반이 바뀌어 담임을 맡게 된 여선생님은 학교에서 소문난 찬바람이었다. 별명도 ‘칼바람’이셨으니. 친구들은 “야, 너 이제 큰일 났다. 그 선생님 정말 무섭고 깐깐하다”며 겁을 주었고, 같은 반이 된 아이들도 어디서 들었는지 첫날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몸 둘 바를 몰라 했었다. 우리는 그렇게 기선 제압을 당한 것이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 눈매가 너무도 차갑고 무서워 보여 눈을 마주치기가 겁이 났다. 사회 과목을 담당하셨는데, 수업 시간에도 또박또박 하고 딱딱한 목소리로 지식을 전해주었다. 온기라고는 없어 보이는 분. 선생님의 가슴이 뛰고 있을까를 친구들과 내기한 적도 있으니…….
소문대로 선생님은 대단하셨다. 하루에 한 번씩 이름표 검사, 일주일에 한 번씩 실내화 검사, 손톱검사, 심지어 속옷도 검사를 하셨다. 여자는 팬티 하나만 입으면 안 된다며 꼭 두 개를 입어 따뜻하게 해야 한다 했다. 안 지키면 벌칙이 꼭 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데 그때는 정말 죽기보다 싫은 벌칙이었다.
이름표가 없으면 가슴을 꼬집으셨고, 실내화나 운동화가 더러우면 힐의 뾰족한 굽으로 피멍이 들게 밟으셨다. 손톱은 아예 지휘봉으로 때리셨다. 한창 사춘기여서 감수성이 예민했던 우리는 많은 상처와 심한 스트레스로 모이면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야, 우리 선생님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래, 어쩜 그럴 수 있니? 우리도 사람인데.”
한두 명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도화선이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학급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한폭탄이 터져 버렸다. 이유 있는 반항이었다. 아이들은 이름표 달기를 거부했고, 실내화도 빨아오지 않았으며, 수업 시간에도 무언의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변화를 눈치 채셨고, 화를 내실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계시니 그게 더욱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괜히 일을 만들었다며 아이들은 후회를 하기도 했고, 걱정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었다. 창밖에 가을 단풍이 눈이 아프도록 예뻤던 날로 기억이 된다.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우리를 한번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창밖을 봐라. 가을이 벌써 왔구나. 선생님은 가을이 제일 좋아. 성숙된 여인의 향기가 느껴지거든.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서른이 되면 선생님의 말뜻을 이해할 거야. 서른이 되어 선생님을 여자로 느낄 수 있을 때 한번 만나자. 여자 대 여자로. 약속!”
그 말이 전부였다. 돌아서서 나가시는 등 뒤로 바람 한줌이 뿌려 지는 것을 빼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야단을 안 맞았다는 게 더 좋았으니까. 그러나 살면서 가끔씩, 아주 가끔씩 가을이 오면 휘파람 소리처럼 선생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날 우리 반 아이들 중 몇 명이나 그 말뜻을 알고 가슴에 담아 두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서른의 가을을 가슴으로 겪고 선생님을 찾은 아이도 있었으리라 나는 믿는다. 나 역시도 꼭 그러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단정하고 예의 바른 여자로 커 주길 바라셨을 것이다. 몸이 단정하고 깨끗해야 정신도 맑아서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그 기초를 닦아주려 하신 거란 걸 서른의 가을에 깨닫는다. 그 덕분에 나도 옳은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 갈 것이다. 다만 아쉬운 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이제는 여자로 선생님을 대할 수 있는데 왜 선뜻 전화를 드릴 수 없는지 알 수 없음이다. 성공한 모습만을 보여 드리는 게 아니라고 머리에서는 말을 하는데, 가슴에서는 ‘아니야 지금은 안 돼 성공한 후에’ 라고 저울질을 한다.
창밖에서 가을의 잔해인 낙엽들이 겨울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을 한다. 어떤 깨달음을 얻고 떠나는 것일까. 다음 세상에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태어나길 빌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에 가득 차는걸 보니 겨울이 방문 앞에 왔나보다.
선생님! 내년에는 꼭 찾아뵐게요. 단발머리 여고생 같았던 선생님의 변한 모습도 보고 싶고요. 저도 선머슴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변했거든요. 중요한 것은 선생님을 여자로 보게 된 것이에요. 약속을 지켜야죠. 기다려 주세요. 낙엽 하나가 새끼손가락을 스치며 날아간다. 달려든 겨울이 낙엽을 안고, 서른의 가을을 안고 등을 토닥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