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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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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BY 둘리나라 2007-09-13

 

                                 제목: 고향

 

  가을이 끝나는 무렵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굴 잊어버리겠다며 한번 만나자는 투정 섞인 목소리에 약속을 하고 서둘러 준비를 했다.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나오는데 사람들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발길을 붙잡았다. 단풍나무가 무척이나 예쁜 집이었는데, 마당에서 담을 타고 흘러나오는 정겨운 말소리가 이상하게도 내 눈을 돌리게 했다. 마당에서는 몇 분의 아주머니들이 커다란 장독을 닦고 있었다. 하얀 행주가 지나간 자리에는 햇살들이 반지르르한 윤을 내고 있었다. 커다란 독들이 집 안의 주인 행세로 대접을 받는 걸 보니 벌써 장 담그는 철이 왔나 보다. 아련한 기억 저편에서 잊고 있었던 추억이 머릿속으로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해마다 가을이 가는 끝자락에는 엄마의 새빨갛게 언 손이 있었다. 차가운 물을 대야에 담아 정성을 다해 장독을 닦던 엄마의 손. 왜 그렇게 깨끗하게 닦느냐고 물어 보면 우리 식구의 1년이 여기에 다 들어있는데 함부로 하면 큰일 난다며 파리가 미끄러지도록 윤이 나게 닦으셨다.

 날씨가 조금 더 추워지면 본격적인 장 담그기가 시작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여섯 명의 형제들이 총동원되는 우리 집의 큰 행사가 시끌벅적하게 치러졌다. 마흔둥이인 나는 이미 다 커 버린 언니 오빠들의 엉덩이를 따라다니며 장 담그기를 지켜보았다. 노란 구슬 같은 메주콩을 물에 충분히 불린 후 커다란 솥에 삶는다. 그러면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퍼지고, 겨울철 황소의 콧김처럼 하얀 김이 나면 입 안 가득 군침이 고였다. 솥뚜껑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추운 줄도 모르고 조바심을 냈다.

 엄마가 뚜껑을 연 솥 안에는 삶아진 메주콩이 노란 밥처럼 가득 했고, 뜨거운 줄도 모르고 덤벼든 나는 입천장이 까지도록 호호 불며 맛있게 먹었다. 다 삶아진 메주콩을 자루에 담아 할머니와 엄마는 잘 으깨지도록 밟으셨고, 정성스레 네모난 모양으로 빚으셨다. 고사리 손으로 해 보겠다고 욕심을 냈던 나는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고 하품을 하다가잠의 세계로 빠져 버렸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창문에 매 달린 새끼줄에 묶인 메주를 보며, 내가 만든 것이 있나 찾던 설렘은 어린 계집아이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메주가 어느 정도 마르면 띄우기를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윗목으로 밀려나고 따스한 아랫목은 메주 형님(?)의 차지가 되었다. 이불로 칭칭 동여맨 옷을 입은 메주들은 그 속에서 알맞게 띄워져 특유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옷마다 냄새가 배 엄마에게 투덜거리면 등을 두드리시며 그러면 못쓴다고, 메주가 잘 돼야 우리 식구가 건강하다며 웃으셨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을 가려고 눈을 떴는데 엄마가 정화수를 떠놓고 메주 앞에서 빌고 계시는 걸 보았다. 무엇을 비셨을까! 아마도 식구들의 건강을 바라셨을 것이다. 무엇이든 하늘에 맡기고 의지하였던 당신들의 삶 속에는 강한 믿음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성을 들이면 하늘도 알아주실 것이라는…….

 세월은 흘러 할머니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언니 오빠들도 하나 둘씩 짝을 찾아 떠나고, 집에는 아버지와 엄마, 나 밖에 남지를 않게 되었다. 예전처럼 식구들이 장 담근다고 모이는 일도 뜸해지고, 엄마의 즐거움도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다. 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내리고, 통통했던 손은 풍파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얼굴은 주름으로 화장을 하면서 그렇게 변해 갔다. 북적거리던 집도 너무 조용해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언니 오빠들에게 된장, 고추장 단지를 안겨 주던 기쁨도 슈퍼에서 사 먹는 장맛에 길들여지다 보니 달갑지 않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혀를 차며 바라보아도, 그러나 어쩌랴. 세상이 변하는 것을……. 당신의 손끝에서 감칠맛 나던 장맛은 그리움과 함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이사 온 날의 일이다. 내가 다섯 살 때였다. 엄마는 집을 둘러보시더니 부엌이 좁아서 안 좋다고 하시며, 뒷마당에 아궁이를 만드셨다. 손수 벽돌을 날라 커다란 가마솥을 얹을 수 있게 만들고는 무척 좋아하셨다. 그 솥에서는 메주콩이며 조청이며 간장이 달여졌다. 명절 때는 음식도 훌륭히 만들어져, 뚝배기 보다 장맛이 좋다며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열 명의 식구들이 아궁이 앞에 모여 메주콩을 삶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에 밤이 깊어 갔다. 어린 나는 너무 많이 먹어 설사를 하기도 했었다.

 요즘 아이들은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겠지만, 그때 그 맛은 지금의 어떤 과자와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궁이도 먼지 옷을 입은 채 식어 버린 불씨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나마저 가정을 꾸려 당신 곁을 떠나고, 아버지도 하늘로 가 버리고 텅 빈 집에 홀로 남으신 당신은 시간과 함께 늙어 가고 있다. 윤기 내어 닦을 장독도 없고, 뜨거운 불로 타오를 아궁이도 없고, 정화수로 빌어 볼 사연도 없어졌다. 행여나 찾아 줄까 대문 밖을 서성이며 장독 뚜껑 여는 일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 버린 엄마의 뒷모습에는 예전의 세월이 고드름이 되어 매달려 있다. 힘들어도 재미가 있었던, 사는 맛이 있었던 시절을 넋두리로 풀어내며 쓸쓸히 웃을 때는 가슴이 아파 온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당에서 시간의 비를 맞고 있는 아궁이는 나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아닐까 느껴진다. 엄마의 자궁처럼 편하고 아늑한 모태가 되는 고향. 그 앞을 지날 때면 따스한 그리움이 나를 감싸 안는다. 내 유년의 기억을 안고, 우리 가족의 사연을 안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곳. 언제라도 찾아오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며 구수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추억의 발원지.

 오늘 나는 어느 집 마당에서 잃어버린 고향을 기억해 내고는 갑자기 목이 메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그리움의 낙엽만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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