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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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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하루


BY 둘리나라 2007-09-12

 

                          제목: 10년만의 하루


 가족이라는 섬에서 평범한 하루하루에 길들여져 살던 여자에게 어느 날 하루 만의 여행이라는 배가 다가왔다. 반가움과 설렘에 배를 타고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가슴은 옆 사람에게 들릴 만큼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로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건 내게는 일종의 모험이며 도전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상상들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고, 가슴 한쪽에는 처음으로 엄마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후회하며 안타까워할 것 같아서 결심을 했다.

 드디어 떠나는 날, 가을 햇살 속에 아이들을 남겨두고 대구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맡겼다. 흔들리는 차 옆으로 언니의 붉은 뺨 같은 가을이 수줍게 웃고 있었다. 나는 지금 컴퓨터상에 글을 올리는 사이트인 ‘스토리 문학관’ 이란 모임에 참가하려고 길을 나선 것이다. 모니터에서 보던 이름들로 작품은 보아 왔지만, 직접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대구에 첫발을 디디며 하늘을 보았다. 정말 금방이라도 손으로 짜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이 시린 하늘에 작은 구름 하나가 서예가의 붓처럼 획을 긋고 지나갔다. 아! 도착했구나. 코끝에 상큼한 사과 향이 묻어나는 바람이 잘 왔다며 인사를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걸어서 동대구역에 가니 마중을 나온 사람들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마중 나올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해보았다.

 키가 클까, 작을까, 뚱뚱할까, 말랐을까, 날카로울까, 부드러울까. 아줌마의 유난한 호기심은 여기서도 어쩔 수가 없었는지 수백 번을 머릿속에서 몽타주(?)를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20여 분의 시간 뒤에 만난 ‘스토리’의 사람들! 순간, 나는 내 생각의 어리석음에 뒤통수를 쳐야만 했다. 뭐랄까, 그 느낌! 생긴 것과 성격과 풍채 같은 것들은 필요 없었다. 나누는 따스한 악수 사이로 흐르는 온기들이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전해 왔을 때 겉모습은 쓸데없는 기우였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저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도 함께 할 수 있는데,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인사를 나누고 오늘 밤 묵을 곳으로 가는 길은 혼자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경치가 좋았다. 먼저 오신 분들과도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고, 또 오실 분들을 기다리며 주고받는 술잔에는 정겨움이 가득했다. 몇 번씩 만난 사람들은 또 보니 좋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첫 만남의 기쁨에 좋았다. 저녁을 먹고 마주 앉아 환영회 겸 시 낭송회가 있었다. 캄캄한 방에 앉아 스토리 님의 커다란 초에서 우리들의 초에 불씨를 옮기며 문학의 열정을 분양받았다. 이 씨가 옥토에 심어져 튼실한 열매를 맺어야 할 텐데……. 조금은 자신에게 걱정도 되었다.

 노래방에서 누구나 할 것 없이 흥에 겨워 마이크를 잡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어색했던 벽은 허물어지고, 어느새 우리 모두는 스토리의 한 가족이 되어갔다. 그렇게 대구의 밤은 깊어 갔고, 마음에도 사랑의 주머니가 한 개씩 만들어져 갔다.

 다음날 아침. 밥을 먹고 동화사로 향했다. ‘통일 약사여래 대불’을 보고 절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부처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린 모습이었다. 원은 어떤 의미일까. 인간 태초의 무극(無極)을 뜻함인가. 마음을 비우라는 공(空)을 뜻함인가.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움직임 없이 올려다보았다.

 도를 알려면 콩을 보라 했던가. 껍질에 싸여진 콩은 무극이며, 껍질을 벗기면 양쪽으로 갈라지는 건 태극의 이치이고, 땅에 심어 싹이 나는 것은 바로 ‘도(道)’의 근본이라고. 시방세계를 내려다보며 일침을 놓으시는 부처의 깊은 뜻을 내 어찌 알랴마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네 마음을 비워라. 비워야 진정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너 하나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글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그들의 가슴에 눈물을 줄 수 없다. 서툰 기교로 써 내려간 글들은 결국 뿌리 없는 나무밖에 되지 않으니 제발 가슴으로,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한 자씩 써라. 그 처음은 너를 비우는 것이다.’

 내게 말하며 웃으시는 부처는 수도 없는 동그라미만을 심장에 찍어 주셨다. 세상을 보는 깊은 눈을 가져야만 하리라. 동화사를 나오며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 산의 허리를 휘감아 붉은 천을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팔공산으로 차를 달렸다. 여러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구부러진 길을 달리기를 30분쯤 했을까. 갓을 쓴 부처님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 준다는 팔공산 갓바위에 도착했다. 수많은 소원들이 물결처럼 오르내리며 산을 채우고 있었다.

 올라가기 위해 첫 발을 내딛으며 우습게도 나는 팔공산을 얕잡아 보았다. 꼬마들도 쉽게 오르기에 갓바위까지 금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계단을 오르며 숨이 목에까지 차올라 주저앉기를 여러 번, 심장의 쿵쾅거림이 귀에까지 들리며 금방이라도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았고 다리에는 쥐가 나기 시작했다. 괜히 올라왔다는 후회가 밀려들며 몸속의 땀들이 일순간에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들은 산책하듯 쉽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고행을 하듯 천근의 발을 계단에다 올려놓으며 갓바위 부처님과 나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못하는 평행선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정상을 얼마 남겨 두고 지쳐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정도도 이기지 못하는 나약함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앞만 보며 올라오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 주위로 다가 왔다.

 막혀있던 눈과 귀를 열어 처음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들었다. 두 손을 모으고 초를 켜는 사람들, 조심스레 물을 마시는 사람들 이곳저곳을 신기한 듯 구경하는 사람들. 옷감의 날실과 씨실처럼 엉켜 있는 세상 속 저마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곳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삶을 풀어내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늘이며 구름이며 땅이었다. 그리고 산이며 바위이며 공중의 새들이며 나무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날 팔공산에 모인 인연은 얼마나 큰 전생의 연이었을까. 생각의 샘 속에서 한참이나 앉아있는데 함께 온 일행들이 나를 불렀다.

 “수정씨. 여기 까지 와서 갓바위 안 보고 가면 후회해! 조금만 더 가면 되니 힘내요. 빨리!”

 그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아니면 자연과 하나 된 자신을 발견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늘 아래 자리 잡은 깨달음의 성지. 갓바위 부처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커 보였다.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많은 바람을 다 들어주셔야 하니 어찌 크지 않을 수 있을까. 예전 우리네 어머니들이 하늘에 대고 손금이 없어지도록 빌고 빌었을 때 넓고 높았던 하늘처럼, 지금의 갓 바위는 그들에게는 하늘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최첨단의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빠른 과학의 발달만큼 정신이 따라간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전부 신선이 되어있지 않을까라는. 첨단이 무언가 최고의 꼭대기라는 말이 아닌가. 정신의 꼭대기가 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먹지 않아도, 자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나 21세기에도 인간의 정신은 돌부처 앞에서 소원을 빌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조화를 이루어 어색함이 없었다.

 정상에서 산 밑을 내려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웠다. 오금이 저린다는 표현을 빌려 쓰고 싶을 만큼. 산 위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사람들의 가슴속 이야기를 쓸어안고 가을 속으로 사라졌다. 이 좋은 기분을 느끼려고 산에 오르는가 보다. 역시 올라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점심을 먹고 짧은 이야기들을 나눈 후 1박 2일의 모임은 끝났다. 이제는 서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시간.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오는 버스 속에서 눈을 감고 머릿속 사진기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찍어서 기억의 앨범에 넣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미지의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살아가면서 생기는 행복의 열매이다. 글이라는 씨를 땅에 심듯, 스토리라는 사이트에 심어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듯, 글을 읽어주는 문우들이 생기고 또 충고도 받고 결국에는 훌륭한 열매를 거두듯, 컴퓨터를 떠난 실제에서 만나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스토리 문학관’의 모임에서 우정이라는 행복의 열매를 따왔다.

맛있게 먹고 씨를 땅에 심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을까. 동화사에서 만난 부처님도, 팔공산에서 만난 부처님도 우리 스토리의 문우 님들 웃음보다 밝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혹시 우리들이 전부 부처가 아닐까! 마음속에 깨달음이 있으면 전부 부처라 했는데…….

 그날 밤. 대구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작은 깨달음 하나씩을 가지고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만나게 되면 꼭 물어 봐야겠다.

참 뜻 깊고 행복하고 아름다웠고 정겨웠던 1박 2일이라 삶의 일기에 적어 두고 싶다. 아주 행복하고 따스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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