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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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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버린 상(床)


BY 박 소영 2009-06-10

며느리가 버린 상 (床)

 

유아 체력 교실 차에서 내린 손녀를 데리고 아들 집으로 갔다. 현관 밖에 멀쩡한 네모상 한 쌍이 나와 있다.

속으로 며느리 친구가 쓸 일이 있어서 빌려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어미를 맞는 며느리에게 상이 왜 현관 밖에 있나 라고 물으니 상다리가 고장 나 버릴 것이라고 한다. 깜짝 놀라 왜 버려 손님이 오면 꼭 필요한 상인데 다리만 고치면 아직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새것인데 그러니 “그럼 수리해서 어머 니 쓰세요. 저는 필요 없어요. 그러마” 하고 못 버리게 당부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결혼 때 못한 교자상, 두레상을 사 놓고 돌이나 생일 때 손님을 초대하면서 자랑삼아 내 놓던 상은 재산 품목에 들어갈 만큼 소중히 여겼다. 자랄 때 설강 위나 대청 선반, 도장 에는 외상, 겸상, 교자상, 상식상, 등이 질서 졍연하게 얹혀있었던 것만 해도 수 십개를 헤아렸다고 생각된다. 할머니께선 손님 따라 상 종류가 다른 상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던 일이 기억이 된다. 조석으로 차린 밥상도 각각 다른 밥상이다. 할아버지 외상, 할머니 아버지겸상, 그 밖에 가족은 두레상에서 식사를 했다. 일꾼들 밥상, 한끼에 보통 너댓 가지의 상을 내놓던 어려운 시절의 밥상 문화였다.

 

그때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나도 상을 좀 좋아하여 여러 종류의 상이 있다. 지금은 가족 모두가 한 식탁에서 앉아 먹으니 상이 별로 필요하지를 않는다. 첫돌, 생일, 결혼, 회갑, 각종행사는 돈만 주면 화려하게 해주니 집에서 골몰하면서 손님을 초대할 필요가 없다. 큰 상들이 별로 필요하지를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도 책상에 앉기가 싫어서 컴퓨터를 널따란 교자상에 올려놓고 쓰니 교자상이 본래의 용도를 잃고 있다.

 

관혼상제 예법에서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함이 없이 치루졌던 할머니 어머니 세대는 가문의 특징적인 전통 음식들이 그 가문의 특성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 음식들이 상술로 이어져 사돈끼리 한곳에서 이바지 음식을 주문하니 가문의 특성은 돈 따라 다르다. 장례예절, 병원에서 운명할 조짐이 보이면 객사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의사를 대동하여 택시로 모셔와 집에서 운명 했지만 지금은 운명한 사람도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간다. 혼례, 상례 따라 음식도 다르고 음식을 담는 상도 달랐다. 그런 상 문화도 사라진지 오래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계모임 조차도 밖에서 하는 마당에 며느리가 버린 상이 나에게도 별로 필요치 않는 물건이다. 있는 상만 해도 어지간한 손님 치루기는 충분하다. 다 결혼 시킨 마당에 그 상들이 필요할 만큼 치룰 행사도 없거니와 설령 있다고 해도 분위기 좋은 곳에서 우아한 음식을 요하는 아들 며느리들을 따라가야 하는 나이에 와 있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어지간한 것은 아까운줄 모르고 버린다. 아파트 쓰레기장에는 멀쩡한 물건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인다. 그러고 보니 골목길에서 헌상을 고쳐주는 곳도 옛날에는 간혹 보였는데 지금은 눈 씻고 봐도 보이질 않는다. 공연한 나의 청승이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면서 아끼던 습관이 몸에 베인 나를 영감은 나무란다.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그렇게 알뜰살뜰 모아 자식 물려주면 고마워 할 까봐 당신 청승일 뿐이냐 우리와 다른 세대를 사는 아들 며느리들이 여가를 즐기고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영감은 둘의 연금으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도 될 형편인데 아들들을 생각해 적잖은 종신보험,

까지 넣어 주면서 몸이 아픈 자신에게는 인색한 내가 미운 모양이다. 집 한 채식 마련해 주면 됐지 얼마나 해주고 싶나? 라고 나무란다. 또 우리가 가고 나면 남아있는 것만 해도 알뜰하게만 하면 저들 노후도 보장되는데 두 아들은 엄마 아버지의 알뜰함을 보아 와서 알뜰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그렇지 않아 당신이 보고 있잖아 그런 말은 아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저들끼리 학교에 다녔다. 그 전에는 들락날락 하면서 봐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아이들이 탈 없이 잘 자라 자기 몫을 하면서 사는 게 고마운 맘이 들어 한몫해 주고 싶은 맘이 지금까지다.

 

지난해 내가 암 판정을 받고 큰 아들이 우리를 위해 너무 희생하는 부모가 도리어 한을 안겨준 다고 그러지 말라면서 정리하려는 부동산을 두 분이 가실 때 까지 가지고 계시라고 말렸다. 나의 병이다. 불우 이웃에게도 적잖은 돈을 썼다. 집안 대소사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빠지지 않고 도리를 다 한다. 유독 나 자신에게 쓰는 것이 아깝다. 그래도 후회스럽지 않음은 왜일까?

 

자신을 혹사해서 병이 왔다는 남편, 버리려고 하는 상을 들고 오면 또 야단맞지 싶다. 남편과 시어미가 버리지 마르라고 하니 며느리도 수긍은 했지만 기 꺾이기를 싫어하는 요즈음 아이들이다. 버리려고 하는 상을 고쳐 쓰라고 권해볼까 어쩔까 생각을 하니 또 청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