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뒷 모습
9시가 다되어 베란다에 들어서니 앞 동에 사는 아들이 걸어 나오고 있다. 집 뒤에 y 대학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을 하는 시각이다. 아들이 출근을 하는 모습을 보라고 남편을 급히 불렀다.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습관적으로 통로에 나오면 우리 베란다 쪽으로 쳐다보는 아들은 답례로 손을 흔들어 준다.
우리는 아들의 발걸음을 따라 뒷 베란다로 와서 뒷모습을 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걸음걸이는 누구를 닮았고 어깨는 누구를 닮았느니 서로 제 편을 많이 닮았다는 실랑이를 하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많이 늙었다며 우리가 하는 행동에 놀라고 있다. 부모가 오래도록 지켜보는 줄 모르는 아들은 야속하게도 큰 길을 두고 담벼락 길로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20년도 훨씬 전에 일이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시어머님은 우리내외가 맞벌이를 하면서 살림을 일궈 가며 사는 모습을 대견해 하셨다. 시간에 쫓기어 항상 바빠하는 며느리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형편이 어머니께서는 즐거움으로 다가와 일 년에 한두 달은 우리 집에서 기거하셨다.
80을 훌쩍 넘기신 어머님은 거동이 자유스럽지 않아 모셔오고 모셔드려야 했다. 그 당시로는 고급 아파트였던 우리 아파트는 대구에서 몇 군데뿐인 고층 아파트였다. 이사 했던 첫 해 넓은 마당이 있는 주택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한 우리를 보고는 몹시도 실망을 하셨다.
형편이 안 좋아서 마당이 없는 집으로 옮기신 줄을 아시다가 주택보다 비싸다는 말과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고 살아가는데 훨씬 편리하다는 말에 며느리가 우겨서 산 집이라고 단정을 하셨다. 엘리베이터 사용도 어려울 뿐 아니라 높은 층 집이 마치 허공에 갇힌 기분이 들어 징역이 따로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잠시 동안이나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 어머님은 무척도 좋아하시면서 이 집에 오래 살아라는 당부도 하셨다. 우리가 출근 후 지팡이를 짚고 동네의 나가면 사람들과 만나 세상 이야기도 나누셨고 대문에 들어오면 아래채에 사람이 살아 말벗도 되었다. 몇 그루의 과실수와 계절 따라 피는 꽃들과 마당 귀퉁이에는 손수 가꾸신 몇 뼘의 채소들은 어머니의 소일터였다. 그 집이 그리워 아파트의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토로하시면서 나 못 오도록 이런 집으로 옮겼느냐고 억지 역정을 내시기도 하셨다.
어느 날 남편은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먼저 출근길에 나섰다. 아들의 출근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앞뒤 베란다로 우왕좌왕하시다 헛발을 디뎌 발목을 삐걱하셨다. 통근차 도착 시각이 임박해 초를 다투는 시각에 어머님의 사고는 출근을 포기해야 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뼈에는 이상이 없고 딛는데 약간 무리가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왔다.
방금 인사하고 나간 아들 모습이 뭐가 그리 보고 싶으셔서 화를 당했나 싶어 속이 상했다. 한둘도 아닌 다섯 아들인데 아들의 대한 사랑이 저토록 깊은지 의문이 갔다. 어린 두 아이에게 살뜰하게 해주지 못하는 나로서는 어머님께서 50이 다 된 아들에게 쏟으시는 정성 때문에 불편스러울 때도 있었다. 며느리인 내가 당신 아들에게 소홀한 점을 들추어내는 기분이 느껴질 정도로 밥상에 놓인 반찬이며 간식, 입성을 신경 썼어 지적하여 챙기시니 내 자리를 잃은 듯 마음이 소원(訴願)했다.
바쁘기만 나에게도 세월은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직장을 떠나 온 지도 올해로 꼭 10년이다. 우리 젊었을 때 어른들이 못마땅하게 여겼던 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깔끔하게 챙겨 입고 나타나는 아들이 보기가 좋고 음식을 해주어 맛나게 먹으면 옳게 먹고 다니는지 걱정도 된다. 얼굴 기색이 좋지 않으면 혹시나 부모 때문에 불편한 점은 있지 않나 염려스러움도 된다. 무엇이든 며느리를 통해 아들과 연계가 되어야 편안함이 느껴진다.
흉을 보면서 닮아져 간다더니 나는 어머님의 모습을 지금 따라 하고 있다. 베란다 앞뒤를 허둥거리면서 혼자도 아닌 둘이가 눈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아들의 모습을 놓칠세라 목을 빼어 내다보는 나는 영락없는 20년 전 어머님의 모습이다. 온 종일 가족을 기다렸을 어머님의 심정과 80 노모님이 아들 사랑하는 마음을 어머니보다 훨씬 젊은 나이인 지금 아들의 출근 하는 모습에서 그때의 어머님의 심정을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