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꾸면서
박 정 애
어제 상치와 쑥갓을 솎아 주었더니 하루 사이에 훌쩍 커 가슴에 안긴다. 7평의 땅이 이렇게 큰 보람을 안겨줄까?
작년에 이사 와서 이웃들에게 종종 얻어먹었던 싱싱한 채소들을 이젠 우리 밭에서 직접 가꿔먹게 되었다. 지난해, 산책로
에서 만난 이웃들이 돌아오는 길에 밭에 들어가서 상치, 파, 아욱, 깻잎 등을 아깝잖게 주어 고맙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연말에, 이사를 하였거나 텃밭을 가꾸지 않겠다고 신고한 노는 땅을 재 분양한다는 플래카드를 대학 측에서 걸어 놓았다.
y대학에서 주변 주민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는 땅이다. 단, 처음으로 신청하는 경작자는 신청과 동시에 3만 원에 계약을
하고 필요치 않을 때는 신고를 하면 다시 통장으로 돈을 넣어 준다고 했다. 지정된 날짜에 신청하러 가니 벌써 줄을 섰다.
담당자가 원하는 서류를 빠뜨리지 않고 갖춰온 나에게 온라인으로 돈을 부치라고 했다. 일률적으로 7평씩을 분할해 놓은
면적은 바둑판을 연상하게 한다. 이틀 후 현지에 가보니 9번이라는 표지판에 남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거름을 만들었다. 산기슭에서 부토를 파서 오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에 염분을 걸러내어 땅에 묻었다.
삼월 초 남편은 다듬어 놓은 땅에 씨앗을 뿌렸다. 아파트 이웃에서 땅 이웃도 생겼다. 경작자 대부분이 은퇴자다. 새로 생긴 이웃을 반긴다. 먼저 경작했던 분들이 7평에 맞는 채소 심기를 권해 상치, 쑥갓, 부추, 치커리, 케일은 씨를 뿌렸고 가지, 토마토, 고추는 모종을 사다 심었다. 진실한 땅은 얼마 후 파릇한 싹을 땅이 그득하도록 채워 주었다.
문제가 생겼다. 바로 옆에서 살갑게 자란 부추를 누군가가 몽땅 뜯어 가버렸다. 두 집 건너 옆 쪽에는 파를 송두리째 뽑아 갔다고 화를 낸다. 겨우내 성장을 멈추다 봄이 되어 근방 자란 채소를 잡히는 대로 뜯어간 흔적에 분통을 터뜨린다. 손으로 마구잡이로 뜯어간 부추를 밭주인은 칼로 고르게 자른 후 호미질로 흙을 북돋우고 물을 주니 미장원에서 방금 머리를 자른 어린이처럼 해말갛게 웃는다.
현장을 목격한 우리 부부는 궁리를 했다. 길가에 있는 우리 채소밭도 남의 손을 타기에 좋은 위치다. 채소밭에 물을 줄 때 밀가루를 타서 뿌렸다는 말이 귀에 솔깃하다. 며칠 후 남편은 산책로 옆에 잡초를 태운 재를 발견했다면서 재를 가지고 왔다. 재를 뿌려 놓으니 영락없이 농약을 뿌려놓은 것 같이 희끄무레하다. 재가 해충을 방지한다는 이점과 약을 뿌린 듯한 위장술이 채소를 가지고 가지 않을 거라는 경계심을 이용한 것이다. 씨를 뿌릴 때 새들이 먹지 못하게 솔잎을 덮었는데 재까지 뿌려 놓으니 소 잃기 전 외양간은 완벽함에 만족했다. 며칠 후 옆집은 플라스틱 봉을 사다가 비닐 끈으로 울타리를 쳤다. 7평이 한 집 몫인 경계는 대학 측에서 해줬고 도둑을 막기 위한 경계는 텃밭주인들이 나름대로 해 모양이 각각 이다.
텃밭은 남편의 일터다. 아침 일찍 텃밭으로 가서 각기 다른 직장에서 온 사람들과 지난 세월에 있었던 직장 이야기며 살아온 이야기, 가족관계 등, 일터 겸 사랑방 구실로 일거리가 있든 없든 새벽 출근을 한다. 각자가 기른 다른 채소들을 서로 바꾸어 오기도 한다. 무공해라 자처하며 채소를 식탁에 올려놓으니 사 먹을 때보다도 더 많이 먹게 된다. 삼겹살을 사와서 쑥갓과 상치를 작은 소쿠리에 한 소쿠리 씻어 놓으면 거의 다 먹는다. 네 살짜리 손녀도 쌈을 사달라고 입을 짝짝 벌린다. 가꾸는 기쁨, 먹는 기쁨이 이사 온 후 맛보는 새로운 생활 풍경이다.
그런데 남을 경계했던 게 나에게 돌아왔다. 농약을 가장한 재와 솔가지가 뿌리와 잎 속에 딱 들러붙어서 다듬고 씻는데 손이 많이 갔다. 일일이 솔가지를 가려내야 하고 재의 앙금을 씻는데 물소비가 장난이 아니다. 보통 서너 번만 씻으면 될 걸 일곱 여덟 번을 씻어야 물이 깨끗하고 티끌들이 씻겨나간다. 7평에 심어 놓은 채소도 우리가 다 못 먹는다. 채소밭이 없는이웃에 주면서 지저분한 티끌을 가려서 다듬어 줬다. 도둑이 가지고 갔다면 이런 수고로움은 하지 않아도 되고 물소비도 덜 할 텐데 하면서 웃었다.
경계란? 크게는 국가 간에 영토문제가 있다. 법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시시비비를 가릴 때 경계는 정확하고 분명해야 한다. 가끔 일본 측에서 동해를 일본해라니 독도를 두고 일본 땅이라니 백두산을 중국 땅이라고 할 때는 경계를 불분명하게 두루뭉수리 그어놓은 선조가 원망스럽다. 간간이 사후에 재산문제로 자식들 간에 일어나는 분쟁을 두고 확실하게 분배하지 못한 부모를 원망하는 부끄러운 일들도 종종 듣고 본다.
살아오면서 경계에 중요성을 체험할 때가 많았다. 직장에서 감사문제가 대두될 때는 누가 한 일인지를 확실하게 따졌다. 자나고 보니 별것 아닌 일로 나를 보호 한답시고 남을 경계하면서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친지 친구 가족에게까지도 빗장을 걸어 상대에게 준 상처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정성을 쏟아 기른 채소가, 주인에게 삶의 방식을 가르쳐 준다. 내년에는 나에게 따뜻한 보살핌과 적당한 영양만 공급해 달라고,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진심이 나를 성숙하게 하고 상대를 감동시킨다는 사실이 어째 텃밭을 가꾸는 일과 다를바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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