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축하곡이 울리는 행사장 입구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아들 내외가 하객을 맞는다. 주인공인 손녀는 영문도 모르고 많은 하객과 친 외가 가족이 모인 자리가 좋기만 한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린다. 아장아장 떼어놓는 걸음걸이가 세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걷는 듯하다.
팡파르가 울리면서 이벤트회사 직원이 돌잔치 행사를 진행한다. 행사의 초점인 돌잡이를 하기 위해 돌상 위에 차려놓은 컴퓨터마우스, 만원권 지폐, 실, 연필 중 먼저 마우스를 잡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엄마 아빠도 자주 사용하는 걸 본 손녀의 눈에 익은 물건이다. 며느리가 돈을 잡지 않는 딸이 안타까운지 '수민아 돈돈' 하고 가르치는데도 손녀는 꿈쩍 않고 다음은 실, 그 다음은 연필, 마지막 남은 돈은 보지도 않고 귀찮은 듯 엄마에게 안아 달란다.
며느리가 나에게로 다가와 아쉬움이 남았는지 "어머니 수민이가 마우스를 잡은 것은 컴퓨터를 잘해서 돈을 잘 벌 거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하면서 돌잡이가 평생 삶을 그 순간에 결정 지우기라도 하는 듯 돈을 쥐지 않은 것을 아쉬워한다.
"돈이 아직은 종이조각 이상 그 아무것도 아니란 게 수민이 판단으로 잡지 않았겠지. 풍선을 하나 놓아두지. 어릴 때는 많은 꿈을 안고 하늘을 날아다니도록, 풍선이 있었다면 잡았을 것이다." 라고 한 내 말에 며느리는 '웬 풍선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듯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으로 받는다.
아들 며느리가 회관이나 호텔에서 손녀의 돌잔치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비칠 때 반대했다. 나의 귀한손녀고 너희의 귀한 딸이지만 초대를 받으면 부담이 되니 처가와 친가 가족이 모여서 조촐하게 담소를 나누자는 나의 의견에 반기를 든다.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는 게 상식처럼 여기는 요즘 시어머니가 반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눈치다.
이틀 후 완강히 반대 할 줄 알았던 남편이 아들에게 전화해서 맘에 두었다는 호텔에 예약하러 가자고 했다. 다음 아이부터는 안된다는 걸 못을 박으면서, 옛날과 다른 시대에 사는 아들,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밴 알뜰한 아들 내외도 제 자식에겐 남들처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친정 언니에게 손녀 돌을 호텔에서 못하게 했다고 하니 간이 큰 시어머니란다. 집안언니도 손자 돌잔치를 회관에서 했는데 며느리가 오라는 곳에 가서 차린 음식을 먹고만 왔다고 한다. 자식들의 일은 자식에게 맡기는 게 요즈음 부모의 도리라고 했다.
호텔에서 하는 돌잔치, 얄팍한 상혼에 아들 내외가 장단 맞춰주는 기분이 들어서 말렸지만 시골에서 떡과 감주 담글 찹쌀을 머리에 이고 손자 돌잔치 준비를 하러 오신 시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 그 정성을 내 손녀에게 쏟고 그 방식을 며느리에게 전하고 싶었다. 나의 진심은 구닥다리 시어미일 뿐 돌과는 아무 상관없는 아들 며느리의 사고 아니 변해진 세상 사고가 씁쓸했다.
할머니가 사준 예쁜 돌 한복과 저의 어미가 준비한 하얀 드레스를 번갈아 입은 손녀는 재롱을 떨기도 하지만 하객들이 누구 때문에 모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가끔 짜증을 부린다. 손뼉치면서 좋아 하다가도 푸래시가 뻔쩍일 때 놀랐는지 울음을 터트린다. 아들과 며느리는 훗날 아이에게 보여줄 사진찍기에 정성을 다한다. 푸짐하게 차린 돌상, 내외가 차려입은 한복, 그들의 하루가 한평생 얼마나 중요한 날인가를 확인해 주듯 연방 카메라와 비디오를 돌려댄다.
세월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삼십 년 전 방식을 고집한 용심많은 시어머니는 돌날 각가지 다채로운 행사들을 보면서 아들 내외가 하겠다고 하는 걸 이해는 했지만 축의금 봉투와 선물을 준비한 하객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져려옴을 느꼈다. 비슷비슷한 형편의 젊은이들, 체면치레 상부상조라지만 봉투를 넣는 맘은 가볍지만 않으리라.
한정된 시간 안에서 치러지지는 행사, 멀리서 온 친구는 한 접시를 가져다 먹고는 예약해 둔 열차시간 관계로 먼저 일어선다. 몇 달 후 어디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그때에 내 아들 내외가 안을 부담이다. 발걸음을 겨우 떼는 딸아이가 원하지도 않는 돌잔치를 부모가 알아서 해준다. 진로를 향해 힘차게 달릴 때 아들은 아이가 원하는것을 충족시켜 주는데 얼마만한 힘이 되어 줄까?
먹고 싶은 음식을 골고루 가져와 먹었건만 옛날에 시어머니와 함께한 음식, 잡채, 떡, 감주, 수정과, 미역국으로 차렸던 그 음식이 왜 생각이 날까. 난 역시 이 시대의 뒤떨어진 간 큰 시어머니임이 틀림이 없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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