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애완견
박 소 영
부부만이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베란다 한구석 광주리에 장난감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아이가 없는 집에 장난감이 있어 이상스러웠다.
웬 장난감이냐고 물으니 개 장난감이라고 했다. 아들과 딸이 다 개를 키우기에 어느 집에서든 집을 비울 때 개를 맡기려 오면서 한 가지씩 사온 거라면서 개도 장난감도 귀찮다고 했다. 개 주제에 잠도 부부가 자는 침대에 함께 자려고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문 밖에서 칭얼거린다고 했다. ‘아무리 애완견이라도 짐승과 함께 잔다는 것은 좀 그렇다.'라고 했더니 애들 집에서 커온 버릇이라는 그 말에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힘든 세상이라 그런지 아들, 딸 두 집 다 아기 낳을 생각을 않는다고 걱정을 한다. 빨리 낳고 일을 가지면 좋겠건만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두 집이 안쓰럽기도 하고 허전함에 개를 키우나 싶어 이해도 가면서 개를 안고 생활하는 아이들이 은근히 걱정스럽다고 했다. 애를 낳으면 봐줄 각오도 되어 있는데 엉뚱한 개 할머니 노릇만 한다면서 자식 일에 자꾸 참견할 수 없는 게 요즈음 어른 노릇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는 마당에서 집안에 오는 낯선 사람을 맞는 게 개의 역할이다. 적당한 덩치에 굵은 목소리로 컹컹 짖으면서 방문객을 주시한다. 장난삼아 곶감이라도 하나 빼먹으면 아무리 자주 오는 아는 사람들이라도 두고두고 기억하여 볼 때마다 짖어댔다. 사람 아래의 동물이란 걸 알고 멀찌감치 떨어져 집안을 지켰다. 부잣집에는 별도의 개집이 있었지만 보통 마루 밑이나 헛간이 개의 잠자리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가 개의 몫이기에 개밥도 설거지 후 줬다. 그런 것을 먹고 온 동네를 돌아다녀도 병도 나지 않고 잘도 커 줬고 주인도 잘 따랐다.
개 키우는 사람이 들으면 흉보겠지만 나는 애완견을 좋아하지 않는다. 짓는 소리마저 개 역할도 못하면서 앙탈을 부리는 것 같다. 방에서 함께 생활을 하려는 방자함도 싫고 어려운 원산지인 이름도 싫다. 예방주사며 사룟값이 만만찮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래도 배신하는 사람 사귀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친구의 설득에 사람의 존엄성은 어떻든 짐승보다는 한 수 위라고 반박했다. 개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온갖 치장을 시켜 아기같이 안고 다니면서 개에게 입을 맞추는 꼴은 아니꼬울 정도다.
가족 순위에서 시부모가 개 다음이라는 우스개가 빈말이 아닌 듯하다. 그토록 호사만 하는 듯한 개들이 요즈음 주인에게 버림을 받아 길거리를 헤매는 것을 종종 본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친구와 모임 가는 길에 쓰레기를 뒤지는 애완견을 보았다. 가까이 가니까 며칠을 굶었는지 눈에는 눈곱이 끼었고 몸은 바짝 말라 뼈만 남은 개는 부들부들 떨면서 반항할 자세도 짖지도 않고 지쳐 있었다. 양 귀와 꼬리에 붉게 염색을 한것을 보면 한때는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호사도 누린듯하다
둘이서 상점에 가서 종이상자를 얻고 우유와 따끈한 붕어빵을 사와 잘게 쪼개어 손으로 먹였더니 금방 다 먹었다. 상자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눕기를 권하고 일어섰더니 나를 좀 데려가 달라는 애원함이 눈에 비치는 듯했다. 우리를 따라 몇 걸음을 따라오던 개는 버스를 타려고 바쁜 걸음으로 걷는 우리가 보호해줄 사람이 아님을 알고 박스를 향해 돌아가는 걸음걸이가 허느적 거린다.
모임에 가서 늦은 사유를 이야기하니 요즈음 버려진 개가 너무 많다고 얘기한다. 무심했던 아니 싫어했던 개에게 관심이 기울여진다. 키우다 버리는 사람 아예 키우지 않는 사람 누가 더 개를 위하는 사람일까? 덩치가 크기를 하나 쥐보다 조금 큰 개가 작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겨울 거리를 지향 없이 돌아다니는 몰골을 주인은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가 잃어버린 개라면 좋겠다. 무슨 병이라도 앓고 있는지 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괜스레 버린 사람이 궁금하고 개의 건강이 염려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가 궁금해서 그곳에 가 보았다. 누군가가 스티로폼 박스로 안쪽엔 담요를 깔아 제법 구색이 갖추진 집에 누워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죽도 곁에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우유와 빵을 주었던 우리를 보고 반가운지 짖어댄다. 개와 한참 얘기를 나누는 우리를 보고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자기가 집을 만들어주고 죽도 줬다면서 곁에 있는 식당주인이라고 소개한 뒤 개를 좋아하면 가져다 키우란다. 아니면 자기가 키우겠단다. 호강스럽게는 못 키우지만 굶기고 버리지는 않겠다고 말한뒤 힘들고 부담스러우면 자식도 버리는 세상인데 짐승을 버리는데 마음 아파 했겠나며 야박한 세상인심을 나무라면서 개를 쓰다듬어 준다.
깜찍하고 앙증스러운 개가 아닌 누구도 거들떠 보지않는 보기에도 추한 개를 거두려는 아저씨의 심성이 존경스럽다. 남들이 하는 일에 박수를 보내면서 내가 하기는 어찌 그리 망설여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나 못한다. 라는 꽃동네 입구에 있는 글귀가 가슴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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