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지금 창밖엔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 들녘은 수확의 손길로 더욱 바빠질 것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두 손녀 시집보낼 이불솜을 장만하기 위해 애벌목화는 목화밭에서, 끝물목화는 뒷산 자락에 널어둔 목화가지에서, 하얗게 핀 손녀의 꿈을 따시던 할머니의 고운 자태가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맘이 울적해지는 날이면 저는 컴퓨터를 켜놓고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네티즌과 글을 주고받으면서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한식집을 경영하는 어떤 이는 잘 꾸며놓은 정원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면서 넓은 정원의 갖가지 수목과 꽃들을 사진으로 올려놓습니다. 이렇게도 많이 변한 세상을 살면서 할머니와 함께했던 그 시절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전깃불도 없었고 시계도 귀했던 시절의 어느 날, 트란지스터 라디오를 아버지께서 사 오셨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100여 호가 모여 사는 동네에서 두세 집 정도 보유하고 있던 귀한 물건이 우리 집에도 있다는 건 나에게는 새로운 자랑거리고 즐거움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뉴스와 라디오극장을 듣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무척 부러워했습니다. 라디오를 산 지 얼마 후 할머니께서 저를 가만히 부르신 후 한참 망설이시더니 “야야, 너거 이미, 애비한테는 말하지 말고 이 소리통한테 내가 얼마나 더 살겠는지를 좀 물어봐 줄래.”라고 하셨습니다. 라디오라는 외래어 발음이 쉽게 들리지 않는 할머니께선 그냥 소리통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라디오를 아무렇게나 들고 다니거나 아무 데나 놓아두면 제자리에 갖다 두고 먼지라도 묻으면 깨끗이 닦으시던 할머니셨습니다. "오늘 오후엔 비가 온다고 하니 오전 중 보리타작을 끝내자."라고 한다거나 사라호 태풍으로 어디에서 농지가 많이 침수되고 어디는 동네가 다 떠내려갔다는 뉴스를 이야기하면 할머니는 한마디 놓치지 않고 신중히 들으시고는 “이런 희한한 물건이 어찌 그렇게도 세상일을 잘 아노?”신통하게 생각하신 나머지 라디오를 용한 점쟁이쯤으로 아시고는 당신이 떠나실 날을 물으시고는 신령스런 물건처럼 소중히 다루셨습니다. 전파를 통해 방송국에서 보내준다는 긴 설명을 할머니께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물어도 대답을 못해주고 그런 것은 알지도 못한다고 한마디로 할머니의 질문을 일축했던 저였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손녀가 야속했는지 기계라고 알고는 묻지 않으셨는지 80이 넘으신 할머니는 다시는 묻지 않으시고 저가 결혼하던 그해 봄에 가셨습니다. 딸아이 공부시키는 걸 흉으로 알던 시골 노인들이었지만 할머니는 교복을 입고 나서는 손녀를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 하셨습니다. 할머니 곁에서 소설책을 밤새워 읽고 늦잠이 들어 못 일어나는 나를 밤새도록 공부했다고 깨우지 못하게 하시고 아침청소인 나의 일을 대신 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훤히 아시는 엄마는 할머니 뒤에서 눈을 홀겼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할머니의 문밖출입은 동네 안이 전부였습니다. 삼촌과 고모가 없었기에 할머니는 아들 딸네 집을 찾아가는 낙도 없었습니다. 지필묵을 머리맡에 두고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사돈지, 제문, 편짓글을 부탁하면 반가이 써주시기도 하고 할머니가 살아오신 소회를 적으시는 게 평소에 할머니가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슬하에 오 남매를 두셨지만 어릴 때 셋을 전염병으로 잃었고 삼촌은 육이오사변 때 학도병으로 참전 중, 전사하셨기에 할머니의 여생은 늘 고적했습니다. 전사통지서를 받았지만 난리통에 잃은 아들을 기다리는 모정은 세상이 변하면 아들이 올 줄로 굳게 믿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생활 중에 집에 앉아 세상일을 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신통한 일이고 오래 살면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일루에 희망을 라디오에 걸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라디오를 보고 당신 가실 날을 물어보고 싶었던 할머니, 인간 본래의 심정에서 우러나온 조심스러운 질문을 그때의 손녀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할머니의 손녀도 지금 손녀의 재롱을 받으면서 할머니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롱받이 손녀가 시집갈 때까지 살겠느냐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수명이 언제까지일지를 궁금하게 여깁니다. 가끔 라디오를 들으면서 할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렵게 물으신 할머니 질문에 백수까지 사신다는 희망적인 대답을 왜 해드리지 못했을까?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그때가 생각남은 세월이 흐른 후 할머니와 같은 질문을 손녀를 본 후 나에게 던집니다. 집집이 거의 승용차를 가진 요즈음, 전국을 이웃집처럼 다니고 해외나들이도 예사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꼬불꼬불한 재를 넘고 다니시던 할머니 때의 길은 시원하게 뚫려 세상 곳곳을 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계셨다면 이 풍요한 세상에서 무얼 궁금해 하실까? 지금 세상은 보다 더 좋은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문명이 준 첨단기기 속에 어른도 아이도 빠져 들어있어 기계가 가정의 울타리를 빼앗아 가족 간에 대화가 단절되어 가고 있습니다. 손녀도 컴퓨터 각 사이트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참여도 하면서 모르는 걸 물으면 신기하리만큼 대답을 척척 잘해주는 컴퓨터이지만 아직도 남은 수명에 대한 대답은 가르쳐 주지를 않습니다. 할머니! 며칠 전 꿈에 할머니가 나타 나셨습니다. 떡을 해서 머리에 이고 손녀 집을 찾아 오셨습니다. 손녀를 맞는 기쁨에 종일 걸었다고 하시면서 피로한 기색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할머니가 계신 그 곳엔 아직도 40 년 전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딸 정 손녀 정을 한몫 주셨던 할머니, 그 큰 사랑이 꿈속으로 나타나 그 세월이 그리워집니다. 할머니의 손녀는 할머니가 따신 목화솜으로 만든 이불로 40년 가까이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덮고 잡니다. 가을을 맞아 장롱에서 사랑과 정성이 담긴 솜이불을 꺼내 덮으면서 그때를 그리워하면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편지로 써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