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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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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운 돈


BY 박 소영 2007-02-28

길에서 주운 돈
박 정 애

설을 쇘는데도 바람이 차다. 저만치 보이는 버스 승강장을 향해 걷는데 자세가 구부정해짐을 느낄 정도로 몸이 옴츠려 진다

땅을 향한 눈 안으로 확 들어오는 게 웬 떡인가! 발아래 반으로 접힌 만 원짜리가 떨어져 있다. 얼른 주우려니 남들 눈도 의식됐다. 그래도 임자는 그 자리 없음을 알고 주우려는데 맞은편 저 앞쪽에 새내기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내 손에 잡힌 돈을 뺏듯 낚아채 간다. 뒤따라오던 여자 친구가 환성을 지르며 기뻐한다. 내 손에 닿은 돈을 뺏은 것을 여자 친구는 봤을 것이다. 약간은 미안한 듯 둘이는 나를 보고는 싱긋 웃는다. ‘그래 너희 둘이 간단히 한 끼 해결 하겠구나! 잘 먹으라’ 하며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그런데 버스에 올라앉으니 괜스레 내 돈을 날치기당한 기분이다. 분명히 내 손에 닿았던 돈이다. 손을 쳐가면서 뺏듯 가지고 가는 게 괘씸한 맘이 들었다. 교통카드를 충전하려고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둔 돈이 있나 없나 확인도 해봤다. 갑자기 돈 만원이 쓰일 곳이 내 눈 앞에서 아른거려 잠시 동안에 행복을 뺏긴 기분이다.

아이를 업고 병원을 가다 버스 속에서 지갑을 몽땅 소매치기를 당해 병원 문 앞에서 돌아선 적이 있다. 아픈 아이 진찰도 못해보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해가 별이된 듯 눈앞이 캄캄했다. 몇 날 며칠을 돈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때는 왜 은행 이용도 잘 안 하고 몽땅 지갑에 넣고 다녔을까? 한 달 생활비를 고스란히 털리고 몇 달을 전전긍긍했던 젊은 시절, 한 푼을 아끼기 위해 십 리 길을 걸어서 출근하던 때의 한 달 생활비, 지금 고급 차 한 대 값을 잃어도 그때처럼 상심하지 안 했을 것이다.

만 원이면 무얼 할 건데 하던 잠시 전 생각이 소매치기 당하던 때가 기억이 나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느껴졌다. 같은 값이면 만 원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임자가 생활보장 대상자 일 수도 있다. 내 손에 들어왔다면 그 사람만큼 꼭 필요한 곳에 쓰이질 않고 그저 일상으로 썼을 것이다.

주운 돈에 대한 일화가 또 생각이 난다. 어느 날 저녁 미사참례를 위해 컴컴한 학교 담벼락 길을 걷는데 돈 이 만원이 떨어져 있었다. 일요일 오후, 발길이 드문 학교 담길 이기에 스스럼없이 주웠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와 현관에 발을 들려놓자마자 거실에 앉은 가족을 향해 나, 성당에 가다 중학교 담 길에서 돈 주웠다. 왜 그리 신이 났을까? 하느님이 일요일 날 나에게 내려준 큰 선물을 받은 듯, 너무 얼굴이 환한 나를 보고 아들이 눈이 둥그레지며 한 마디 하던 것을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엄마! 잃어버린 사람 기분이 어떻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리고 성당에 가는 길에서 주웠다면 헌금 봉투에 넣을 맘은 조금도 없었느냐고” 나는 ‘그 돈 주운 건데 나 만원 주소 ’ 했다면 줄 수도 있었는데 한방 던지고는 제 방으로 들어간다. 신났던 기분이 싹 가셨다. 남편도 주책없이 신나 하더니 한 방 잘 맞았다는 눈치다.

그 며칠 후 거짓말같이 나는 손지갑을 잃었다. 저녁 반찬을 사러 가는 길에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공동수도에서 손을 씻고는 장바구니만 들고 지갑은 두고 갔다. 가게서 이런저런 물건을 사고는 없어진 지갑 때문에 낭패를 당하고 돌아왔다. 주운 돈 임자가 찾아갔겠지 자신을 위로하면서 잃어버리고도 아들과 남편께 알리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요즈음 세상에는 알뜰살뜰 노력해서 재테크를 하는 것보다도 운이 따라 주어 적절한 시기에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서 수월하게 부자가 된 사람을 자주 본다. 반면 손톱으로 여물을 썰듯 피나는 노력을 한 사람들이 내 집 마련 꿈을 접는 젊은이들의 한숨도 종종 들어본다. 잘못된 제도인지 사람마다 따르는 운인지, 요 근년에는 운의 작용도 크다. 서울 강남에 사는 한 친구는 가만히 앉아서 재산을 몇 배 불렸다고 초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세상을 걱정하면서도 자랑을 한다.

2000년 초 아들 자취방을 봉천동 원룸에서 잠실에 있는 13평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1차로 뛴 값이라고 사두면 돈 된다고 중개인이 사라고 권한다. 30% 뛴 값이라 사지를 않겠다니 지방에 사시는 분이라 뭘 모른다고 핀잔을 준다. 오 년이 흐른 후 사라는 값의 400%가 올라 있다. 아파트 폭등 주범이 강남 재건축 아파트라고 강남 잡기에 별의별 법이 다 나오지만 하늘을 모르고 오른다. 이제는 혁신도시다 뭐다 해서 전국이 들끓는다. 부동산값을 보니 몇 년째 은행에 넣어둔 정기예금을 누구에게 털린 기분이다. 친구는 가만히 앉아서 몇 배로 재산을 불렸고 나는 은행에 가만히 넣어두어 재산을 날린 기분이다.

지금 방송에선 국무위원들의 청문회를 열고 있다. 청문회 때마다 부동산 투기를 한 예정자들의 구차한 변명이 안쓰럽다. 도덕성을 논하는 쏟아지는 질문에 한껏 꼬리를 낮추면서 권좌의 자리를 넘본다. 부와 명예를 함께 하고픈 저 예정자들이 진정 국민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을 할까? 청렴하게 살아온 예정자보다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저 위치에서 정보와 돈이 있었다면 나도 투기를 하지 않았을까? 중개인이 사라고 권했던 아파트를 못 산 걸 두고 후회하면서 재운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이 떨어트린 돈을 남이 낚아채 갔다고 잠시라도 공돈의 괘씸함을 느낀 나, 나도 저 예정자에게 점수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잠깐 청문회 주인공이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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