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박 정 애 내 화장대엔 아들 형제의 어릴 때 사진과 남편의 사십대 초반 사진이 나란히 꽂혀져 있다. 두 아들 사진은 작은애가 군에 갔던 10년 전에 내가 꽂아 둔 것이고 이를 본 남편이 질투라도 하듯 가장 잘 나온 자신의 사진을 골라 화장을 할 때나 출근 전에 봐 달라는 뜻으로 꽂아 둔 것이다. 사진으로 맞는 아들과 남편을 보면 나 또한 삼. 사십대의 의욕에 차 있던 젊은 날의 엄마이고 아내다. 늘 당당했던 남편은 퇴직 이후 갑자기 변한 생활에 많이도 처져 있었고 삼십을 훌쩍 넘긴 아이들은 적잖은 나의 나이를 헤아리게 한다. 지난봄 미국행 여권을 받기 위해 찍은 사진을 찾았을 때 남편은 사진 속의 자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늙어 보이는 자신을 두고 사진사의 기술 부족으로 단정하고 재촬영을 요구했다. 다시 찍은 사진 역시 처음과 별반 차이 없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벗겨져 올라간 앞이마는 화장대 속의 남편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세월을 거슬러 보면 젊을 때는 꿈을 엮어 주었고 아이들은 내 품에서 소원대로 건강하고 바르게 잘 자라 주었다. 남편은 늘 예상된 승진을 위해 꿈에 부풀어 최선을 다했고 그 기대 속의 세월들은 자신이 있던 날들이었고 희망이었다. 시간을 쪼개가면서 살던 젊은 날, 집안일과 직장일을 빈틈없이 하려고 나는 끝없이 노력했다. 먼 훗날 그 결과가 만족한 미래를 보장하리라는 기대로 살았던 젊은 시절이었다. 적금통장을 들여다 보면서 세월이 빨리 갔으면 하고 바라던 때, 언제 아이들이 내 손이 가지 않고 제 일을 제가 알아서 할 날이 올까 세월이 가면 모든 게 이루어지리라고 막연한 희망을 품었던 때 사진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오십 중반에 남편은 정들었던 직장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왔다. 더 늙기 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일할 많은 사람들이 명퇴당해 거리에 내몰리던 I,M,F시절 나는 완강하게 말렸다. 무모한 도전을 했다가는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나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살자는 나의 간곡한 설득, 모두가 어렵게 사는 때 연금으로 남은 세월을 편하게 보내자는 나의 반발에 한발 물러섰고 나의 의견을 수용했다. 화살처럼 지나온 날들은 그저 아련한 추억 속의 과거사일 뿐 두고 온 직장에 대한 미련을 지금으로선 어찌할 수 없지만 후회하는 모습이 얼굴에 확연히 나타난다. 일을 할 때 휴가는 삶의 재충전이고 활력소였다. 그 기다림은 아이들의 꿈이기도 하고 직장인들의 삶의 보너스이기도 했다. 일할 나이, 친한 동료가 현직에서 근무하는데 기약 없는 긴 휴가는 여유로움이 아닌 혼자만이 낙오자가 된 기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화를 내면서 짜증스러워 하는 모습이 밉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명예퇴직을 할 때 한마디라도 의논했다면 나에게 화살을 던져 보련만 철저히 혼자 감행한 일이었기에 누구에게도 탓할 입장이 못 되는 남편은 사진마저 맥 빠지고 일없는 늙은이로 보이는 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사진사에게 항변했다. 지난해 아들 결혼식에 최고의 몸단장을 하여 하객을 맞았다. 평소 좀처럼 꾸미지 않던 나를 두고 하객들은 모두 다 아름답고 잘 어울린다고 한마디씩 해 주기에 그냥 기분이 좋았다. 얼마 후 며느리가 결혼사진을 찾아 왔다. 반갑게 사진을 받아든 나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하얀 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있는 예쁜신부는 내가 아닌 며느리였고 그 곁에 내 엄마가 자리했던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내 어머니의 늙은 모습 그대로였다. 평소 아는 사람들로부터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이렇게도 빼닮은 줄을 이 한 장의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결혼 후 삼십수 년 동안 얽혀져 온 나의 세월속엔 무엇이 남아있나? 아이 둘을 남에게 맡겨 기를 때 가정과 직장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야속하기만 했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은 일과 가정 둘 중 어느 것도 버릴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 세월이 안겨준 지금 나의 모습, 출세한 남편의 아내도 아니고 남이 부러워할 만큼 잘 자란 내 아이들도 아니다. 그렇다고 노후를 위한 경제적인 준비가 넉넉하지도 않다. 세월이 흐른 뒤에 찾아온 허허로움이 젊은 날의 억척스러웠던 결과가 현재의 나란 말인가?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결혼사진 속에 서있는 늙은이가 가지고 있었던 욕망의 끈들을 미련 없이 한 가지씩 한 가지씩 버려야 할 나이에 와있다. 남편도 나일 수는 없다. 자식도 내 둥지에서 떠나 새 둥지를 만들어 가고 나의 꿈은 세월과 함께 꿈으로만 흩어지는 게 사실로 굳어 가고 있다. 내가 못다한 것들을 자식에게서 바랐지만 자식들 또한 부모의 바람과는 다른 자신들 능력에 맞는 길로 가고있다. 어미의 뜻에 따라 주지 않는 서운함도 이제는 과감히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남편은 "내가 많이 늙긴 늙었다. 60이 넘었는데 안 늙었을 턱이 있나." 하면서 사진 속의 자신을 억지로 인정하려고 애를 쓴다. 너무 많이 달려와 되돌릴 수 없는 후회되는 날과 뿌듯했던 날들이 세월속에 묻혀져 가고있다. 자연의 섭리에 맞춰 찾아오는 생로병사를 순순히 맞이하는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할 나이다. 법정스님의 수필 중 '버리고 떠나기'라는 진리의 말씀들을 실천해 가는 데는 나에게 얼마만한 시간이 더 필요할까를 사진 속 나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나를 마름질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