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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속에 여름


BY 박 소영 2007-02-20

입동 속에 여름
박 소 영
올봄, 도심을 조금 벗어난 이곳으로 이사를 한 후 거의 매일 베란다에서 내다보이는 자연 속에 빠져본다. 대학캠퍼스, 남매지 못, 캠퍼스를 둘러싸고 있는 각가지 수목들, 가을철이 접어들면서 그 광경은 더욱 장관이다.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보다 그 속에 동참하고 싶어 발길이 새벽을 가른다. 새벽공기가 이롭지 않다지만 내딛는 걸음마다 자연과 나누고 싶은 대화가 다르다. 지저귀는 새들의 아침인사는 맑은 공기를 타고 귓전에서 연주한다. 군락을 지어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은 오가는 사람에게 저마다 먼저 악수를 청한다. 주민을 위해 대학에서 무상으로 분양한 채소밭엔 가족을 위해 정성드려 가꾼 갖가지 채소들이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물안개가 자욱한 못둑을 걸어가면 연꽃 밭에서 오리들이 연밥을 찾는지 작은 물고기가 눈에 띄었는지 무리를 지어 바쁘게 날듯 쏘다녀 지나는 길손들 눈길을 머금게 한다. 대학 실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라고 여겼던 규칙적인 소리는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라는 말을 듣고는 자랄 때 못자리에서 듣던 개구리와 비교되어 청아한 우리 개구리 소리가 그리워진다.

바람이 쏴 불어오니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투닥거리더니 내 발등에도 떨어진다. 벗은 알몸이 부끄러운지 잽싸게 낙엽 속으로 숨는다. 허리가 저절로 굽혀져 숨은 도토리에 손이 간다. 먼동이 트이기 전부터 도토리를 주우려고 나온 산책객들의 쥐어진 비닐봉지엔 나온 시간 따라 도토리 양이 담겨 있다. 청설모는 자신들의 겨울 양식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야속한지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면서 작은 입을 오물거린다.

자연은 신비롭다. 생명체마다 철 따라 각각이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간다. 울긋불긋 단풍잎이 눈을 즐겁게 하더니 어느새 낙엽이 되어 초겨울 바람에 후루룩 떨어지는 모양이 눈 날리 듯 너울거린다. 서산에 방금 빠져버린 해는 붉은 노을을 남겨놓고 어둠을 제촉한다. 노을빛에 사라지는 낙엽은 더욱 서글프다. 여름에는 푸르름을 자랑하고 가을에는 곱게 단장하여 마지막 아름다움을 한끗 보여주더니 때가되니 발아래 내려 앉는다. 밟힐 때마다 서걱거리는 신음은 가을을 떠나보내는 서러운 비명인가. 누구와도 동행이 아닌 혼자서 흩어지는 낙엽을 따라 지항없이 가고싶다.

새로 지은 아파트는 여러 가지로 편리하게 지어졌다. 보온장치도 잘되어 방안에 들어서면 철을 잊고 산다. 입동을 지났는데도 요즈음 때 늦은 모기가 불만 끄면 극성이다. 귓전에서 앵앵거리더니 급기야 나의 분을 돋운다. 물린 자리가 괴로운데 또 귓전에서 2차전을 시도한다.

불을 켠 후 킬라를 뿌려 기어이 내 손으로 작살을 내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밤잠을 확 가시게 한다. 이불을 뒤집어 하얀 홋청에 앉아 주기를 기다렸다. 내 작전에 말려든 모기는 얌전히 앉아줬고 나는 잽싸게 내려쳤다. 손바닥에 묻은 검은 흔적과 홋청에 붉은 점이 생명이 갔음을 말해준다. 이 미물이 만물에 영장 사람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달라드는 용기가 가상하다. 모기를 처단했다는 통쾌함에 불을 끄고 누웠지만 잠은 달아났다.

철을 잊고 너무 호사만 하고 사는 사람에 대한 모기의 도전으로 느껴진다. 추울 때는 좀 춥게 살고 더울 때는 덥게 살면서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하는데 문명의 혜택은 사철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초겨울에 모기한테 물리는 것도 문명이 안겨준 생태계에 변화다. 사방이 숲과 들판과 못이 모기의 서식처가 되어서 그렇다고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말하지만 모기가 겨울에도 살만한 환경조건을 사람이 만들어 가고 있다.

초겨울 속에 두 계절이 공존한다. 11월이 지나면 모기가 사라지려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기를 돌려본다. 철이 구분된 겨울 날씨가 방안에 가득하다. 창가에 떨어지는 곱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결에 나불거린다. 아름드리 큰 나무는 작은 실바람을 못 이겨 고운 옷을 차례로 벗어 준다. 옷이 벗겨져 추운데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취해있다. 오색찬란한 광경을 보던 가을의 끝자락은 하늘빛 부터 회백색으로 변한다. 알곡을 만들어준 빈 논밭도 내년 봄을 위한 회색 잠에 빠져 내 시야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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