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잠못 드는 밤이나 한가한 시간이면 내가 쓴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그 오랜 시간들이 늘 숨가쁘게 돌아갔음을 보면 내게 똑같은 상황이 된다해도 또 그렇게 살았으리라~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보기보다 모질지 못해서 늘 과부하가 걸린 채 잠을 줄여서 사는 수밖에 없었다.
직장 다닐 때 상사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반도 안하고 탱자탱자 놀아도 나는 그 상사의 몫까지 집으로 일거리를 싸들고 와서 어쨋든 펑크없이 해내곤 했었다.
그 바람에 심장이 과부하로 커져서 더이상 이런 식으로 일하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는 바람에 정말 좋아했던 월간지 편집일을 살기 위해 그만두고 말았다.
두달 후 그 부서는 잡지 폐간하고 그 상사는 쫒겨났다.
메롱거리며 마감기한을 넘겨 글을 써주던 기자 두 명도 같이 해고되었다.
평소 잘 했으면 계간지나 단행본 편집부로 옮겨서 일할 수 있었지만 윗선에서도 용서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그 두 기자 중 하나가 결혼식을 한다길래 예식장에 가서 축하해주고 왔다.
지지리도 상사 복 없던 나는 결혼으로 인해 또다른 암초를 만나 삼십년을 맏며느리도 아니면서 맏며느리 노릇을 해야만 했다.
올해는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주고 자원봉사나 하면서 살기로 했다.
자원봉사하는 곳에도 암초가 있는데 언제고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자리니까 팔자거니~ 여기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
내 지난 삶들이 너무 고달파서 이따금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평온해졌다.
잔소리가 심해서 같이 밥도 먹기 힘들던 남편과 요즘은 밥도 같이 먹고 헬스장도 같이 다닌다.
게다가 이따금 남편에게 송곳같은 말로 과거 행적을 들춰가며 응징을 하는 중이다.
남편은 당하기만 하면서
"그 때 말하지 그랬어?"
"내가 무표정하기만 해도 물건 발로 차고 눈을 부라리는데 말대꾸까지 했더라면 내가 여태 살아남았겠어?"
내 결혼생활은 언제 종칠지 모르므로 헤어지고난 뒤 후회가 남지않도록 최선을 다 했다.
이제 남편은 내가 등신 모지리라서 참고 산 게 아님을 인정하고 남은 삶도 함께 가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오래 살다보니 내게도 이렇게 평온한 날이 오기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