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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있다면 풀 한 포기만으로도


BY 휘발유 2006-10-17

<연탄길>을 처음으로 일독한 건 지난 4년 전이다.
<연탄길>은 그 제목에서도 쉬 유추되듯
우선 가난과 슬픔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내가 어렸을 적 겨울엔 아버지께서 미리 장만해두었던
장작을 아궁이에 때서 난방과 취사를 동시에 해결했다.
그 뒤 연탄시대가 들어섰는데 하지만 연탄은
따뜻함이란 이면으로 숱한 사람들을 불과 하룻밤 사이에
비명도 지르지 못 하게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악마의 검은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불이 꺼진 연탄은 그러나 눈으로 인해 생긴
빙판길의 요긴한 해결사였다.
당시는 모든 집들이 연탄을 땠으므로
하얗게 산화한 연탄재로서 동네의 미끄러운 길을 막았던 것이다.

지금 살고있는 집은 지은 지가 20년이나 된
누옥(漏屋)이다. 하여 겨울이 되면 춥기가 보통 아닌데
작년 겨울에도 어찌나 춥던지 곁의 마누라를 껴안고
자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동태가 되어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추웠던 기억이 소스라치는 때문으로
올 겨울이 오기 전 거실에 연탄난로를
하나 들여놓을까 생각 중이다.

<연탄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실제 인물인데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7년 간이나 자료를 수집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했다.

이 책은 고된 삶의 군상들의 그러나 아름다운
실화를 바탕으로 집필되었기에
누구라도 읽다 보면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베스트셀러가 된 때문에 <연탄길>은
그 뒤로도 연속 시리즈로 출간되었다는데
내가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건 첫 번째로 발간된 1권이다.

1권은 ‘1장,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와
‘2장, 사랑이 있는 한 우리는’, 그리고
‘3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로 총 40개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심금을 울리며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주는 묘약으로 작용한다.

그러하기에 꼬집어서 어떤 내용이 유독
압권이라고 소개하기는 뭣하고 다만
‘마음의 정원’ 편에 나오는 구절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 사람은 누구에게나 마음의 정원이 있다.
그 정원에 지금 무엇이 심어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획을 세운다.
‘사과나무를 심었으니 다음엔 포도나무를 심어야지.
그리고 그 다음엔 멋진 소나무를 꼭 심고 말 거야.......’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마음만 있다면 풀 한 포기만으로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  

지난주에 허술하나마 은혼식을 마쳤다.
그리고 그 전에 도래한 한가위까지도
어쨌거나 ‘치루고’나니 마음이나마 조금은 여유가 있는 듯 하다.

나도 어렸을 적엔 설날과 한가위가
가장 기다려지는 ‘대목’이었다.
당시도 못 살긴 여전했지만 여하튼 아버지가 새로 사 주시는
신발과 옷을 신고, 입곤 동무들과 어울려
동네의 개떼들처럼 천방지축으로
놀러다니는 것이 참으로 신이 난 때문이었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된 지금의 나는
하지만 설날도, 한가위도 하나도 반갑지 않다.
그건 바로 궁핍의 도(度)가 이미 한계를 넘은 때문이다.
지금껏 도둑질 안 하고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나게
한 적 역시도 없거늘 하지만 운명의 신은
왜 유독 그렇게 나에게만 그다지도 가혹한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것도 내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솔직히 어떤 때는 부아가 치밀어
견딜 재간이 없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다고 하여 딱히 빈곤 탈출의
어떤 명확한 해법은 여전히 보이지 않음에
앞으로도 현재의 페이스대로 일정기간은 전진해야 한다.

고통의 종착역은 반드시 있을 것임에.
그 종착역은 아마도 두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는 2년 후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연탄길>을 책장에서 꺼내 오랜만에 다시 읽자니
잠시 그릇되게 심어져 있던 내 마음밭의 부정이란
싹을 다시금 도려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좋은 책은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아름다운 정원과 같다’ 라고
한 명언이 맞지 싶다.
 
<연탄길> ‘마음의 정원’에 나오는 말 마따나
비록 빈궁하긴 하되 가정이 무탈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건강을 견지하고 있는 게
실은 커다란 나의 행복이라는 마음의 ‘풀 한 포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담으며 책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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