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부터 주머니가 텅 비었댔다.
늘상 없이 사는 터임에 지갑은 늘 그렇게
바람만 부유하는 지경이지만 어쨌거나
시내버스의 차비조차도 없었기에 난감했다.
그래서 자존심을 무릅쓰고 자고 있던 아들을 깨웠다.
"아빠한테 3천원만 꿔 줄래?"
아들은 거스름돈이 없다며
1만원까지 지폐를 한 장 건네주었다.
"다음에 갚을 게."
아들은 손사래를 쳤지만 어찌 아비가 되어서
사랑하는 아들의 돈을 강탈(?)한단 말이던가.
아무튼 아들이 준 돈으로 시내버스를 탔고
더불어 사무실에 필요한 1회용 커피와
쓰레기봉투, 그리고 라면 따위를 샀다.
그러자 금세 1만원이 소진되었는데
역시나 돈이란 벌기는 어렵지만 쓰기는 여반장이었다.
어제 오후에 마침 모 기관지에 실린
내 글의 원고료가 통장으로 십 여만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퇴근하면서 3만원을 출금하였다.
그리곤 아들에게 주려고 김밥 세 줄과
떡볶이도 1인분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집에 들어서니 마침 아들도 하교하여 샤워를 하고 있었다.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아침에 끓여놓았던 콩나물국을 데워
아들과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 후 아들이 설거지를 하고 났기에
서둘러 지갑에서 2만원을 꺼냈다.
"자, 이 돈 받거라."
아들은 그러나 안 받겠다고 제 방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왕지사 꺼낸 칼을
어찌 그냥 칼집에 넣을 손가.
아들 방으로 쳐들어갔다.
"부자간에도 돈 거래는 확실해야 하는 거란다."
아들은 1만원만 받으면 되거늘
왜 2만원이나 주냐고 물었다.
"그야 아빠가 우리 아들에게 주는 이자지."
아들은 하지만 100%나 되는
고리(高利)를 받으면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고리 대금업자인
샤일록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며 웃었다.
순간 맞는 말이다 싶어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면서도 난 자못 즐거웠다.
아비에게 꿔 준 돈을 곧잘 '잊어먹는' 아들과 달리
서울로 유학 가 있는 딸은 사뭇 다르게 '악랄'했다.
녀석은 내가 돈을 꿀라손 치면
반드시 이자를 받아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내 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
그래서 자식이 열이라도 제각각의 개성이 있는 것이리라.
이 땅의 필부들 소망과
어떤 본능은 거개가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건 바로 넉넉한 재산을 모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
그래야만 나와는 달리 자식들은
고생을 않고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소망은 늘 그렇게
신기루와 사상누각(砂上樓閣)으로서 붕괴되기 일쑤였다.
그건 바로 내가 애시당초 돈을 버는
재주엔 영 젬병인 때문이다.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 아들과 딸에게
왕창 물려주고 싶다.
앞으로 사는 동안에 어제처럼 요긴한 순간엔
다시금 아들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가 또 있으리라.
그러면 나는 다음에도 반드시 아들을
'샤일록' 대하듯 할 작정이다.
남도 아닌 하나뿐인 내 아들에게 100%, 아니
그 열 배인 1000%의 고리(高利)를 준다손 쳐도
그게 어찌 아깝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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