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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의 고집


BY 그린플라워 2009-11-18

시어머님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가 회복이 되긴 했지만

원래 맏며느리 보신 후로는 부엌살림을 손 놓으신 데다가

살짝 거동까지 불편하신 고로 식사를 제대로 챙겨 드시지를 않으신다.

그 바람에 변비와 설사를 달고 사신다.

 

바쁜 백수인 내가 어쩌다 한번씩 찾아가서 두어끼 만들어 드리면 곧잘 드시지만

내가 다시 갈 때까지 또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끼니가 늘 속을 불편하게 하곤 한다.

 

전화를 드리니 설사 때문에 식사하시는 게 겁난다 하시길래

죽을 드시라 말씀 드렸더니 흰죽은 맛이 없어 먹기가 힘들다 하신다.

집에 있던 누룽지를 한봉지 들고가 끓여 드렸더니 달게 드셨다.

시중에 파는 누룽지보다 맛있다셨다.

입맛 없으실 때 끓여 드시라 하고 누룽지와 과자를 두고 왔었다.

 

어제는 애들아빠가 월차를 내고 어머님을 우리집으로 모셔 오기 위해 갔다.

혼자 모시러 가면 오시겠냐고 해서 같이 가면서 대형마트에 가서 집에 오시면 드실 과자며 반찬거리를 샀다.

좋아하시는 묵은지얼큰칼국수거리도 샀다.

 

어머님께서는 한사코 안 오시겠다고 버티셨다.

아들이 약이며 옷보따리를 다 챙겨 차에 실어 놓고 어머님을 업고라도 차에 타게 하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셨다.

"내 집을 지키고 있어야지. 그렇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 나를 짐짝 취급해서 안 된다..." 는 것이다.

참고로 시할머님께서 남편과 맏아들 앞세우고 나서 구박한 맏며느리 볼 낯이 없어 여기저기 떠도시다 자살하셨다 한다.

불과 얼마 전에도 육촌 할머니께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셨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님은 어느 아들 집이고 가셔도 며칠 안 계시고 댁으로 되돌아가시곤 하신다.

한시간여 실강이를 하다가

나는 반쯤 포기하고 일단 칼국수를 끓여 요기를 하시게 했다.

얼큰 칼국수는 멸치육수에 묵은지와 콩나물을 넣어 끓여야 제맛이 나므로

큰집에 있는 김치 냉장고 두대와 대형 냉장고 두대를 모조리 뒤졌다.

통마다 들어 있는 게 알타리김치 반쯤 익은 것, 곰팡이 난 얼갈이김치, 지난 여름에 담궜음직한 물김치.

쓴맛이 도는 덜 익은 배추김치. 언제 담궜는지 모를 깍두기. 시커멓게 변한 김치... 먹을 만한 김치는 거의 없었다. 

형님과 아주버님은 집에서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는데다 조카들은 스팸이나 라면을 주로 먹으니

쓸만한 식재료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큰집에 갈 때는 거의 모든 식재료를 풀세트로 들고 가는 편인데 어제는 모셔올 요량으로 간 것이므로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추석에 담근 생둥이 포기김치를 넣고 콩나물 한줌을 넣어 칼국수를 끓였다.

 

칼국수 좋아하시는 어머님께서는 별맛 없는 그 국수나마 한대접을 국물하나 남김없이 비우셨다.

식사 후 다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애들아빠와 내가 힘을 합쳐도 안 되자 백수로 집에 있는 장조카까지 힘을 합쳐 설득을 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조카도 "할머니, 작은집에 가셔서 식사라도 맛있게 하고 오세요. 집에 계시면 잘 못 드시잖아요?" 했다.

 

어머님은 강제로 옷을 입히고 업으려고 하면 도로 옷을 벗어던지시면서 완강하게 거부하셨다.

애들아빠 고집도 만만치 않은데 결국 우리가 졌다.

무만 한자루 싣고 오는데 어머님은 차에 타시라 할까봐 방문 밖으로 한발짝도 안 나오셨다.

 

오는 차 안에서 내가 "당신이 못 이기는 일도 있네." 했더니,

애들아빠가  "에이~ 채씨 고집은 아무도 못 당한다니까. 외삼촌도 똑 같애." 한다.

 

결국 내가 자주 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