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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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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치곤 넘 고달픈 하루


BY 그린플라워 2008-08-08

오늘은 옆건물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수채화 그리는 날.

도우미를 그만두게 한 후 나날이 전쟁중이라 두어달 물감 근처에도 못 갔다.

오늘은 기필코 물감장난을 해 보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일찌감치 아침도 거른 채 가게로 갔다.

 

주방 바닥에 10킬로들이 냉동물오징어 상자가 누워 있다.

며칠 전에 옆 가게에 부탁했던 오징어를 하필 오늘 사다 줄 게 뭐람.

매장에는 열무 다섯단이 얌전히 누워 있고...

아무래도 열무 다섯단으로는 부족하지 싶어 거기에 얼갈이 한박스를 더 사서 보태 놓았다.

오늘은 어제 준비해 놓은 느타리버섯볶음과 전을 부쳐야 하는데.

 

일단 오징어손질부터 하기 시작했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고 머리와 몸통과 다리를 분리하여 몸통은 껍질까지 벗겼다.

곰국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온다.

"곰국 언제 또 되는 거야? 친구도 한통 산다고 해서 세통이 오면 좋겠는데..."

"이제 막 완성되었어요. 점심으로 드시게요?"

하던일 중단하고 배달 간다. 돌아와 다시 부지런을 떨고 있는데

방학이라 집에서 놀고 있던 두 아이들이 나와서 맛있는 거 해달라고 조른다.

해줄 여력도 같이 먹어줄 시간도 부족해 돈까스와 모밀국수로 해결하라고 했다.

분리한 오징어를 씻어 건져 두고 열무 다섯단과 얼갈이배추 손질에 들어갔다.

세번 씻어 왕소금에 절여 두고 우리밀을 풀어 풀을 쑨다.

불려둔 마른 고추를 갈다가 마늘과 생강 새우젓을 더 넣어 갈고.

액젓을 조금 더 추가하여 양념을 개 놓는다.

 

그 사이사이 만들어 둔 즉석반찬들이 팔려 나가고 오늘따라 왜 이리 단골손님이 많이 오는지.

물건 사는 시간보다 눈 맞추고 수다 떨어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문화센터 친구들이 왜 안 나타나냐고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불러 댄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잠시라도 안부 전하기 위해 옆 건물에 가서 생존을 확인시키고 온다.

절여 둔 열무와 얼갈이를 뒤집어서 고루 절여 가볍게 한번 씻어 양념에 섞으려다 찜찜해 다시 씻는다.

제일 큰 스텐다라이에도 넘친다. 작은 다라이에 세번에 나눠 버물버물 버무리고 있는 중에

단골손님이 반색을 하고 턱을 받치고 앉는다.

간을 보더니 자기 것은 소금간을 조금 더 해 달라고 한다.

"잎이랑 고루 먹어 보고 그런 말 하셔요."

다시 먹어보더니 그냥 달란다.

만원어치 넉넉히 싸 보내고 두통에 담아 마무리 했다.

오징어 칼집 넣어 애벌구이도 해야 하고 무침용도 손질해 둬야 하는데...

으아~~~ 내 몸이 나를 떠나고 싶어 한다.

 

계란장수가 나타나 메추리알 열판과 계란을 놓고 간다.

굴려가며 삶은 메추리알은 결국 집으로 가져 왔다.

집에서의 숙제다. 고구마줄기 껍질 까는 일, 마늘 까는 일, 은행 까는 일, 쇠고기 장조림용 찢기, 기타 등등이 숙제곤 한다.

음식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서 친구들 집들이며 돌잔치를 도맡아 해주고 다니다가

자원봉사도 애들 밥해 먹이는 일을 했다.

그 연고로 반찬가게를 열었는데 초기에는 식사 거르기는 물론이고 어떤 날은 물도 못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곤 했었다.

요즘은 불황이라 그리 미친듯이 일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손 많이 가는 식재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날에는 하루종일 물만 마시고 일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해서 버는 돈은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우리 식구 반찬 해결하고 얼마 안 남는다.

식재료값이 많이 오르고 제반 비용도 많이 올랐지만 반찬값 올리는 걸 못해 그런 거다.

 

반찬가게를 열고 삼년이 지났을 즈음 잠깐 이천원짜리 반찬은 이천오백원으로 삼천원짜리 반찬은 삼천오백원으로 올린 적이 있었다.

불황이라 먹는 것까지 줄여야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느새 슬그머니 반찬값은 도로 이삼천원으로 내렸다.

단골손님들은 감사히 먹겠다고 하고 공손히들 사가는데

어쩌다 오는 뜨내기손님들은 그나마 더 깎아 달라거나 덤으로 반찬 한가지를 더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그럼 난 "여기서 더 깎아 드리면 전 가게문 닫아야 해요."

내가 먹고 싶어 만든 반찬을 좀 넉넉히 해서 반가운 얼굴들에게 실비를 받고 나누는데

그렇게 나누다보면 내 몫이 없을 때가 많다.

늦게 만들어서 못 팔린 반찬이나 어제 못 팔린 반찬을 주로 가져다 먹다 보니 애들 아빠는

"음식 잘 하면 뭐해요? 늘 남는 반찬만 가져 오는 걸."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집에서 간단하게라도 직접 해주는 반찬을 더 선호한다.

 

반찬가게하면 반찬걱정은 없을 줄 알았다. 잘나가는 반찬은 하루 두번 하기도 하지만 쳐지는 반찬은 늘 있게 마련이다.

일일히 내손 거쳐서 만들어진 음식이 폐기처분될 땐 가슴아프다.

그래도 건강해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 우울증같은 건 모르고 산다.

사람들에게 이따금 말한다.

"전 지금 사회봉사명령 수행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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