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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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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BY 그린플라워 2006-08-27

몸도 마음도 아파 머리도 식힐겸 나들이를 했다.

몇년 전에 호남선터미널에서 잠시 만났던 대학동창네로 가기로 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학력자들이 산다는 유성의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의 조합아파트로.

오랫만에 통화를 하고 같이갈 친구를 물색해 봤지만 일요일이라 다들 여의치 못해 혼자 가기로 했다.

만나기 전부터 목소리는 이미 상기되어 있었다.

유성터미널에 마중을 나온 친구와 근사한 한정식집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몇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그 옛날 햇병아리 대학초년생들처럼 재재거렸다.

"나 니네집에 가서 밥 먹었던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아직도 잘 계시지?"

자취를 하던 그 친구는 친구들 집에 놀러다녔던 일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었나 보다.

게다가 친정엄마는 친구들이 오면 늘 정성이 듬뿍 깃들여진 따스한 밥상을 차려내시곤 했었고, 그 친구가 자취생임을 아시고는 김치도 한통 담궈주시기도 했었다.

그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그 친구는 사이즈도 안 맞는 브라를 엄마께 선물했었다.

오늘도 그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친구 집으로 옮겨 내가 간다고 일부러 자리를 피해줬던 친구남편이 올 때까지 수다는 마냥 이어졌다.

이제껏 만나는 동창들 이야기며, 연락이 두절된 친구들 이름까지 들먹여 가며...

저녁무렵 친구 남편이 왔다.

"아이구,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 봐요? 더 젊어지셨네요."

아니? 괜한 인삿말 치고는 너무 과했다.

십오년 전에 친구집에서 일박 했었는데...

그냥 예상했던 모습보다 조금 덜 늙어보였으리라.

주홍색 물방울무늬의 원피스가 나이보다 조금 덜 들어보이게 했을 수도 있으리라.

대학시절부터 봐 왔던 늘 진국인 좋은 사람이다.

친구라도 부인보다 한살 어리고 덩치도 한참 작으니 나를 대할 때는 늘 처제 대하듯 한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차 한잔을 더 하고 나오려니 굳이 저녁식사를 하고 가란다.

 

아들 하나는 군대에 또 하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낸 관계로 두식구만 사는 집이라

부엌일 파업한지 오래 되었고 되도록 외식하면서 산다고 했다.

그 바람에 저녁식사는 근처 음식점에서 황태찜으로 했다.

점심을 하도 거하게 먹어 저녁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는데

제일 큰 거 시켜서 다 먹느라 무지 고생했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내외가 함께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와주었다.

고속버스표도 친구가 끊어주면서 차가 출발할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친구부부는 늘 한결같이 그리 평온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근간에 친구들 여럿이 모여서 꼭 다시 오라고 신신당부 한다.

친정엄마도 보고 싶고 우리집 구경도 해보고 싶다고 올해 안에 일박이일코스로 친정집에도 꼭 같이 가자고 했다.

 

언제 찾아가도 그리 반가와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참 행복한 사람일 게다.

더이상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다 털어버리고 앞만 보고 가는 거야. 살다 보면 좋은 날이 더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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