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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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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남자 이야기 \\


BY 마삭줄 2006-08-07

친정 아버지는  일주일전까지 徐家의 마지막 남자셨다.

첫제인 오늘 절에서 뵙는 영정사진속 아버진,  어깨를 약간 수그리고 평소 사람을 환히 반기시듯 자세로 활짝 웃고 계신다.

올 이른봄 식도암을 선고받고 미쳐 영정사진 준비할 새도 없이, 아버진 13년전 둘째동생 대학 졸업할때 울 큰아들을 안고 찍은 그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남기고  가셨다.

 

문상객들은 상주인 우리 세자매들을 보고 많이 울어라고 했다.

아버지가 살아오신 세월들과 아버지가 가시는 마지막 길에 딸들의 배웅은 당연히 눈이 퉁퉁붓고 목이 시도록 울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나도 그러고싶고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정말 눈물이 나오질 않는다.

그뿐이 아니었다. 문상객중 한분인 고향 아주머니가 오셔서 잔을 치시면서 몇번인가를 향위에 돌리시는것 까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는데  불이 잘 붙지도 않는 향을 가득 뽑아 촛불위에 올려놓고 불이 붙지않아 진땀을 쭉쭉 흘리시는 모습을 보곤 참지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배꼽이 빠질듯, 창자가 아프도록 웃기까지 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와서 본 내 속엔 텅.................빈 , 남동생과 여동생을 먼저 보냈을땐 온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의아함이 있었다면 제대로 돌아가던 세상이 다 비워진듯 온 우주가 다 텅텅빈 듯 하다.

 

아버진 한번도 나를 안아 주신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의 능력이 있는날 이후로는...

아무리 힘들고 서럽고 아프더라도 아버진 내 힘듦에 서러움에 모른척 하셨다.

그때마다 "우리딸 힘들제..? 하고 등 한번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더라면  적어도 아버진 그렇게 하시는것 아닌가 싶은날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니 아버지 눈엔 딸이 살아가는 일들이 충분히 이겨낼 능력이 있고 치유할 힘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를일이다.

 

그런 아버지께서 몇년전에 막내동생을 시켜 쌀을 한가마 실어서 울집으로 보내 오셨다.

남편이 실직을 했었지만, 아버지가 믿고 계신만큼  난 씩씩한 딸이었고 그 힘듦을 내색치 않는 딸이었다.

아무리 남편이 실직을 해서 힘들지만 밥을 굶진 않았는데 쌀이라니...

아버지께 고맙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니는 내 새낀데, 내가 널 모르겠나, 아무리 힘들어도 니는 말안한다. 반찬은 없어도 쌀만 있으면 굶진 않을낀게 김서방 구박하지말고 잘해주라...

내 새끼라서 다 안다,  내새끼라서...

 

3년전 꼭 이맘때 아버진 우리집 4대독자인 아들을 잃어셨다.

장례식을 치르고 온 뒷날 아버진 테러비를 큰 소리로 틀어놓고 신문을 깔아놓고  고개를 숙여 말없이 한참을 발톱을 깍으셨다. 아주 한참을 .

그리고 한참을 발을 만지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