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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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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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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빙기 2008-10-28

    오늘 아침 신문도 예외 없이 묵직하다. 신문을 집어든 순간 서리맞고 떨어지는 고추 잎처럼 크고 작은 광고지 전단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여름 정기 바겐세일, 충격 완전 파격세일, 폭탄가세일, 기절초풍 파격세일, 기절만은 말아 주세요."
  어느 전쟁터를 연상될 만큼 거창하고 도전적인 내용으로 의류세일을 알리는 광고지가 대부분이다. 이미 만들어져 재고로 쌓여 있는 옷은 우리 국민이 삼 년을 입고도 남을 분량이라고 한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님을 입증이라도 하듯 삼 백 예순 몇 날을 이런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위기의식 때문인지 너도나도 주머니부터 동여맨다. 소비의 흐름이 순간 순간 멈칫거리자 기업의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은 세일 세일로 이어진다.  30%, 50%도 넘어 70% 파격적인 폭탄가 세일이다.
  턱없이 물가는 오르고 월 급여로는 한달 견뎌내기가 어려운 형편이고 보니 세일 혜택이라도 누리려 다리가 아프도록 이 백화점 저 백화점을 기웃된다. 그러나 집을 나서는 보지만 처음 가졌던 기대는 반으로 준다. 그 반이 또 반으로 줄어서 공연히 허비한 시간이 아깝고 편법 상술에 우롱 당한 것 같아 화도 나서 그럴 때마다 다시는 백화점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한다.
  올 1월이다.

  문학에 뜻을 두고 공부를 하던 친구가 사는것이 많이 힘들다 한다. 지천명을  막 넘긴 나이에 불어닥친 위기로 마음까지 춥다고 했다. 그 어려움에 변변한 위로의 말도 못하던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글이 잘 써진다던 아는 선배의 말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친구에게 보낼 선물로 만년필을 고르게 되었다. 물론 선물을 고르는 일이 익숙하지 못했기에 이곳 읍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것을 굳이 백화점 문구코너를 찾아 나섰다. 오랫동안 백화점을 신뢰했던 마음을 쉽게 거두어 드리지 못해서였다. 좋은글 쓰라는 간단한 메모를 넣어서 보기 좋게 포장했고 기분 좋게 보냈다. 불빛 없는 터널을 지나가 듯 무겁고 어두울 친구의 마음이 밝아졌으면 내 간절한 기도문을 넣어서 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며칠이 갔다.
  만년필에 이상이 있다며 수화기 저쪽에서 조심스런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불량인 사유를 꼼꼼히 써넣은 종이와 함께 다시 온 물건을 들고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교환을 요구하는 나에게 매장 직원은 어이가 없어 하며 이상이 없다고 하더니 동료직원을 불러 이상 없음을 다시 확인해 준다. 힘을 가해 꾹꾹 눌러야 겨우 잉크가 나와 글꼴을 갖추는 데도 그냥 쓰란다. 다소 고압적인 자세로 쓰다가 이상이 있으면 그 때 다시 오라고 했다. 제품에 대한 정확한 불만이 무엇인지 설명이 서툴렀던 내가 제안을 했다. 물건을 두고 갈 테니 사용자에게 정확한 사용방법을 알려 주어서 선물한 사람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판매할 때  친절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상이 없다며 교환불가를 고집하던 백화점 측에서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 가라는 전화가 왔다. 교환해 준다는 말만으로도 고마워하며 물건값의10%에 해당하는 교통비와 하루 중에 절반을 길에 허비하고 달려갔더니 이번에는 물건이 없단다. 그토록 완강하게 제품의 이상을 인정하지 않아 기운을 빼게 하더니 헛걸음치게 해서 또 속을 들끓게 한다. 알고 보니 순순히 물건 교환을 먼저 제시한 것도 백화점 측이 아니었다.
  매장 직원과 친구가 전화로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 물건에 대한 무조건 이상 없음을 고집했고 정 싫으면 수리를 해 주겠다고 하는 말에 목소리 큰 친구가 소비자 고발센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했다. 그런 후에 똑 같은 것이 없으면 차액을 부담하고라도 더 비싼 만년필로 구입하겠다고  했단다. 그제야 교환을 승낙했다며 친구는 그냥 써 볼 까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두고두고 속상할 것 같아 말했다며 많이도 미안해한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가 기본이 통하지 않고 목소리가 커야 내 몫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걸까?
  상가 문구점에서, 학교 앞 문구사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이 더 쌀 수도 있지만 백화점을 선호하는 것은 이용하는 제품에 이상이 생겼을 때 신속한 서비스와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실망으로 남아있던 신뢰에 다시 금이 갔다.
  얼마 전 불황 속 고객 유치를 위해 물건을 구입한 뒤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영수증 없이도 물건을 바꾸거나 수선을 의뢰할 수 있는 제도가 ㅇㅇ백화점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또 물건에 하자가 생겼을 경우에도 돈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고 묵었던 체증이 내리는 시원한 소식이다.
  이 파격적인 제도가 이번에는 꼭 정착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목소리 작은 소비자도 당당하게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믿고 부담 없이 물건을 고르고 살 수 있는 신뢰의 백화점으로 내 머릿속에 다시 입력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