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머님은 며느리의 숨통을 틔워 주기위하여
마을회관으로 나들이 나가신다.
어머님은 거기 가시면 평생을 같이한 이웃들이 계시기에...
그렇지만 나에게는 어머님이 안 계시는 이 집에서
크게 숨 쉴 수있는 시간이다.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머님을 모시는 그 순간 부터 가슴이 답답하다는것을 느낀것이..
자유롭게 생활한 결혼 12년차..
그리고 어떤 힘에 이끌려서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정해진 어떤 틀에 꼭 끼이는것처럼 어머님과 합쳐졌다
그것도 어머님이 우리집으로 오신게 아니고 우리가 어머님 집으로....
나중에 내가 힘들어할 때 어머님은 나에게 못이 되는 소리를 던지셨다.
"나 때문에 너희가 들어왔냐? 너희가 못 살아 들어왔지"
나는 큰아들을 잃고 힘들어하는 어머님과 그런 어머니를 멀리서 애태우면서 바라보는 남편을....둘 다.
생각해서 힘들게 결정내린 바보스런 나의 결정이
이렇게 비수가되어 내 가슴을 찌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어머님이 딱히 뭐하고 말씀은 안하셔도 내게는 가슴답답한 그 무엇이 내 목에 꽉 박힌다.
올 해 연세가 8순을 바라보시는 시어머님..
며느리인 나에게는 많은 연세라고 느껴지지만 딸들
인 우리 시누님들에게는 오래 사셔야할 내 어머니이신 나의 시어머님..
어머니와 어머님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머니는 나에게 젖먹여 길러주셨고 똥기저귀 갈아
채워주고 나를 위하여 울어주고 나를 이만큼 키워주신 분..
그러면 어머님은..
남편때문에 만나 남편을 사이에 둔 영원한 평행선..
딸 넷에 아들 둘을 두신 우리 어머님..
어머님은 아들 욕심이 많으셨던 분이시다.
아버님은 어머님께 남편이라는 커다란 울타리가되어주시지 못하셨다.
어머님보다 두 살 아래이신 아버님은 시골 땅부자집막내아들이었다.
아버님 15살에 어머님은 17살..
산너머 땅부자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을 오셨다.
큰딸이신 어머님은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
시다가 그 할아버지의 멀리 보낼 수 없어 가까이에 두고 자주 보겠다던 순수한 마음에의하여 남산이라는 산동네가 '산'자이니 부산 근처라고 도시라고 생각하면서 시집을 오셨다는 우리 어머님..
시집이란델 오시고 보니 층층시하 어른들에 가방들
고 중학교 다니는 신랑..
그 어린 신랑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고 어른들 수발하느라고 하루 해가 언제 넘어갔는지를 몰랐다고..그렇게 우리 어머님은 며느리인 내게 당신의 시집살이를 조금씩 내 비추셨다.
내가 어머님과 살지 않았다면 다 묻혀 버렸을 우리
어머님의 역사속에 한 페이지다.
내가 결혼하여 우리끼리 부산에 살때에는 어머님께
살가운 며느리였다.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여긴 큰 아들이 며느리감을선보이는데 어머님 눈에는 한 눈에도 차지 않아 아들에게 말렸건만 아주버님은 정이 들어 어쩔 수 없다시며 형님과 결혼을 하셨다.
큰아들의 일이라 더 이상은 어쩌지 못하시고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는 말대로 어머님도 수긍하셨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데리고 온 둘째 며느리인 나를
보시고는 어디서 저런 며느리감을 구해 왔느냐고 연신 좋아하셨다면서 아들에게 말하여 남편이 싱글벙글이었다.
그런 시어머님이셨기에 나도 잘해 드릴려고 살가운
둘째 며느리의 역활을 했던것 같다.
그때는 내가 맏이가 아니기에 시부모님 살아 계실적에 잘해드려야지하는 마음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한것 같았는데..
어느날..
부모를 모시는 책임이 둘째인 나에게로 넘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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