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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저녁


BY 천년바위 2006-04-28

그가 울었다. 삼천 평을 육박하는 넓디 넓은 터에 단 둘이 보내는 긴긴 봄날. 한 사람이 한참씩 안 보이면 궁금하고 적막해서 찾아보게 마련.

대개 남자인 그는 자기 할일을 찾아 휙 사라지기도 하고 말없이 마을에 내려가 한참씩 있다 오기도 하지만, 나는 어디 가려면 꼭꼭 그에게 이르고 움직일 뿐더러 그가 상당시간 안 보이면 궁금하여 찾아헤메는 편이다. 그런 그가 보이지 않아서, 텃밭 언덕아래 앉아서 돈나물을 다듬다가 소리쳐 불러봤다. '연이아빠...!" "여보...!"

대답이 없다. 뭐 급한 일은 없지만 궁금하다. 그래서 휘휘 사방을 둘러보는데... 아, 비탈진 진입로의 끝, 너와정자 앞에 그가 쭈그리고 앉아있다. 작업모 쓴 머리를 수그리고, 꼬챙이로 땅을 끄적거리고 있다. 다가갔다.

"뭐해요?"

대답이 없다. 장날이라 읍내에 간 길에 둘이서 짬뽕 한그릇씩 사 먹는 차에 소주를 한 병 시키더니, 술기운에 졸고 있나?

아니 그런데, 이 남자가 울고 있는 거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깜짝 놀랐다.

"왜 그래요, 당신?"

"...."

"무슨 일 있어요"?

"...."

"말해봐요."

"저리 가. 혼자있고 싶으니까..."

뭐라고 지껄이다간 말다툼이라도 될성부르게 퉁명스럽다. 그래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와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맘이 맘이 아니었다. 보름 전 정년퇴직하고 집에 갇힌 그 맘이야 내가 왜 모르랴만, 넉넉한 퇴직금도 없고, 노후 준비도 든든히 안돼있고, 아이들도 아직 공부중이고,,,, 그러니 마음 느긋하고 속 좋은 그에겐들 어찌 막막함이 없으랴.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는 술기운에 잠이 들고, 나혼자 상념에 잠긴....아,,, 우울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