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뼈가 부러진 엄마가 수술을 받고 요양병원에서 한 달이라도 있게 하고 퇴원을 시키면서 아버지를 다시 시골로 모셔다 드릴 계획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아버지는 다행히 조금씩 곡기를 시작했다. 당연히 소주와 함께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수염도 깍지 않아서 지저분하고 머리도 감지 않은 아버지를 신랑이 수염을 깍아 주고 물수건으로 머리를 감겨 주는데 얌전히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난 여러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삼일 정도가 지나자 아버지는 고향인 시골집으로 가시고자 하는 마음을 수시로 말씀하시면서 언제 갈거냐고 묻고는 하셨다. 엄마의 관절로 인한 병원 입원으로 시작된 일은 결국은 아버지의 문제로 이어졌고 이제 우리집도 시작이구나 라는 것을 받아들여야지만 되었다.
시골집으로 가시기 전에 아버지와 엄마의 요양등급신청을 했다. 엄마가 퇴원을 하고 아버지가 시골로 가면 그 때 심사를 받기를 했다.
수술을 받은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퇴원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은 퇴원을 하고 동생과 함께 다시 아버지를 시골로 모시고 가게 되었다.
시골에 도착한 아버지는 마당에 있는 당신의 의자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셨다.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서울 생활이 감옥같다고 하셨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