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엔 하얀 색 냉장고, 순백색으로 아주 깨끗한 외관으로
12년 전 산이니까 지금부터 거꾸로 따진다면 2000년 산이니까
성능 좋냐 아니냐 이기 전에 수명 다한 가전제품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잘도 돌아간다. 이건 주인 잘 만난 덕이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남편에게 했더니
눈초리가 가자미 한 쪽으로 몰린 눈 빛을 나에게 발사하더니
"니 시집와서 몇 번 냉장고 청소 했남?"
또 또 그 질문은 언제까지 할려나 모르겠다. 몇 년전엔 니 시집와서 마당을 몇 번 쓸어 봤냐구 하더니 아니 내가 시집 온 거냐 당신과 결혼 한거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지구 나도 따진다면 따지기 명장은 못되도 조금만 노략하면 될까 말까 수준이라고 막 퍼부었다.
남편 또 뭔가 잘 못 건드린 눈치가 역력하다.
그렇게 목소리 크게 큰소리 치고 난 후 가만히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냉장고 청소를 언제 했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엔 기억에 없다.
건망증 심한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공인증 발급만 해주면 되는 수준인데,
청소 한 것 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좀 무리 인듯 싶어
혹시나 냉장고 문을 아래 위로 열어 봐도 냉장고는 깨끗한 편이다.
그렇다고 내 기억엔 내가 한 달 전이든 두 달 전이든 냉장고 청소한 적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군 입대한 아들이 휴가와사 할 애도 아니고, 취업한 딸내미는
나랑 성격이 닮아 털털해서 해도 별 표시도 안 날텐데.
큰 소리 탕탕치면서 부부싸움 하다가 억지를 부려 남편 이길 때 좋았는데 아무래도 화장실 가서 뒷처리 못한 것처럼 떨더름하다. 마당이야 한 두번 쓸었나 그렇게 기억이나 하지 냉장고는 한 두번도 아닌 전무하다.
하긴 살림을 하긴 하는데 남편 말대로 이건 살림인도 아니요 하숙인도 아니라나 .
언젠가 잠만 자고 나가면 장땡이냐 뭐냐 그렇게 말 할 땐 나도 할 말이 없다.
집에서 놀 땐 좀 청소도 하고 맡반찬 좀 만들어 놓고 신경좀 쓰리고 해서
한다고 한 밑반찬 내가 해놓고 이거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심각한 고민중에
결국 재료만 버렸다고 남편한테 지청구만 엄청 들었다.
" 내가 장가를 간 건지 든 건지 헷갈린다 헷갈려!"
이렇게 이 십여년을 같이 살았다면서 누가 데리고 살겠냐고 그 잔소리는 지금도 한다.
하긴 나도 너무 했다. 이젠 해가 바꼈으니 구석구석 청소도 하고 남편한테 맛난 반찬 만들어 주지는 못하지만 반찬가게에 가서 장도 좀 보고 그럴려고 했는데.
남편 또 잔소리한다.
" 나니까 너랑 살아 주는 거여 세상에 냉장고 청소 하는 남편 있음 나와보라고 혀?"
살림도 못하는 마누라랑 같이 살아주는 남편한테 고맙다고 말 할려다가 남편 잔소리 때문에 그 말이 다시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 가버렸다. 그래도 어쩌랴 나 못하는 거 남편이 대신 채워주고 같이 살라고 하늘이 이어 준 부부인데,
" 오늘 냉장고 청소는 내가 할 께!" 했더니
남편이 나를 쳐다보더니
" 어제 했는데 뭘 또?"
어쩐지 깨끗하더라니...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