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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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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마음이 편한 것이 최고다!


BY 천정자 2012-09-04

어렸을 땐 남에게 특별하게 보이고 싶었다.

워낙 못생겨서 인물로는 열외를 당했으니까 열외자로서

지금의 왕따를 당한 사람들 마음을 꼭 말로 표현안해도 안다.

 

나이가 드니까 이젠 권력과 지위 아님 돈벌기에 아니 돈 많이 벌고 통장에 쌓아놓기식의 경쟁에 참여를 못하면 이 또한 열외자가 되니, 어렸을 때나 나이들어 늙으나 열외자의 소외감은 마찬가지다.

 

사실 돈 많은 사람들 많이 만나봤는데, 

어째 사는 것이 열외자인 나보다 더 이상하게 사는 것 같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의 인생이나 삶이 왜곡되고 굴절되어

상대에게 전혀 존경심을 발화되지 않고, 되레 에구 차라리 없이 사는 내가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해는 뜨고 계절은 부지런히 순환주기를 제 때에 맞춰 변화를 하는데.

사람은 한 번 고정되면 돌부처처럼 변화한다는 것이 앉은뱅이 일어나는 기적보다 더 힘들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니까 시비는 나중에 곰곰히 따지고 걸기 바란다.

 

신앙의 힘을 빌려 나 자신의 성격이나 습관을 변화시킨다는 것도 기막힌 기적이다.

하긴 신의 힘을 빌려 나 자신을 승화시킨다는 자체가 더 숭고한 사건이고 천운이다. 하늘에서 내려준 운명적인 변화를 아무나 받나, 선택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이래 저래 신앙의 힘도 제대로 끌어다 쓸 수 없는 날라리신도라고 자체인정하는 교인이니까 고집쎈 내 성질에  애당초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고, 일도 안하고 무위도식하겠다는 것과 같은 짓이다.

 

요즘들어 그냥 이대로 쭈욱 평범하게 살고 싶다.

평범한 것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고

그저 남과 비스므레 같은 생각에 같은 말에 같은 가치를 기준에 두고 서로 높고 낮음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니까 그냥 묻어 살아 가는 인생도 괜찮을 듯 싶다.

 

뭐 특별히 따로 배울 일도 없고, 공부할 일도 없으니 얼마나 쉬운  길인가?

옛날 어렸을 적엔 잘 몰랐는데, 나이들어 가만히 거슬러 올라 시간여행을 떠나보니까

내가 누구의 덕에 공부도 별로 안하고 실컷 놀았다는 결론이 났다.

학창시절 때 대통령이 누구였는지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존경하는 정치인은 없어도 두고 두고 그건 참 잘한 일이라고 칭찬해주고 싶은 정책 단 한가지 "과외금지" 였다.

이 덕에 부자든 가난하든 학원도 다닐 필요 없는 시대의 학생이었으니,

맨날 놀 궁리만 하는 날라리학생이 뭐하고 다녔을까.

그 당시 서울엔 오염된 구역보다 오염 되기 전의 상태라 산로 들로 쏘다니다가 저녁나절에 배고프면 집에 돌아가도 아무렇지 않은 때였는데, 지금의 학생들에겐 전설의 과외금지 시대라고 해야 되겠다.

괜히 전설의 고향처럼 으시시한 귀신애기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그 당시 공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로 있던 같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도 무진 많았던 만큼 학원을 다니네 못 다니네등의 비현실적인 애긴 솔직히 배부른 애기가 된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전면 과외금지 시켰다면 그 때 나는 아마 억지로 공교육에 붙들려 감옥처럼 생긴 교실에서 꼼짝달싹 못한 것을 상상해보니, 지금의 현실과 같은 애기가 된다. 아이들한테 노는 것을 금지 한 것처럼 놀이터든 골목이든 어디든 노는 아이들을 지금은 도무지 구경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한 일은 그 때 공부를 그렇게 안해서 나이들어 이런 말도 안되는 공부를 어느 얼빠진 신이 시키는 것일까. 그냥 탱자탱자 살다가 놀다가 가도 누구하나 피해 입을 사람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 때 나랑 같이 공부해서 늘 상위권에 들었던 친구들 요즘 잘 살고 있나 그것도 궁금해진다. 

 

지금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특히 교육정책을 진행하는 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 당시에 어떤 정책을 하느냐는 결과가 단박에 드러나지 않으므로 좀 장기적인 안목을 키워 느려도 오래 오래 가는 정책을 만들었으면 한다.

나 어렷을 때 그 정치인 덕에 학원 안가도 괴외 안해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상대성 빈부차 비교빈곤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공부 못하는 것은 내 탓이고, 내 능력이지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공부를 통하여 신분상승을  꿈꾸고 목표가 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뤄낸 꿈의 정상에서 행복하다고 한 사람은 아직 못 만나봤다. 게을러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마 내가 불행한 줄 모른다. 그런 행복한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사건이 된 것이다. 

 

지금은 과외금지나 학원수강 금지 시대가 아니다. 어찌 된일인지 빚을 내가면서 몇 십만원짜리 수강증을 끊어주고 가르친다, 그걸 못해주면 능력없는 못 난 부모가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이젠 나도 자식이 있는 부모가 되었는데, 이 말도 안되는 교욱현실 앞에선 절대적인 주관을 갖고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보다 특별나게 살아봤자 평균수명 100년 안팎이다. 그러다 죽는다. 사람 인생이 오십보 백보다.거기서 거기라는 애기다. 어제 어느종교단체의 교주가 100년을 못 채우고 별세하였으니까 그 뿐이다.

그런데 그 높은 지위를 향해 전부 뛰게 하는 이런 비상식적인 교육적인 정책에 뚱딴지 같은 이의제기도 해 볼 만 한 것이다.

 

슬로건을 건다면

"속지말자 현 교육정책, 다시보자 내 자식 인생 미래를!"

 

지금 껏 살아보니 억지로 뭐를 시킨다고 해도 될 일은 절대 없다. 무리수를 둔 만큼 부작용은 더 크다.

뭐니뭐니 해도 내 마음이 편한 것이 잠도 잘오고

소화도 잘되고 남에게도 편하게 대해진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