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네 마리의 개가 짖어도 별로 시끄럽지 않은데
하나 밖에 없는 남편의 목소리는 나이먹어도 늙지를 않나,
옛날 기차칸 화통을 보약으로 달여 먹었다는 소문도 없었는데
왜 그리 큰지, 들으면 들을수록 만사가 다 귀찮아지는 소리는 바로 남편의 잔소리다.
어린 아들이 집에 있을 땐 주위산만한 그 아들이나 그 아빠나 별 차이를 못 느꼈는데,
애들이 다 커버려 외지에 나가버리니까 덜렁 두 내외가 집에 있으면 이거 참
뭐 할까 우리 둘이 할 게 뭐그리 있을까 만은 긴긴 밤 그것도 겨울밤이 하도 길어도
원래 잠퉁인 마누라야 그 시간 짧다고 할 리 없다.
" 니 그렇게 늘어지게 자면 나무늘보처럼 허리가 길어진다"
" 똥구멍이 차도록 잠이 오냐?"
" 내가 장가를 간 건지 온건지 이걸 누구한테 확인해야 되냐?"
수 십년 같이 살다보면 서로 성격 모르면 그건 좀 문제가 있겠다 싶어 나도 울 남편 성격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가끔가다가 나도 정말 이 사람 내 남편 맞어? 이런 적 많다.
작년여름 그 뜨거운 계절에도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려도 내 사전엔 절대 머리를 안 짜르겠다는 신고식을 치뤗나 그렇게 버티더니 , 요즘 한파에 얼마나 추운데, 어느날 저녁에 나는 왠 스님이 한 분 우리집에 오신 줄 알앗다. 아니 머리를 좀 정리하라고 했지 누가 박박 밀으라고 시켯냐고 물으니까 머리감을 때마다 이젠 좀 불편해지더란다. 하긴 그 긴 머리때문에 울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 없는 유명인사가 된지 오래다. 무슨 계기가 있어 작심하고 자른 게 아닌, 단지 마누라가 자다가 긴 머리를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얼키면 난리가 난다. 그걸 방지한다고 모자쓰고, 수건두르고 자는 사람 아마 남편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것도 제일추운 겨울에 머리카락 한 올 남김 없이 홀라당 밀어버렸으니 나도 놀랐지만, 주위에 사는 남편친구들도 삭발턱을 내라고 일부러 찾아오는데 글쎄 그 머리에 내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는 것이다. 왜그러냐고 하니까 시원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뒷통수가 시렵단다. 한 친구가 그러네. 아니 그동안은 머리묶은 꽁지도사더니 이젠 스님이 되었다며 놀린다. 뭐가 자랑인지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한테 내 머리 잘랐다고 서로 낄낄대며 전화통화 하는 내용에 아마 화상으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했는지 남편이 나보고 사진을 잘 좀 찍어보라고 하는데, 내가요 핸드폰 거는 거 받는 거 외엔 그 기능이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지 알게 뭐냐고 도진 개진 울 남편도 이 핸드폰에 그냥 오는 거 잘 받고, 통화감 좋음 그거로장땡이다.
나중에 아들이 설 날 내려온다고 하니까 남편이 큰 소리로 보약 한 접 꼭 지어와야 한단다. 그 보약 한접은 다름아닌 담배 한 보루를 말하는 것이다. 아들이 알았단다.
오비이락이라더니 그 다음 날 한 통신사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전화단말기가 장기 사용자라 무상으로 스마트폰으로 교체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스마트폰이라 은근히 갖고는 싶었는데, 이게 영 나하고 안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나서 대답을 했다.
" 거 있잖아유 기능 많은 거 말고 그냥 오는 거 받는 거만 전용으로 그런거 없남유?"
왜그러냐고 상대방이 묻는다.
" 기능 많은 거 줘도 못써유 헷갈리고 근디 요금은 비싸기는 왜그렇게 비싸유?"
근데 상대방이 아무 말이 없다. 아니 요즘은 끊는 다는 말도 안하고 끊는 통신사가 있다니 나는 장기우수고객인데 이럴 수가 있나.
또 떠들고 싶은데 벽을 보고 할 수는 없고, 기차통 삶아 먹은 남편 목소리가 크든 이 겨울나기도 좀 시끄러울 것 같다.